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33강(사49:4-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1월 29일(금)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활동과 당대의 실망스러운 결과, 그러나 이사야가 결코 실망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사49:4-9)
흔히 믿음의 조상을 아브라함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데라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향인 고대문명의 중심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부터 서쪽 이방지역 가나안으로 선교여행을 떠난 사람입니다(창11:31, 행7:2-4). 도중에 팀의 리더이며 족장인 아버지 데라가 여행을 포기하고 맙니다(창11:32). 북부 시리아에 있는 하란 땅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데라를 떠나서 본래의 목적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네 가지 축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첫째, 자손의 번성, 둘째, 본인 이름의 창대함, 셋째, 강력한 보호하심, 넷째, 가는 곳마다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 넘침 등입니다”(창12:1-4).
그 가운데 아브라함 당대에 몇 가지 축복이 임하게 된 것일까요? 처음 세 가지의 축복이 상당히 임한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러나 세상 영웅들에 비해서 본다면, 그들을 능가할 정도의 위업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의 축복은 한참 미흡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손의 번성; 애초 무자식이었던 아브라함에게 8명의 아들이 생깁니다(창11:30, 16:15, 21:3, 25:1-4).
(2) 아브라함 이름의 창대함; 그랄 왕 아비멜렉과 대등한 평화조약을 맺을 정도로 한 차례 그 이름이 창대해집니다(창21:22-34).
(3) 강력한 보호하심; 아브라함을 건드린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협이 몇 차례 있게 됩니다(창12:17, 20:3, 7, 18).
(4)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복이 넘침; 소돔과 고모라 등 염해 지역 도시국가를 침략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인질을 끌고서 북송하고 있던 메소포타미아의 다국적군대를 추격하여 재물과 인질을 되찾아오는 쾌거를 이룩한 바가 있습니다(창14:14-16). 그렇지만 아브라함을 통하여 많은 땅을 정복하거나 이방 땅 선교가 크게 이루어진 적은 없습니다(행7:5).
그러므로 결론은 아브라함 당대에 성과가 그리 크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서 온 세상 만민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당장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미래지향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당시에 그로 말미암아 이방인들 가운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성과가 눈에 별로 뜨이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의 다음 간증과 같이 그 결과가 허무하며 허망하다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사49:4a).
당장은 세상적으로 이루어진 성과가 미흡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실망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믿음의 눈으로 자신을 종으로 사용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자손들과 이방인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이십니다(창21:33, 22:12). 아브라함의 그 믿음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초래하고 있습니다(창22:13-14, 출12:21-23, 하나님께서 스스로 유월절 어린양을 준비하심, 요1:29). 그 분이 이제는 이사야 자신을 선지자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외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그 성과가 당대에 크게 발생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주인이 맡긴 사명만 감당하면 되는 종에 불과합니다. 전체적인 계획과 그림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구상하시며 그리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계획을 끝까지 실현하시며 새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은 모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서 하나님의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만 충실하게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당장 눈에 확 뜨이는 위대한 업적과 성과를 이루고자 스스로 집착하는 것은 종의 신분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이 자신의 힘으로 주인이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과대망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그의 믿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사49:4b).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사야가 본문 제5-7절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첫째, 이사야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동족들에게 외쳐도 우상문화를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렇지만 이사야는 미래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능력으로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 예언을 반드시 다음과 같이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입니다(사49:5).
(2) 메시아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끝까지 구원을 베풀 것입니다(사49:6).
(3) 이 세상에서 멸시를 받는 자, 미움을 받는 자, 종살이를 하고 있는 자를 모두 구원할 것입니다(사49:7).
그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서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각 구절을 분석하고 묵상을 통하여 그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이사야)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b)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 도다. (c)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사49:5); 이사야를 선지자로 삼아 동족들에게 예언의 말씀을 외치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다음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1)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이사야)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사49:5a);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사야 자신의 생명을 만드시고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실 때부터 벌써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시고자 예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신 것입니다(사6:8).
(2)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 도다”(사49:5b);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워서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게 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이상 배신하지 말고 이제는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위탁하신 말씀이므로 그 예언은 반드시 역사 가운데 성취가 될 것입니다(사49:5b). 비록 이사야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아니할 지라도 그 일이 훗날에 틀림없이 실현이 될 것임을 그가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지자 이사야의 하나님신앙입니다.
(3)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사49:5c); 선지자 또는 하나님의 종은 그 성취의 위대함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대에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였지만 그 믿음의 뿌리와 그루터기로 말미암아 주인의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믿음의 뿌리는 자신의 생명과 사명이 모두 하나님의 창조와 예정하심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그루터기는 비록 세상사람들이 듣기를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그 말씀과 예언을 정확하게 선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그 결과 신실한 종은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영광을 얻으며 그 일이 창조주의 능력으로 온전히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사49:5c).
둘째로, “(a) 그가 이르시되, 네(메시아)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b)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사60:1)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 메시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그가 이르시되, 네(메시아)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사49:6a); 선지자 이사야가 아무리 외쳐도 선민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는 유대인들이 끄떡도 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하나님경외의 신앙으로 나아오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여호와의 종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게 되면 그 일이 성취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더 큰 일을 실현하실 것으로 또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2)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사60:1)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b); 장차 메시아와 그 뒤를 잇게 되는 여호와의 종들 곧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만민구원을 위하여 이방 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사야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그 행로를 따라 복음이 전파되고 땅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계획임을 이사야가 여기서 선포하고 있습니다(사49:6b).
셋째로, “(a)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눅16:20-21),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사61:1), (b)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사49:7); 선지자와 메시아를 이 세상에 파송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눅16:20-21),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사61:1)”(사49:7a); 온 세상 끝까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전파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더 대단하고 중요한 일은 그 복음이 담고 있는 내용 그 자체입니다;
1) 그 내용은 세상에서 억눌리고, 소외를 당하고, 멸시를 당하고 있는 자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인간대접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예표를 구약에서 이미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애굽의 노예를 살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키고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출2:23-25, 12:29-42, 19:5-6). 둘째, 다시 바벨론의 포로로 살게 되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44:28-45:5, 스1:1-4).
2) 그리스도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거지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의 품에서 높임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눅16:20-21). 그리고 예수님은 그러한 미천한 자와 작은 소자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라고까지 강조를 하시고 있습니다(마25:40).
(2)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사49:7b);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이 세상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것은 메시아를 영접하는 것으로 심판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요3:16-18). 그리스도의 말씀은 세상의 임금과 고관들이 이제까지 해오던 이기적인 세상경영의 방법과 제도를 하나님의 공의의 뜻에 맞게 완전히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 드린 그대로, 사회에서 버림을 받고 있는 자, 멸시를 당하고 있는 자, 종의 신분으로 전락한 자를 모두 인간대접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곧 보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기록입니다. 과연 어떤 것을 보게 될까요?
1) 그들 미천한 자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놀라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눅16:20-21, 마25:4).
2) 하나님께서 직접 왕으로 그리고 고관으로 삼으시는 자들이 이제는 그와 같은 세상을 만드는데 종으로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사49:7b).
3) 세상의 부족한 재화로써는 모두 인간대접을 해주는 사회를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마14:13-21)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일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결론적으로, 종은 주인이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행하면 됩니다. 그 일이 많은 업적을 내는 일인지 아니면 역사 가운데 고난을 당하고 마는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별로 달가워하지 아니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겠습니다(요15:18-20).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도 당대에는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동족들이 받아 들이지 아니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실망하지를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모태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선지자로 삼아 하나님의 일을 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주인께서 그에게 맡기신 그 사명만 잘 감당하면 됩니다. 그 일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미진한 일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하에서 반드시 역사적으로 성취가 될 것임을 이사야가 믿고 있습니다.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만민구원의 시대를 여실 것이며 그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땅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세상에서 비천한 자들이 사람대접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가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의 기록이 바로 본문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사야와 같은 믿음을 가지시고 전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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