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47강(사51:9-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8. 02:22

이사야 강해 제247(51:9-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212()

 

선지자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 선민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양자의 차이점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동족들인 유대인들에게 설명하고자 열심입니다. 그렇지만 선민들의 반응이 별로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과 그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는 언제나 선민들에게 당장 눈에 보이는 복을 주고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를 들면,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대 185천명을 하룻밤에 전멸을 시켜버리십니다(왕하19:14-15, 35). 그리고 히스기야 왕의 죽을 병도 고쳐주시고 덤으로 15년의 수명연장까지 허락해주십니다(왕하20:2-7). 해시계를 10도 물러가게 하는 등 자연의 섭리를 어기면서까지 선민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왕하20:11).

그런데 이사야가 전해주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좀 이상합니다;

(1)  첫째, 선민에게 주고 있는 복은 그들만 누려서는 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하만민에게 그 복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11:10-12, 19:23-25).

(2)  둘째, 구체적으로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선민들이 그 말씀대로 행하는 거룩한 모범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1:16-17).

(3)  셋째, 원수를 미워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멸망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용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58:6-12, 66:18-21). 한 마디로, 똑 같은 피조물로 대접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4)  넷째, 하나님 보시기에 선민들도 이방인들과 별로 다르지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2:6). 마음 속으로는 하나님경외를 하지도 아니하면서 율법을 준수하고 제사를 잘 지내는 흉내만 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29:13). 그래서 성전의 뜰만 밟고 그냥 나가고 있다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1:12).

그렇다면 누가 올바른 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그 평가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쪽이 옳다고 그 손을 들어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말씀만을 위탁하신 채 별로 말씀이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깨어나셔서 그 옛날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역사를 다시 보여주셔야만 합니다(51:9-11). 그리고 메시아를 보내셔서 종말로 이 세상에 이루고자 하시는 그 새로운 창조의 모습도 환상 가운데 보여주셔야만 합니다(11:1-12). 그와 같은 이사야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창조주의 공의를 실천하는 성도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51:9-11)

 

본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하여 각 구절을 하나씩 먼저 검토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b)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51:9); ‘여호와의 팔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의 팔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창조주의 능력을 다시 보여달라고 다음과 같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51:9a); 이사야가 보기에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1)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선민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선민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을 만드신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2)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저 그들 선민만을 보호해주시고 적의 침략으로부터 구원해주시는 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컨대, 자신들의 수호신 정도로 알고서 섬기고 있을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천지와 만물 그리고 모든 인류를 창조하시고 온 세상의 역사까지 다 주관하고 계시는 위대하신 창조주의 영광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은 그 점에 있어서는 현세적인 복을 구하고 있는 우상숭배자와 비슷하며 마치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3)    그래서 이사야는 부르짖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옛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여 선민으로 삼으셨을 때의 그 창조주의 능력을 부디 다시 한번 온 세상사람들에게 보여달라는 것입니다”(51:9a 의역).  

(2)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51:9b);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두 가지의 놀라운 일을 행하셨음을 이사야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영적인 일입니다;

1)    첫째, ‘라합을 잡아서 마치 회를 치듯이 분해를 해버리신 일입니다. ‘라합은 본래 히브리어 라하브’(난폭, 소란, 거만한 행동)에서 온 말로서 전설상의 바다괴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무기와 비슷한라합은 난폭한 세상의 지배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배자이면서 영적으로 승천하여 하나님과 다투려고 하는 교만한 세상의 제국입니다. 그러므로 바벨탑을 쌓은 제국과 같습니다(11:4). 이사야는 특히 그의 선지서에서 다음과 같이 애굽 제국을 라합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30:7). 그러한 난폭한 세상의 지배자를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굴복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다시 한번 간구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교만한 사상과 제국의 논리를 와해시켜 주십시오”(51:9b).

2)    둘째, ‘을 물리치신 일입니다. 용의 정체에 대해서는 사도 요한이 잘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12:9). 땅에서는 애굽과 바벨론과 같은 교만한 제국을 무찌르시고 하늘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을 무찔러서 이 세상으로 추방해버리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는 그 역사가 다시 한번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한다고 본문에서 하나님께 호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a) 바다, 넓고 깊은 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을 내어, (b) 구속 받은 자들건너게 하신 (영생과 영벌로 완전분리를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51:10); 그 옛날 출애굽의 영광을 재현해주시기를 다음과 같이 원하고 있습니다;

(1)  바다, 넓고 깊은 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을 내어”(51:10a); 언뜻 보면, 출애굽의 역사에 이어 홍해구원사건을 거론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14:21-22).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보다 더 넓은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넓고 깊은 물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의미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홍해의 구원사건만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누구든지 창조주의 능력을 믿으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선언인 것입니다(51:10a).

(2)  구속 받은 자들건너게 하신 (영생과 영벌로 완전분리를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51:10b);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완전히 구원한 사건은 애굽 땅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이 아닙니다. 추격해오고 있는 애굽의 정예병들을 홍해에 수장시켜버린 사건입니다. 그때부터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바로가 노예로 삼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능력을 다시 발휘하여 새 세상을 만드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메시아로 말미암아 대속의 구속함을 믿고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천성으로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51:10b). 반면에 끝까지 구속사업을 방해한 자들은 영벌에 처해지며 지옥의 불꽃 속에 영원히 갇히어 버릴 것입니다.

셋째로, “(a)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돌아와 노래하며, (b) 시온으로 돌아오니, (c)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51:11); 창조주의 구속을 받은 자들이 장차 어디에서 어떠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지를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사야의 간구입니다;

(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돌아와 노래하며”(51:11a);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을 받은 자들은 장차 천국으로 인도가 될 것입니다(21:27).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유월절 어린양 메시아를 또한 찬양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5:13). 그와 같은 계시록의 내용을 벌써 이사야가 여기에서 예언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시온으로 돌아오니”(51:11b); 여기서 시온이라고 하는 것은 선민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들의 선민사상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와 관련하여 묵상하게 되면 그곳은 새로이 창조가 되는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65:17-20). 참고로, 선민 유대인들이 희망하고 있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방인들이 선민들을 섬기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종이 되어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메시아사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창조가 되고 만민이 구원을 받아 그 성으로 입성할 것이라는 종말론적인 예언입니다(51:11b, 21:27).

(3)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51:11c); 본문이 종말예언임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1)    구속 받은 자들이 이 땅에 내려오는 하늘의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감으로써 영원한 기쁨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옴으로써 시작이 되고 있는 만민구원의 결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사야가 애초에 그의 선지서 제11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5-9).

2)     그러한 이사야의 예언은 이미 세상의 종말과 모든 성도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21:2-5).

결론적으로, 선지자 이사야는 본문에서 선민들에게 출애굽기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창세기의 하나님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의 능력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이 세상에서 발휘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세상사람들의 교만과 거만한 제국들이 모두 분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일찍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어쫓긴 악한 사탄의 세력이 앞으로 무저갱(無底坑, 지옥)으로 들어가서 영원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심판과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이사야가 과감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사야는 그와 같은 새 세상의 창조가 메시아의 오심으로부터 시작이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그의 선지서 제11장에서 메시아의 나라에 대하여 이미 예언을 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의 시온의 의미를 단순하게 선민사상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종말로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사야는 그 성으로 입성하게 되는 모든 구속 받은 영혼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들도 이제는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그 천성으로 입성시키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물론 메시아의 구속사역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이방인들은 당연히 그 일을 신실하게 행해야만 합니다(66:21, 28:18-20, 1:8). 아무쪼록 그 일에 매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