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11강(사45:14-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27. 00:48

이사야 강해 제211(45:14-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17()

 

선민 이스라엘과 새로운 이스라엘과의 차이에 대한 이사야의 언급(45:14-17).

 

선민 이스라엘의 꿈은 다윗 제국을 다시 건설하는 것입니다. 다윗 대왕의 시대처럼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약속의 땅을(15:18) 모두 회복하는 것입니다(삼하8:1-14). 그런데 선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늘 그들의 꿈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17:5-6). 주전 586년에는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신바벨론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망하고 맙니다(왕하25:1-7).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 제국이 바사의 고레스 황제에 의하여 망하고(45:1-6) 이방 땅에서 선민 유대인들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1:1-4). 그 가운데 일부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서 제2성전을 건설하게 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합니다(6:13-22). 하지만 페르시아 황실의 도움으로 재건된 그 성전은 그 옛날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면 4분의 1크기에 불과한 조그만 것입니다. 그만큼 선민 이스라엘의 국력은 약한 것입니다.

페르시아 시대가 지나고 나면 헬라 시대가 밀어닥칩니다. 주전 167년경 레위 인 제사장 마카비 가문이 앞장을 서서 독립전쟁을 시작하여 주전 142년경에는 하스모니안 왕조가 성립이 됩니다. 하지만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로마의 서세동점(西勢東占, 서방세력이 동방으로 몰려와서 점령하는 것)에 의하여 유다의 땅은 로마의 실권자가 비호하는 이두매 출신 헤롯 왕가와 로마총독이 분할하여 다스리는 속국(屬國)으로 떨어지고 맙니다(3:1-2).

여전히 선민으로 자처하고 있는 유대인 사회에 그리스도가 탄생했을 때에도 상황은 비슷할 뿐입니다(2:1-23). 그래서 선민들은 메시아가 오게 되면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 제국을 다시 건설해주고 그 동안 선민들을 괴롭힌 강대국들을 자신들의 종으로 굴복시켜주는 것입니다(45:14). 선민들의 소원은 과연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어질까요? 오늘의 본문에서 이사야는 그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해주고 있습니다. 과연 어떠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분석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의미를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b)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c)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d)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45:14); 언뜻 보면, 선민 이스라엘의 소망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족을 달고 있는 문장까지를 검토해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만민구원을 위하여 나서고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앞날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45:14a); 선민 이스라엘은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던 그 땅을 다시 차지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 제국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사이에 있는 땅들을 전부 차지하는 것입니다(15:18). 그런데 이사야는 더 큰 것을 주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차지하지를 못했던 애굽 제국까지를 전부 속국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45:14a 의역). 참고로, 나일 강 하류 삼각주에서 하이집트는 농사를 지어서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홍해와 인도양에 접해 있는 이디오피아 구스는 해상무역을 통하여 큰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스 인들이 아라비아 해변으로 건너가서 좋은 땅에 건설한 스바에서는 노동력이 뛰어난 장정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선민 이스라엘은 섬기고자 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어 함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만민구원사역에 나서고자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45:14b); 만민구원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그의 제자들이 뒤따르고 있습니다(28:18-20, 1:8).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접하게 된 이방인들이 이제는 그 대열에 합세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의로 만민에게 차별이 없이 구원을 베푸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진심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45:14b).

(3)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45:14c); 선민 이스라엘이 꿈꾸고 있는 세상은 그들이 다윗 대왕처럼 이방인들의 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의 힘이 약해서 할 수가 없으면 하나님의 신위적인 도우심으로 그 일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에게 메시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고 그들을 유다 땅으로 끌고 와서 종으로 부리고자 합니다(45:14c). 그것이 다윗의 왕도 시온 성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선민들이 꿈꾸고 있는 세속적인 시오니즘의 내용입니다.

(4)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45:14d); 그런데 이방인들이 그들 선민 이스라엘에게 굴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새로운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스스로 복종하여 나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도들이 두려워서 나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용인즉 성도들 뒤에 숨어서 역사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들 이방인들이 섬기고 있던 조상신과 수호신 그리고 토착 신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방 신과 우상들이 감히 여호와 앞에 설 수조차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이방인들이 이제 성도가 되어서 그 입술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습니다”(45:14d).  

둘째로, “(a)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b)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45:15); 새로운 이스라엘이 건설하고 있는 하나님나라에 관한 예언임을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45:15a);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구원주이십니다. 그렇게 빛나고 영광스러운 창조주이며 구원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었던 민족이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민구원, 이방인 멸망이라는 시오니즘에 집착하게 되자 그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45:15b); 이방인들은 결코 선민 이스라엘에게 굴복하거나 스스로 종이 되고자 나아가지를 않습니다. 이방인들의 현세구복적인 신앙이나 선민 이스라엘의 현세주의 선민사상이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민족우월주의라고 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선민우월주의와 똑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민들이 이방인들과 똑같은데 무엇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그러나 만민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나아가는 성도들 곧 새로운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문제가 다릅니다. 이방인들은 창조주의 넓은 사랑을 만민구원의 복음 가운데에서 깨닫게 됩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모두가 함께 사는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앞으로 성도들 뒤에 숨어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스스로 나아오는 것입니다(45:15b).

셋째로,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45:16); 선민 이방인 상관없이 우상을 만드는 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본래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모르고 제멋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능사입니다. 하지만 선민 이스라엘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애굽의 노예와 같은 삶에서 해방을 얻은 민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산에 도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19:5-6). 그러나 그 다음 그들의 하나님신앙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뜻을 어기고 여호와를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역사적으로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론이 백성들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주면서 그것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소개하고 맙니다(32:4).

(2)  초대 왕 사울은 전쟁이 급하여 그만 사무엘을 기다려서 정식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고 맙니다. 재촉하는 백성들과 전쟁의 급함이 그에게는 더 절실합니다. 그것이 사울에게는 우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역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울 자신이 약식으로 제사를 드리고 출전을 하려고 합니다(삼상13:6-10).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게 됩니다(삼상13:13-14).

(3)  솔로몬 대왕은 전반기에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제국을 잘 경영했습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이방여인들을 수백 명이나 아내로 삼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이방인 출신 처첩들에게 그들의 나라에서 가지고 온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도록 허용하고 맙니다(왕상11:1-9). 솔로몬은 교만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신들 중의 하나로 대접하고 만 것입니다.

(4)  북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1세는 백성들이 절기 때에 예루살렘으로 남하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북방 단과 남방 벧엘에 두고서 여호와로 알고서 섬기라고 조치합니다(왕상12:27-33). 그 우상 섬김의 정책을 북조 이스라엘의 왕들이 줄줄이 답습을 하다가 그만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맙니다.

(5)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침입으로 나라가 완전히 망하기 직전 곧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성전에 들어가서 눈물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왕하19:14-19). 그 결과 천우신조로 앗수르 군대가 물러가게 됩니다(왕하19:35-36). 또한 자신이 갑작스런 중병으로 운명하게 되었을 때에도 벽을 향하고 앉아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왕하20:2-3). 역시 그의 죽을 운명이 변하여 15년을 더 살게 되는 기적이 찾아옵니다(왕하20:5-6).

(6)  그 결과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철저하게 믿으면서 믿음생활을 확실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에 눈물로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고 하는 사고방식에 젖어서 그만 평소에는 제멋대로 살게 되는 교만한 왕이 되고 맙니다(왕하20:12-19).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속이고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신의 우상으로 부려서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게 되면 그만이라고 하는 지극히 편리한 도구주의적인 신앙의 모습에 불과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그렇게 이용의 대상에 불과한 신일까요? 그러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이방나라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21:2-16, 25:1-7).

(7)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의 대상인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다윗 왕조와 선민의 나라가 마침내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왕국이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5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자 그 땅에 메시아가 탄생을 합니다(1:18-25). 메시아는 선민 유대인들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오신 분입니다(6:38-40).

(8)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 심판보다는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대속의 제사를 드려주라는 것입니다(3:14-17). 그것이 본래 선민들에게 부과되었던 사명입니다. 즉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책무가 그것입니다(19:5-6). 그것이 본래 하나님 말씀의 취지였음을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으로써 보여줍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건설이 되고 새로운 이스라엘이 형성이 됩니다(2:36-47). 이제 선지자 이사야는 그와 같이 장차 발생하게 되는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미리 전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a) (새로운)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b)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45:17); 선민 이스라엘이 소원하고 있었던 구원과 새로운 이스라엘이 소망하고 있는 구원이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1)  (새로운)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45:17a); 그리스도의 모범을 쫓아가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 곧 새로운 이스라엘인 성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14:1-3).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천국의 자녀로서 영생을 누리고자 합니다(3:9-14, 1:12). 그것이 영원한 구원입니다. 반면에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얻고자 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현세적인 구원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소원성취를 하고 선민의 나라의 영광을 떨치기를 원합니다. 자신들은 구원을 받고 이방인들은 멸망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방인들을 종으로 삼아 선민의 영광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이루어주는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45:17b); 메시아처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만민구원을 위하여 나아가는 성도들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선민 이스라엘만 구원을 독점하고 이방인들은 그들을 섬기는 종들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소원하고 있는 선민들은 역사 가운데 한 없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선민 이스라엘과 장차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을 따르게 될 새로운 이스라엘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예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집단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는 선민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으로는 결코 이방인들을 굴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자기 민족 우월주의 사상을 지니지 아니하고 있는 민족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선민 이스라엘은 그 옛날 다윗 제국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차 그들의 사회에 오시는 메시아는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에게는 영광이지만 이웃나라 이방인들에게는 멸망과 종이 되는 굴욕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3)  이사야는 많은 이방인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성도들 앞에 스스로 나아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만민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는 메시아의 사상에 공감하지 아니할 이방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4)  그렇지만 실제로 이기적인 인간들이 집단이기적인 틀을 벗어나서 열방과 만민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모두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창조주의 넓은 사랑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가 있을까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합니다. 그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성도들에게 임재하시고 내주 역사하실 것입니다(24:49, 2:1-4, 36-42, 6:10, 16:25-26). 그것이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바 주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45:15)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써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오로지 말씀의 능력으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능력이 충만한 성도의 삶을 살 수가 있을 뿐입니다. 그때에만 하나님의 뜻이 성취가 되고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이 터져나올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