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45강(사51:3-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2월 10일(수)
율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공의와 구원이냐 아니면 심판과 소멸이냐?(사51:3-6)
지난번 강해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고 여호와와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만민구원의 시대가 구현이 되며 사막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이 에덴동산으로 변화하는 기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기뻐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사51:1-3).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사야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대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창조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 율법입니다(사51:4). 그러므로 그것은 본래 생명을 살리는 창조주의 능력을 내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고 있습니다(사51:6).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둘째, 그 이유는 선민들이 율법 속에 담겨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주신 것이기에 그 율법을 만민에게 전하여 이방인들의 생명을 살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이 땅에 가져오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선민들이 그 뜻을 배반하고 있습니다.
(3) 셋째, 선민들은 자신들만 율법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 결과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전해주지 아니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멸망을 당하게 될 운명입니다. 그것이 선민들의 무서운 죄악입니다(사51:5).
(4) 넷째, 그 결과 이방인들이 심판과 멸망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의 뜻이 담겨 있는 율법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독점하고 있던 선민들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하루살이같이 사라지게 되는 역사가 임하게 됩니다(사51:6a). 그 대신에 이방인들에게는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이 전파되게 됩니다(사51:6b). 그 다른 방법이 바로 메시아와 그 제자들의 복음사역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가 본문의 각 구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며,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b)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51:3); 사막과 광야가 오아시스로 변화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왜 과거형으로 묘사가 되고 백성들의 기쁨과 하나님 찬양은 미래형으로 표현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1)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며,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사51:3a); 삭막한 죽음의 땅 사막이 비옥한 생명의 땅 에덴으로 바뀌는 것은 단순한 회복이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물을 구하기 힘들어 마른 먼지만을 흩날리고 있는 광야가 오아시스로 전부 바뀌는 것도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히는 것)할 일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사막과 광야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의 땅이 탄생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첫머리에 “나 여호와가 행하는 창조의 역사”(사51:3a 의역)라고 벌써 선언하고 있습니다.
(2)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唱和)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51:3b); 먼저, 옛 땅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에덴동산과 같은 새 땅이 창조가 됩니다. 그리하면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며, 또한 살아 있는 백성들이 휴거 후에 다시 나타나서 새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됩니다(살전4:16-17). 성도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선후(先後)관계를 여기서 이사야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과거형(사51:3a)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미래형(사51:3b)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a)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b)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c)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사51:4);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제사장나라일까요?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그 말씀, 율법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1)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사51:4a);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그 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먼저 주목을 해야만 합니다. 그 시선을 놓쳐버리거나 외면하게 되면 그때부터 신앙생활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장의 나라도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2)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사51:4b); 이사야는 선민들의 신앙생활은 개인적인 삶인 동시에 공동체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정국가의 기본법인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다 함께 율법을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제대로 실천하게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기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사51:4c); 그 뜻을 이사야가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율법 가운데 담겨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은 공의의 정신으로 모든 생명을 살리는 것이며 구원의 빛을 던져주는 것입니다(사51:4c).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그 뜻을 선민들이 실천하느냐 아니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 심판이냐 아니면 구원이냐가 결정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a)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b)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사51:5); 율법 가운데 담겨 있는 하나님 말씀의 뜻대로 실천하는 경우와 그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1)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사51:5a); 오늘날 법치국가에서는 하나의 법 적용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도달주의’(到達主義)입니다. 국가의 법이 공포가 되는 것만으로 즉시 적용이 되고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당사자에게 그 법의 취지가 도착이 되었을 때에 적용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상대방에게 도달이 되어야 비로소 그 준수여부를 판단하고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과 구원이라는 분류와 최종판정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 뜻을 올바로 해석하여 가르쳐주어야만 합니다(마28:18-20). 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선민들과 성도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요? 그 결과에 따라 그들의 구원과 심판도 결정이 될 것입니다.
(2)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사51:5b);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말씀을 어디에까지 전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훗날 그리스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그와 똑 같은 내용을 이사야가 이미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 먼 곳에 있는 나라가 바로 ‘섬들’(사51:5b)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먼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도면 그들 역시 여호와를 앙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a)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헤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b)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사51:6); 종말심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인 공의와 구원은 어떤 모양이든지 성취가 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1)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헤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사51:6a);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 종말로 현재의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가 됩니다. 더구나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나면 그 가운데에서 호흡하며 육신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하루살이같이 죽게 됩니다(사51:6). 여기까지가 종말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의 내용입니다.
2) 그런데 더욱 세부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신약의 말씀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가 되면 하늘에서 땅으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게 됩니다(계21:1-2). 그 성으로 들어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자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계21:27).
3) 둘째, 하나님의 최종심판을 위하여 땅과 바다는 그 가운데 죽은 자들을 토해내도록 되어 있습니다(계20:13).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게 됩니다(요5:29).
4) 셋째, 최종심판 전에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재림하십니다.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아직 살아 남은 자들에게는 휴거가 있을 것임을 사도 바울과 요한이 밝히고 있습니다(살전5:16-17, 계20:6).
(2)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사51:6b); 만약에 선민과 성도들이 땅끝까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전하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자신들만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겠다고 하는 신앙생활로 일관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했기에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1) 마치 그러한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듯이 여기서 이사야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사51:6b)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사람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좁은 소견으로 우리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실현할 수 없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선민과 성도들이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대안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모습의 성도가 다시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입니다.
2) 그 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8-11). 영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함께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민들이 자신들에게 성전과 율법과 할례가 있다고 이방인들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선민들에게 주신 그 율법을 준행하고 절기를 따라 죄 사함의 제사를 드리게 되면 그들은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렇지만 이사야는 본문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전하고 그것을 지키도록 가르쳐야만 합니다(욘1:2, 4:11, 마16:4, 28:18-20).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 선민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해야만 합니다(출19:5-6).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선민만의 구원만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율법으로 독점하고 속죄의 제사를 독식하게 되면 심판과 멸망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선민과 성도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고 자만해서도 안됩니다.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만민구원을 실현하실 수가 있습니다. 현재의 하늘과 땅을 사라지게 하고 모든 거주민을 하루살이같이 소멸시켜버리시고 그 공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새로운 성도를 탄생시킬 수가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바,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새로운 성도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영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그들은 이미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요1:12-13). 그러므로 이왕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아무쪼록 그와 같이 영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확실하게 누리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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