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30강(사48:17-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1월 26일(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명령에 진작에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것인가?(사48:17-19)
선지자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말씀은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사아 제11장 전반부에 기록된 이상세계의 모습과 같이 인류가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해본 세상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세계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나 능력으로써는 건설할 수가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이사야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정직하게 나아와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그러한 이상세계를 만들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달라고 간구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 제11장 전반부에 기록이 되고 있는 이상세계는 메시아가 오심으로 실현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하나님의 나라’입니다(계21:2-8). 그러므로 이사야가 기대하고 있는 그러한 변화는 사람들이 메시아를 영접하고 그의 제자로서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요1:12-13, 마16:24, 28:18-20, 행1:8, 고전6:19-20).
여기서 본문의 이사야 예언의 말씀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익숙한 현실세계의 이야기로 바꾸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자신의 백성들을 구속하려고 하신다면 현재 백성들이 어떠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상의 전환을 하고 보면 본문의 말씀의 내용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본문의 각 구절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내용은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b)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48:17); 다음과 같이 두 문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사48:17a); 두 가지 용어의 뜻을 되짚어서 생각해보면 다음의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1) 먼저 ‘구속자’라고 하는 용어는 그 뜻이 종으로 팔려가서 살고 있는 자를 돈을 주고서 다시 사서 해방을 시켜주는 자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속의 대상자는 현재 해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는 죄와 사망의 세상에 사로잡혀서 여전히 종 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롬8:2).
2) 그 험악한 세상은 무한경쟁의 사회이며 약육강식의 사회입니다(창6:1-5). 그러므로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해치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것을 차지해야만 합니다. 그 사회는 기본적으로 재화가 부족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남지 아니하면 죽음으로 가게 되는 자는 바로 자신이 될 것입니다.
3) 다음으로 ‘거룩하신 이’는 그러한 세상을 뛰어넘어 있는 자이며 그 세상을 거룩한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만약 그러한 경지의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면 한번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그 속에서 이전구투(泥田狗鬪, 진흙탕 속의 개싸움)의 전투만을 벌이다가 결국은 비슷한 세상을 만들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거룩하신 이’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그 분의 자녀와 같은 권세를 얻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1:12-13). 따라서 ‘거룩하신 이’로부터 능력을 받지 못하게 되면 영원히 이전구투의 삶만을 영위하다가 죄와 사망이 지배하고 있는 땅에서 죽고 말 것입니다.
(2)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48:17b); ‘양약고구이이어병’(良藥苦口而利於病,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몸에는 유익하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가 싫습니다. 현실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치자고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듣기에 크게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심성이 탐욕적이며 남을 해치더라도 자기만 잘 살고 성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주의라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도 싫고 더더구나 실천하기가 싫은 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처방을 마련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1)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주십니다(마21:34-36, 행7:52). 선지자는 먼저 백성들의 잘못을 낱낱이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면 나라가 망하고 난민이 되고 말 것이라고 예언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진심으로 회개를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역사섭리를 통하여 채찍을 휘두르십니다(사48:10-11). 그것은 그 백성을 고쳐서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합니다. 그 옛날 경험했던 광야생활이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마땅히 행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백성들이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사48:17b).
둘째로, “(a)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b)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계22:2-3),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사11:9)”(사48:18); 하나님의 말씀을 자식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알아듣는 자는 다음과 같은 복을 얻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1)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사48:18a); 하나님의 말씀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창1:3). 그렇게 절대적인 권력을 한 손에 쥐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명령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명령으로 알아듣고 정직하게 시행을 하는 자는 생명의 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마25:34-46). 반대로, 코웃음을 치고 비웃고 마는 자는 영육간의 소멸을 맞이할 따름입니다(마10:28).
(2)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계22:2-3),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사11:9)”(사48:18b);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생명을 살리는 명령으로 제대로 알아듣고서 공의의 정신으로 시행을 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두 가지의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다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강 같은 평화의 은혜입니다; 성도는 그 마음 속에 이 세상에서 얻지를 못하는 영적인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주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육체적인 장애와 질병도 치료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영적으로 이미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그 강물이 흘러나와서 성도와 그 사역의 현장에서 치유의 능력으로 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22:2-3).
2) 둘째, 생명살림의 넓은 역사가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되는 은혜입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그 지배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 생각하는 방법과 사는 방법이 달라지게 되자 놀라운 변화가 초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철옹성과 같던 약육강식의 사회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생명살림의 넓은 역사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말씀의 능력으로 이 땅을 마치 바닷물처럼 뒤덮어가고 있습니다(사11:9).
셋째로, “(a)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요1:13), (b)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창22:17), (c)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d) (자손의 구원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사48:19); 영적인 자손과 혈통적인 자손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사람의 이름과 그 자손의 이름을 또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요1:13)”(사48:19a);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실천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단12:3). 그래서 이사야가 영적인 자손이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의 기록과 같이 훗날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가 많이 발생할 것입니다(행2:40-41). 그것은 사도 요한이 지적한 것처럼 훗날 혈통적이거나 민족적인 테두리를 뛰어넘어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많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요1:12-13).
(2)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창22:17)”(사48:19b);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때에 그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 부르시고 8명의 아들을 주셨습니다(창16:15, 17:5, 21:3, 25:1-6). 마찬가지로 오늘 날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면 그 후손이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입니다(사48:19b).
(3)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사48:19c); 다니엘은 많은 사람을 여호와께로 인도하여 의의 길로 살아가게 한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단12:3). 여기서 이사야는 그 이름이 하나님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확실하게 기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계21:27).
(4) “(자손의 구원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사48:19d);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본 이후 남은 평생을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행9:3-22, 22:21). 그러한 사도 바울이 한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골육과 친척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롬11:13-14). 그 소원을 주님께서 들어주시고 있습니다. 로마서 제16장에 사도 바울을 도와 선교에 함께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의 친척들이기 때문입니다(롬16:7, 11, 21). 그러므로 여기서“(자손의 구원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사48:19d)는 이사야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실현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세계의 모습과 정반대가 되는 이상세계를 이루겠다고 하는 예언의 말씀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를 선민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보내었지만 그들이 선지자의 말을 수용하지를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신다고 합니다. 이사야가 메시아가 오실 것임을 예언하면서 특히 그의 선지서 제11장 전반부에서 메시아가 건설하는 이상세계의 모습을 묘사하여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이사야는 그 모습의 일부를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명령으로 알아듣고서 그것을 실천하고자 공생애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자에게는 다음과 같이 마치 이상세계에서나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놀라운 미래가 전개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성도는 그 마음 속에 이 세상에서 얻지를 못하는 영적인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합니다. 나아가서 육체적인 장애와 질병도 치료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2) 말씀을 전파하자 마치 철옹성과 같던 약육강식의 사회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생명살림의 넓은 역사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말씀의 능력으로 이 땅을 마치 바닷물처럼 뒤덮어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사11:9).
(3)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많은 자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이 될 것입니다.
(4) 특히 이방인선교에 진력할 때에 자신의 자손과 친척 그리고 동족들이 그만큼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러합니다(롬11:13-14, 16:7, 11, 21).
이상과 같은 복과 상급이 이사야의 예언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공생애를 살아가는 자에게 그 은혜와 축복이 각별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은혜와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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