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27강(사48:8-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2. 08:54

이사야 강해 제227(48: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123()

 

창조주의 공의를 깨닫고 만민구원의 일꾼으로 나설 수 있는 성도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어떤 자를 어떻게 준비하신다는 것인가?(48:8-11)

 

본문에서 이사야는 선민 유대인들이 왜 하나님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48:8).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 패역한 백성들을 당장에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고 견디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48:9). 나아가서 그들을 연단하여 정금같이 사용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을 행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도 암시를 해주고 있습니다(48:10-11).

그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고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분해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네가 과연 (풍문을) 듣지도 못하였고, (지식을) 알지도 못하였으며, (영적인) 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b)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48:8);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하면서 모세를 중심으로 하여 신정국가(神政國家)를 세운 것은 주전 15세기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활동시기는 주후 1세기입니다. 그 중간쯤인 주전 8세기 선민사회 유다 왕국에서 이사야가 선지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하나님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현상은 메시아가 오실 때에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네가 과연 (풍문을) 듣지도 못하였고, (지식을) 알지도 못하였으며, (영적인) 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48:8a); 창세기 제2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 Living soul)의 존재로 탄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2:7). 그 대목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을 받고 흙에서부터 육체를 받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과 육이 함께 동거하고 있기에 생령이라고 하는 독특한 혼적(魂的, belong to soul)인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성을 활용하여 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성경적인 상식을 가지고 이 구절을 비추어보게 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1)    첫째, 사람들이 육적인 귀를 통하여 하나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진의’(眞意, 진정한 뜻)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풍문이나 소식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2)    둘째, 사람들이 히브리정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식은 배울 수가 있지만 더 중요한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는 배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3)    셋째,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는 영적인 직관력과 통찰력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경지에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선민들도 그러합니다. 왜 그럴까요?

(2)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48:8b); 그와 같이 하나님말씀의 본래의 뜻을 사람들이 습득하거나 깨닫지를 못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기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 제 논에 먼저 물을 끌어다 대는 식)으로 해석을 하여 선민들의 기득권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조상 때부터 대를 이어가면서 진행이 되고 있기에 여기서 이사야는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48:8b)고 언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a)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b)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48:9);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선민의 사회가 멸망을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48:9a); 여호와의 이름이 사용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람과의 언약을 체결하는 때입니다.

1)    예를 들면, 창세기 제9장에서 현대 인류의 조상이 되고 있는 노아와 하나님께서 소위 무지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9:8-17). 그리고 제12장에서는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방인 선교를 위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12:1-4). 그때 언약을 제시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 계약상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의 자리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노아는 ’(, 언약의 법적 상대방임)로서 그 이름이 불려지게 됩니다.

2)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48:9a)라고 말씀하시는 뜻은 그 옛날 노아 또는 아브라함과 체결하신 언약을 아직도 기억하시고 있다는 뜻입니다(2:23-25). 그러한 언약에 이미 갑으로 서명을 하셨기에 그 언약의 실천에 신실하기 위하여 너희들을 당장 징계하고 멸망시키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시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2)  내 영광(榮光, glory, δóξα)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48:9b);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을 시키고 광야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있습니다(19:7-8, 20:1-24:8). 그리고 모세를 먼저 공부시켜서 백성들에게 율법에 대하여 공부를 시켜주고 있습니다(24:12);

1)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불러간 지 열흘 이상이 지난 시점입니다. 지도자 모세가 보이지 아니하자 불안해진 백성들이 장로들을 내세워서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 대신에 자신들을 인도한 신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32:1). 그 결과 금송아지우상이 여호와의 상징으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2)    그 광경을 산 위에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대노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을 멸망시키고 모세의 가족만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드시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32:10). 모세가 손이 발이 되도록 백성을 위하여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그때 모세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광야에서 백성들을 말살시키시면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비웃을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이라고 애써 출애굽을 시키고 드디어 광야에서 모두 죽여버리고 있으니 그러한 신을 누가 믿을 것입니까?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도 하나 제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신은 창조주의 영광을 지니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32:11-13의역).

3)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말씀을 들으시고 자신의 창조주로서의 영광을 생각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멸망시키지 아니하십니다(32:14). 이사야는 그렇게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생각하여 선민들을 멸절시키지 아니하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14:12). 더구나 이사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도 분명히 그러하다는 것입니다(10:1-4).

셋째로, “(a)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b) (, silver)처럼 (주물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메질법으로) 택하였노라”(48:10);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연단하여 쓸만한 청지기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 연단의 방법이 고난의 메질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48:10a); 이스라엘 자손들을 멸망시키는 대신에 그들을 연단하여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배신하고 조상 때부터 패륜과 반역의 삶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을 어떻게 고쳐서 사용하면 될까요? 이사야는 그 방법이 바로 연단’(鍊鍛, 훈련과 단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48:10a).

(2)  “‘(, silver)처럼 (주물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메질법으로) 택하였노라”(48:10b); 금이나 은, 또는 놋 등으로 그릇이나 돈을 만드는 경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의 방법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물법이고 또 하나는 메질법입니다.

1)    이사야는 여호와의 뜻을 배신하고 있는 선민들을 연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물법이 아니라 메질법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8:10b).

2)    만약 주물법을 사용하여 은 그릇이나 은화를 제조한다고 하면 비교적 쉽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틀에 은을 녹여서 붓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메질을 하여 완전한 모양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량생산을 위하여 획일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몰인격적이며 기계적인 생산의 방식입니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물법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개인의 성향과 재질의 차이를 훈련과 단련에 반영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메질법입니다. 금 덩어리와 같은 소재를 모두 일단 편편하게 펴는 것입니다. 높은 것은 낮아지고 낮은 것은 높입니다. 그리고 너비도 가지런히 하여 원판을 만듭니다.

4)    그 다음에는 무엇을 만들지를 먼저 생각하면서 대장장이가 그 원판을 두드리게 됩니다. 개개의 재질을 생각하면서 계속 메질을 하게 됩니다. 그 원판들을 서로 붙여서 하나의 필요한 유기적인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주님의 지체로서의 성도가 탄생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5)    참고로, 사도 바울의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12:4-5).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연단의 과정도 서로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고난과 훈련을 통하여 거룩한 성도로 다듬어져 나갑니다. 그 결과 주님의 몸의 지체로서 각자 맡은 기능을 넉넉하게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a) 나는 나를(내 이름을) 위하여, 나를(내 영광을)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b)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榮光, glory, δóξα)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8:11);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사람을 고쳐 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피조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대방이 되고 있는 성도들도 그 언약의 내용의 성취에 신실해야만 합니다;

(1)  나는 나를(내 이름을) 위하여, 나를(내 영광을)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48:11a);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고 하나님께서 사용할 수 있는 일꾼으로 만들어나가는 그 모든 일이 사람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여 세상을 다스리겠다고 선언하신 하나님께서(1:26-27) 그 책임을 지시고 죄인이 속죄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을 이 세상에 보내어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榮光, glory, δóξα)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8:11b);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처음 약속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1)    따라서 죄와 사망에 종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1:12-13, 3:16-17, 8:1-11). 그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7:24-25).

2)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훗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 그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게 됩니다(고전15:24). 주님과 성도들이 새 세상 건설의 모든 영광을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만약 창조주 하나님께서 믿음의 열조들에게 주신 언약을 헌신짝같이 버려버렸다면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배신하고 이방 신과 우상을 즐겨 섬기다가 벌써 여러 번 멸망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도 별로 다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에 신실하시며 반드시 성취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왜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 두 가지를 이사야가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을 위해서”(48:11)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은 현대인류의 조상이 되고 있는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세울 때에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아브라함과 영원한 언약을 세울 때에도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언약식을 거행하면서 그 언약을 반드시 이행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는 의 자리에 서명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추호도 흐트러짐이 없이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자신이 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있습니다.

(2)  그러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언제나 마련해주십니다. 그리고 죄 범한 사람들을 바로 징벌하지를 아니하고 회개의 기회를 다시 한번 주시고 있습니다(8:11). 그 이유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다시 세워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진노를 참으시고 사람을 다시 고쳐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19:22).

(3)  훗날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이유도 그 일을 위한 것이라고 이사야가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온 세상에 메시아의 깃발을 휘날리시면 땅끝에서부터 많은 족속들이 회개를 하고서 몰려들 것입니다(11:10-12). 그들이 성도가 되어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것입니다(66:20-21, 28:18-20). 그리고 종말이 되면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그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쳐드리고 모든 영광을 올려드릴 것입니다(고전15:24).

(4)  그것이 크리스천의 비전입니다. 그 비전이 오늘도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선택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그 일에 앞장을 서야만 합니다. 아무쪼록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며 이름을 드높이는 삶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메시아의 나라를 확장하여 창조주에게 바쳐 올리는 영광이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