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1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28. 12:07

이사야 강해 제214(45:23-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110(주일)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모든 사람들이 굴복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45:23-25)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숨쉬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45:23). 특히 하나님의 공의가 만민구원과 온 세상구원을 위하여 땅끝까지 전파가 되어나가게 되면 순차적으로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할 것임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방인들이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나아오는 역사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45:24). 둘째, 그 다음에는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드디어 칭의의 은혜를 얻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45:25).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음미하면서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b) 내 입에서 공의로운 이 나갔은즉, (c)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d)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45:23);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가 된다고 하는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45:23a);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이사야가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두고 맹세를 한다고 합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신분과 능력을 두고 약속을 한다는 뜻입니다;

1)    하나님의 신분은 무엇일까요?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창조주입니다. 둘째, 심판주입니다. 셋째, 구원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역시 세 가지입니다; 첫째, 창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질서를 창조하며, 천지를 만들고, 만물을 지으며, 사람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둘째, 심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심판이란 그 죄질에 따라 몸과 영혼까지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셋째, 구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를 말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고 새 생명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심판에서 구원으로 바꾸어주기 위해서는 유월절 어린양과 같은 대속물이 필요합니다(1:29). 완전한 대속물이 메시아입니다.

2)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세 가지 신분과 고유한 능력을 두고서 맹세를 하고 계십니다(45:23a). 그러므로 그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창조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현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반드시 성취를 하시겠다고 공언하시고 있는 그 맹세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2)  내 입에서 공의로운 이 나갔은즉”(45:23b); 그 맹세의 내용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공의’(the righteousness of God)를 실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세상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조금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공의를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공의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고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고 자신들의 의로움(10:3) 사회적인 정의’(social justice)가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공의라고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개념은 완전히 다릅니다.

2)    하나님의 공의는 피조물 모두를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정의는 남을 죽이더라도 자신은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집단에게는 해가 될지라도 자신들의 집단에 이득이 된다고 하면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제로섬’(zero-sum) 게임에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의 사회적인 정의의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3)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역사적으로 실현할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그 공의를 하나님께서 스스로 실천하시겠다고 그 입으로 공언하고 계십니다. 근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입에서 이 세상으로 말씀이 터져 나온다고 하는 것은 창조의 행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1:3)와 같은 것입니다.

4)    그리고 그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증거와 같이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4). 이 세상에 빛을 창조하고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발현이 되고 있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의 능력으로 이제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공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3)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나니”(45:23c);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거절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제55장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55:11).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공의를 실천하는 세상이 되라고 명령하시면 세상의 모든 만물과 만민은 그 명령에 복종을 해야만 합니다. 끝내 거절하고 자신들의 의를 성취하려고 나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4)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45:23d);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을 거절하게 되면 두려운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것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두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겠다고 맹세를 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계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28-29). 육체적인 죽음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45:23d).

2)    사족을 더하자면, 모든 피조물의 영원한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 죽이거나 살릴 수 있는 권세)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제부터는 자신의 생명만큼 이웃과 만물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라고 명령하십니다(12:30-31). 그것이 자신의 영생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공언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이 구태의연하게 제로섬 게임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자신과 자기집단에게만 유리한 사회적인 정의를 내세울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a) 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여호와께만 있나니, (b)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45:24); 창조주의 의도와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여호와께만 있나니”(45:24a); 세상에서 범죄행위의 고의성여부를 따질 때에 그 사람의 의도와 능력을 모두 살피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남을 해치고 싶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이 되고 있지 않다면 범죄행위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설혹 남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해치고 싶은 의도가 없다고 한다면 역시 범죄행위는 발생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 구절을 검토해봅니다;

1)    어떤 자의 말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흔히 따지고 있는 위와 같은 세상적인 행위의 구성요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 드린 의도와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경우에는 그 의도가 공의의 원칙의 실현입니다. 그리고 능력은 하나님의 고유한 입니다.

2)    공의의 정신은 본래 피조물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치 밀림과 같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살기에도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잡아 먹히기가 쉬운 처지인데 어떻게 남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간구를 해야만 합니다.

3)    간구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처럼 공의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간구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힘이 성령님의 임재를 통하여 영적으로 공급되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둘째,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집단의 이익이라는 정의의 개념을 내려놓고 피조물 모두를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4)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의 특징과 그 상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16:24-27). 하나님의 공의를 행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공의를 배척하고 자신들의 정의만을 행한 자에게는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것입니다.

(2)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45:24b); 여기서 사람들은 주로 이방인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나는 마지막 경우로서 선민에 대해서 말하고자 사용하고 있는 접속사로 보입니다.

1)    이방인들 가운데 진심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따라 공의를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즉 만민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맹세하고 나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2)    그렇지만 많은 이방인들은 회개하지를 않습니다. 공의를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에 분노합니다. 계속 남을 해치더라도 자기들만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획책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a)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b)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45:25); 선지자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선민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45:25a);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고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19:5). 그 목적은 이방세계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이방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대신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19:6);

1)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의 특권을 자랑하기에 앞서서 여호와 하나님이 맡기신 제사장나라로서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만 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선민이 되었으므로 여호와가 원하시는 일을 여호와의 힘을 빌려서 실천해야만 합니다(45:25a).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자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    혈통적으로 믿음의 열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원나라 시대에 징기스칸의 후예 곧 푸른 이리의 혈통임을 자랑하던 몽고인들과 같습니다. 오늘날 백두혈통임을 자랑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자신들의 혈통적인 자랑으로 바꾸고 있는 불신앙입니다.

3)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산다는 것, 그리고 절기를 쫓아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 모세가 준 율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것, 나아가서 육체적인 할례를 하나님 백성의 표시로 간직하고 있다는 종교적인 행위들이 그만 선민들의 자랑이요 의로움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4)    그러한 인간적인 의로움과 종교적인 행위는 모두 선민들이 만들어 놓은 의로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자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실천을 해야만 합니다(53:1-11, 1:12-13).

5)    그 말씀의 뜻은 자기 민족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주라는 것입니다(29:18-20). 그리스도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전해주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이방 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가서 회개를 종용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중보의 기도도 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사명을 전혀 감당하지 아니하면서 대내외적으로 선민이라고 마냥 자랑만 하고 있으니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앙생활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2)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45:25b);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를 하는 때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    그때에 대하여 훗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11:11-12).

2)    풀이를 해보자면,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메시아를 배척함으로써 만민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먼저 넘어가서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선민들의 구원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예언입니다.

3)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를 하고 만민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45:25b);

4)    풀이를 해보자면 첫째, 그것은 전통적으로 유대인 사회에서 얻는 의로움이 아닙니다. 만민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얻게 되는 의로움입니다. 그것은 공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무릅쓴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 선민 유대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로움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살리는 그 능력을 자랑합니다. 이제는 세상적인 선민의 지위나 자신들의 율법적인 행위의 거룩함을 자랑하지를 않습니다.

5)    사도 바울이 좀더 구체적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11:23-24).

6)    선민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자면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선민만의 구원론이 옳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까지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만민 구원론이 옳다고 인정을 해야만 합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 옛날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파수하고 있던 그들인지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실 것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그의 선지서 제45장을 끝내며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1)  만민에 대한 구원곧 선민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아니하는 구원사역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5:23).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은 한 마디로,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게 대접하고 그들 모두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한결 같은 피조물사랑의 정신입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던 세상사람들이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만약 끝까지 타인과 다른 집단을 죽이더라도 자신과 자기집단만 잘 살게 되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에게 맞서는 경우에는 멸망의 수치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45:24).

(3)  마지막으로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회개를 하고 돌아올 것입니다. 선민의 자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로움과 세상적인 자랑을 버리고 마침내 여호와 앞에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진심으로 창조주의 만민구원의 의로움과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45:25).

  요컨대, 자신과 자기집단의 의로움을 강조할수록 그리고 모두의 삶과 구원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성공과 부유함을 자랑할수록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 입각한 만민구원과 영생의 구원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이사야의 예언을 다시 음미하면서 자신의 신앙의 현주소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더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만민구원에 나서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