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26강(사48:6-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월 22일(금)
지금까지 예언대로 성취가 된 일은 무엇이며 앞으로 예언대로 실현이 될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는 무엇인가?(사48:6-7)
선지자 이사야가 동족들에게 애타게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요약이 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선민의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앗수르에 의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사10:11, 28:3, 왕하17:6), 앗수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위기(사8:7, 왕하18:17), 앗수르를 물리치시는 여호와의 기이한 역사(사37:33-35, 왕하19:35), 히스기야 왕의 수명 연장(사38:5, 왕하20:5-7) 등입니다.
(2) 둘째, 예언하신 그대로 장래에도 역사 가운데 실현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벨론에 의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사3:8, 39:6-7), 바사의 고레스 황제에 의한 갈대아 인들의 신바벨론 제국의 멸망(사13:19, 14:22, 21:2, 45:1-4), 포로가 된 선민들의 해방과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사44:28) 등입니다.
(3) 셋째, 은밀하게 예언해주고 있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앞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만민구원의 역사가 전개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천되는 새로운 시대가 창조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사11:1-12, 48:1, 6-7).
과연 그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서는 어떻게 암시해주고 있는지 지금부터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네가 들었으니 이 (성취가 된) 모든 것을 보라. (b) 너희가 선전(간증하고 전파)하지 아니하겠느냐? (c)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 은밀하고 신비함)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사48:6);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이미 예언대로 성취된 일들을 살펴보고 이방세계에 증거를 해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예언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네가 들었으니 이 (성취가 된) 모든 것을 보라”(사48:6a); 이미 위에서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선민의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가 되었으니 그것을 잘 음미해보라는 것입니다;
1)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진작부터 예언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사28:3). 그 예언 그대로 사마리아에 왕도를 두고 있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역사 가운데 멸망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제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왕하17:6).
2) 이사야는 앗수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위기에 대하여 벌써부터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사8:7-8). 예언의 말씀대로 앗수르 황제 산헤립의 군대가 유다 왕국을 침략하여 전국을 휩쓸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됩니다(왕하18:13, 17).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에서 똑 같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길에 서매”(사36:1-2).
3)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시는 여호와의 기이한 역사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으며 그 내용이 그의 선지서와 역사서에 동일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앗수르 왕이)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예루살렘)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대저 내가 나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사37:34-35, 왕하19:33-34). 그 예언대로 성취가 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역시 역사서와 그의 선지서에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만5천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왕하19:35-36, 사37:36-37).
4) 히스기야 왕의 수명 연장의 건에 대해서도 같습니다. 먼저 이사야의 예언이 나타납니다; “너(이사야)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여호와가) 네 수한에 15년을 더하고”(사38:5, 왕하20:5-6). 예언의 말씀 그대로 성취가 됩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의 병이 나은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사38:9),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왕하20:7).
5)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역사 가운데 성취가 됩니다. 그 증거를 이사야는 위와 같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족인 선민들은 하나님의 예언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능력에 대하여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실을 온 세상에 전해야만 합니다.
6)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에 기록하고 있는 예언들 가운데에는 아직 역사적으로 실현이 되지 아니하고 있는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예언들도 장차 반드시 실현이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선민들이 믿기를 이사야가 바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예언들입니다; 주전 586년경 바벨론에 의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사3:8, 39:6-7), 주전 539년경 바사의 고레스 황제에 의한 갈대아 인들의 신바벨론 제국의 멸망(사13:19, 14:22, 21:2, 45:1-4), 주전 538년경 포로가 된 선민들의 해방과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사44:28) 등입니다.
(2) “너희가 선전(간증하고 전파)하지 아니하겠느냐?”(사48:6b); 선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여호와의 말씀과 그 예언이 성취가 된 사실을 온 세상에 증거를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선민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구원에 대하여 기뻐하며 그 은혜를 온 세상에 나누어야만 할 것입니다.
1) 그런데 실제로 선민 유대인들이 역사 가운데 그렇게 행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선민들만이 독식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구원의 은혜를 모르고 그냥 이방 신과 우상만을 섬기고 살다가 여호와로부터 멸망을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2)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존의 선민 유대인 대신에 온 세상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불러서 만민구원의 종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새로운 역사를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시작을 하십니다. 그 동안 선민구원사상으로 하나님말씀에 대하여 인위적인 제한을 가하고 있던 시대가 사라지고 바야흐로 만민구원의 하나님말씀의 본래의 뜻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변혁이며 소위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해당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3)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 은밀하고 신비함)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사48:6c); 만민구원과 세상구원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것이 극비사항(top secret)임을 이사야가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것이 ‘새 일’이며 선민들이 알지 못하던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귀신이 그 목적과 정체에 대하여 떠벌릴 때에 그것을 제지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강경합니다;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막1:23-26).
둘째로, “(a)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b)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c)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사48:7); 새로운 예언의 특징과 사전에 예언을 해주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사야가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1)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사48:7a);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는 목적과 그 정체에 대하여 이사야만큼 구체적으로 예언을 하고 있는 선지서가 없습니다;
1)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과 만민구원의 새 시대를 여시는 것은 은밀한 하나님의 계획이실 뿐만 아니라 새 역사의 창조라고 여기서 표현하고 있습니다(사48:7a).
2) 그렇지만 모세오경을 보면, 모세가 이미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모든 백성들에게 부어주어 모두 선지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3) 그리고 특별한 선지자로 메시아가 오심을 벌써 암시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 지니라”(신18:15),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의의 교사인 메시아), 늦은 비(성령님)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11:14).
4) 훗날 요엘 선지자는 그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욜2:23), “그 후에 내(여호와)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5) 그리고 미가 선지자는 메시아가 어디에 오실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
6) 그렇다면 선민들의 땅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일부 선지자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왜 지금 창조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는 말일까요?
(2)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사48:7b); 오늘 이전까지 선민들이 듣지를 못하고 있는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설혹 메시아가 훗날 그들 선민의 사회에 오신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과 사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를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1) 선민들은 그저 메시아가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며 그들 선민우월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시온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기 위하여 그들의 사회에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메시아의 사명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섭리의 방향에 대하여 눈뜬 소경과 같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사6:9-10).
2) 메시아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8:11-12, 9:10-13). 모두가 구원의 대상이며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요3:3-8).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무덤에서 3일만에 창조주의 능력으로 부활을 해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롬6:4).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남은 인생을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게 될 때에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요1:12-13, 롬8:1-18). 그것이 완전한 구원의 모습입니다.
3) 그와 같은 만민구원의 의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성을 짐작도 못하고 있는 선민들은 설혹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이방인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이방 땅으로 가서 외친 경우가 요나 선지자를 제외하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의 목적을 알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가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사48:7b)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사48:7c);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사전에 예언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주시는 이유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반드시 성취가 되고 있음을 알게 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언뜻 보면, 세상이 사람들의 뜻과 계획과 의지로 경영이 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의 음모와 꾀에 의하여 움직여져 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아닙니다. 훗날 하나님의 예언에 비추어보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의지만이 실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2)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고치시고 올바른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어 나가도록 그 창조의 능력으로 사람의 인생과 역사를 동시에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현할 수 있도록 역사가 진행이 되고 자신의 인생과 세상이 그 방향으로 움직여져 나간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그의 동족인 선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그 역사를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의 형편에서 벗어나기를”(사6:9-11)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역사 가운데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선민과 이방인이라고 하는 인위적인 장벽이 사라지고 모두가 만민구원에 동참을 해야만 구원으로 나아가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는 것입니다(마7:21, 8:10-12, 28:18-20, 요3:16-17). 그러므로 기존의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이 구원을 독점한다는 사고방식은 빨리 버려야만 합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라 메시아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는 시대가 전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의 내용을 가지고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1) 자신이 여호와로부터 받아서 예언의 말씀을 전해주었는데 그들의 역사 가운데 대부분이 실현이 이미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민 유대인들이 함께 경험하고 있습니다.
(2) 아직 성취가 되고 있지 아니한 예언들도 때가 되면 장차 그대로 실현이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서 온 세상에 전파를 해야만 합니다.
(3) 예언의 말씀을 반드시 역사 가운데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섭리하고 계시므로 피조물들이나 악한 영들이 저항하고 방해를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4) 만민구원의 새 시대는 메시아가 선민의 사회에 오심으로 대대적으로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미리 동족들에게 이사야가 예언의 말씀으로 전해주는 이유는 그때가 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빨리 동참을 하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의 동족들인 선민 유대인들이 이기적이고도 폐쇄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나서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사야의 소원이 아무쪼록 우리 모두의 소원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강해 제228강(사48:12-1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02 |
---|---|
이사야 강해 제227강(사48:8-11)(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02 |
이사야 강해 제225강(사48:2-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01 |
이사야 강해 제224강(사48:1, 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01 |
이사야 강해 제223강(사47:12-1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