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32강(사49: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3. 17:09

이사야 강해 제232(49: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128()

 

참다운 여호와의 종과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과 만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끝까지 종이 갖추어야만 하는 덕목에 대하여(49:1-4)

 

이사야는 본문에서 다음 세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어떻게 양성하여 열방과 만민에게 파송하고 계시는가?(49:1-3a)

(2)  둘째, 만민구원사역에 임하고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에게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님(49:3b).

(3)  셋째, 종은 자신에 대한 평가와 보상을 모두 주인에게 맡겨야만 한다는 가르침(49:4) 등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이 어떻게 본문의 각 구절에서 설명이 되고 있는지 지금부터 구절을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b) 여호와께서 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c)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49:1); 다음과 같이 세 단락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49:1a); 여기서 섬들은 지리적으로 가나안 서편 곧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있는 많은 나라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먼 곳 백성들은 동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나라의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를 합쳐보면, ‘열방과 만민이라는 개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열방과 만민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2)  여호와께서 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49:1b); 먼저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에서부터 자신을 부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는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아기가 모태에서 태어날 때에 감고 나오는 그 탯줄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의미하고 있는 는 그 육신적인 탯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어미의 뱃속이라는 복중의 용어가 별도로 사용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미의 뱃속에 육신적으로 잉태가 되기 전에 이미 영적으로 생성이 되고 있는 생명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 창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2)    둘째, 창조주가 영적인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 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지상에 있는 태중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생명의 산실에서 생명들이 태어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에서부터 나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나에게 사명을 맡기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훗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예정론(1:4-6) 원형을 미리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3)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49:1c); 드디어 그 생명이 내 어머니의 태중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기와 연합하여 하나의 인격체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이름을 가지게 되자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그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그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피조세계에서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라는 것입니다(6:39).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불쌍한 생명들에게 메시아의 해방과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라는 것입니다(8:1-18).

  둘째로, “(a) 을 날카로운 같이 만드시고, (b)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c)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 통에 감추시고”(49:2); 세 단락으로 나누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을 날카로운 같이 만드시고”(49:2a);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이 창조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1:1-3, 4:4). 그 말씀을 피조세계에서 대언할 수 있도록 선지자의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하시고(6:7) 날카로운 칼같이 만들고 있습니다(49:2a). 선지자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가 되면 그것은 마치 양면에 날 선 칼과 같아서 선지자 자신과 세상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들며 그 잘잘못을 쪼개어내는 수술칼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서 저자의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2-13).

(2)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49:2b);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선지자는 결코 그들의 사회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각종 위협과 위험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의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세상의 거센 폭염과 비난으로부터 숨겨주시는 것입니다(49:2b). 그 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다윗 왕은 그의 시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17:8-9).

(3)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 통에 감추시고”(49:2c);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그 말씀의 뜻대로 신실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여호와의 종은(49:3) 마치 적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는 날카로운 화살촉과 같습니다(49:2c). 그 화살에 맞게 되면 악한 세력의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지게 됩니다(8:2). 그리고 사람들의 무디어진 신앙양심이 되살아나게 됩니다(27:54, 2:36-38). 특히 메시아가 오셔서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그것은 가장 날카로운 화살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라고 하는 그 화살을 잘 갈고 닦아서 그의 화살 통에 감추시고 곧 세상으로 날려보낼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a)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b) 내 영광네 속에 나타낼 (새로운)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49:3); 이사야가 여호와의 종과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1)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49:3a); 겉으로 보면,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종임을 말하고 있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 제52장 말미와 제53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특별한 여호와의 종메시아와 관계된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2)  내 영광네 속에 나타낼 (새로운)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49:3b); 메시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낼 성도들 곧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모시고 만민구원을 위한 복음사역에 나서시는 메시아가 그 효시가 될 것입니다.

1)    훗날 그 점에 대한 사도 요한의 상세한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2)    하나님의 영광은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는 말씀과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는 성령님의 권세를 통하여 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게 내재하여 있음을 사도 요한이 증언하고 있는 기록입니다. 훗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에게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영광이 내주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4:16-17, 26-27, 1:8).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말하자면, 성령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또 다른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겠습니다.

넷째로, “(a)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b)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49:4); 참다운 종의 자세가 무엇일까요? 특히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서 만민구원사역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신실한 종의 자세를 가지라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1)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49:4a);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선지자, 메시아, 성도들인 새로운 이스라엘은 모두 신실한 종들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처럼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들입니다(53). 한마디로, 자신의 생명을 걸어놓고 평생 동안 만민구원사역을 실천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에서 얼마나 위대하며 큰 인물들인지 모릅니다.

1)    하지만 이사야는 그들이 끝까지 종의 자세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영광을 취하거나 교만하게 되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인 자신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열심히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그 결과가 헛되고 무익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합니다(49:4a).

2)    그 말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셨기에 열매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먼저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을 주인이신 하나님과 주님께 돌리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역시 그 같은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의사 누가의 구체적인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7:9-10).

(2)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49:4b); 그와 같이 끝까지 종의 자세를 견지했는지 아니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사명을 마친 다음에 반드시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평가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종은 모두 때가 되면 주인과 결산을 해야만 한다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25:14-20). 그 자리에서 끝까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신실한 종의 자세로 감당한 자에게는 그에 따른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25:21). 반대로, 스스로 영광을 취하고 마치 주인처럼 행세한 종은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49:4b).

결론적으로, 본문을 요약해보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불러 사용하시기 위하여 그 준비하시고 예정하심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생명의 창조 때부터 자신의 종을 구별하시고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을 그렇게 정성스럽게 양성하여 열방과 만민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49:1-3a).

(2)  둘째, 만민구원사역에 임하고 있는 메시아와 그 제자들인 새로운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속사람 속에 그리고 성도들이 모인 자리에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존재에 대하여 이사야가 미리 말해주고 있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그의 예언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종과 사람들) 에 나타낼 (새로운)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49:3b); (49:3b).

(3)  셋째, 종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랑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이사야의 언급입니다. 왜냐하면, 종 자신에 대한 평가와 보상을 모두 주인에게 맡겨야만 하기 때문입니다(49:4).

  위와 같은 세 가지 사실을 깊이 음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아무쪼록 인생이 끝날 때가지 신실한 종의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말씀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창조의 능력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