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0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26. 10:28

이사야 강해 제209(45:6-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15()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의로 온 세상을 구원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시겠다는 선언(45:6-8)

 

선민 유대인들을 신바벨론 제국의 압제에서 구원하는데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어째서 모세와 같은 히브리 인이 아니고 이방인의 왕 고레스를 들어 사용하시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오늘의 본문말씀입니다. 대체적으로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신다. 동과 서의 그 모든 열방과 민족들이 모두 여호와의 구원의 대상인 것이다(45:6).

(2)  빛과 어두움, 평안과 환난, 나아가서 선민과 이방인, 그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역사섭리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을 차별하거나 배제할 이유가 없다(45:7). 빛과 평안만 추구하고 선민의 특권만을 강조하는 것은 반쪽 신앙에 불과한 것이다.

(3)  창조주 하나님이 하늘에서부터 공의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받아들여서 만민과 만물구원사역에 동참을 하여야만 할 것이다(45:8).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더 깊은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지금부터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그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b) 나는 여호와. 다른 이가 없느니라”(45:6);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계에 속하고 있습니다. 태양이 빛을 제공함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식물이 광합성을 합니다. 광합성 곧 탄소동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열매를 먹고서 모든 생물들이 삶을 영위합니다. 따라서 만약 해가 비치지 아니하면 식물이 광합성을 할 수가 없게 되고 이에 따라 모든 생물은 먹거리를 구할 수가 없어서 사멸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도 창조주가 그 해를 아침에 동쪽에서 솟아나게 하고 저녁에 서쪽으로 지도록 섭리하고 있습니다. 그 섭리로 말미암아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45:6a);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은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 두 가지로 풀이가 될 수 있습니다.

1)    먼저 좁은 의미 곧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선민들의 입장에서는 동쪽 요단 강 너머에서 해가 뜨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 지중해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그 지경 안에 속하고 있는 선민들의 사회에서는 유일하신 창조주로 섬김을 받고 있는 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2)    그렇지만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에서 이탈을 하고 있습니다. 현세적인 복을 주고 성공신화를 만들어준다는 이방 신을 도입해서 섬기거나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현세적인 복을 주고 자신들의 소원성취에 도움을 주면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러하지 아니하면 가차없이 하나님신앙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2)  나는 여호와. 다른 이가 없느니라”(45:6b); 여호와 하나님은 본문에서 넓은 의미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1)    선민의 사회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쪽과 서쪽의 땅끝까지 언급하십니다. 극동지역 곧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에서부터 지중해와 대서양을 넘어 해가 지는 그 서쪽의 땅끝까지 모두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살고 있는 그 모든 지역에서 유일하신 창조주이며 구원자는 여호와 하나님 뿐이시라는 엄중하신 선언인 것입니다. 이에 따라 모든 이방인들도 우상을 버리고 자신들의 수호신과 토착 신을 버려야만 합니다.

2)    이제 광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선민들은 자신들의 좁은 안목과 견해로 함부로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됩니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선민우월사상과 선민구원사상을 내려놓고 이사야의 예언을 화두’(話頭, 명상의 실마리)로 삼아서 깊은 묵상을 해야만 합니다; “이방인의 왕 고레스가 어찌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해방자가 될 수 있는지? 어째서 여호와는 고레스의 도움을 받아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는지?”. 앞으로 깊고 넓으신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야만 합니다.

  둘째로, “(a) 나는 도 짓고 어둠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창조하나니, (b) 나는 여호와.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45:7);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선민들이 영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피곤한 나그네 유목민의 삶에서 탈출한 그들은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자 그만 안일한 일상에 젖어 들게 됩니다(8:12-14). 계속 이방세계로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삶을 중단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한 선민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도 짓고 어둠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창조하나니”(45:7a);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출애굽 당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고 멀리 떠나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조치해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감히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광명이 있지만 애굽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는 암흑의 재앙이 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10:21-23).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멀쩡하지만 애굽 사람들에게는 각종 재앙과 환난이 발생하도록 합니다(8:21-22, 9:6, 25-26). 그 모든 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창조가 되고 있는 역사입니다.

2)    그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센 땅에서 빛과 평안의 복만을 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만 어둠과 환난도 창조하시는 두려우신 심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하나님신앙에서 멀어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명령 곧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중보기도를 해주라고 하는 제사장나라의 직무를(19:5-6)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나는 여호와.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45:7b); 이제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여호와는 선민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선민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사랑하십니다. 선민만이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의 대상입니다. 빛과 어둠의 역사는 선민과 이방인 구별이 없이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말씀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여 순종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빛의 자녀가 되지만 거절하고 패역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어두운 영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이 구원과 심판이라는 양날의 칼을 휘두르시는 두려우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명심하라고 이사야가 동족들인 선민들에게 부르짖고 있는 내용입니다.

셋째로, “(a) 하늘이여 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를 부을지어다. (b) 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 돋게 할지어다. (c)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45:8); 하늘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계획은 철저하게 공의의 정신에 의하여 수행이 되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도 장차 하늘에서 비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1)  하늘이여 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를 부을지어다”(45:8a); 공의의 정신이 어디에서부터 오고 있는가를 이사야가 예언 가운데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피조물들이 공의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삶이 일상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자연계에서도 살기다툼과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의의 정신은 피조물로부터 생성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이 함께하고 있는 피조세계를 보시고서 심히 좋아하십니다(1:31). 그렇게 모든 창조물을 보시고 좋아하신 그 마음이 바로 공의의 정신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좋아하신 그 모든 피조물들을 이제는 구속하시고 새롭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그 뜻이 하늘에서부터 비와 같이 이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45:8a).

(2)  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 돋게 할지어다”(45:8b); 하나님께서는 구원자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어주실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만민과 만물을 구속하는 구원사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생물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공의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메시아의 사역이므로 이 땅에서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55:11, 5:38-39).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복음사역에 반대하는 모든 저항세력을 분쇄하시고 반드시 이 땅에서 공의의 정신에 입각한 만민구원의 시대를 열어가실 것입니다(45:8b).

(3)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45:8c); 겉으로 보면, 메시아가 이 땅에서 구원의 주역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배후에서 모두 섭리하시는 구원사역입니다. 그리고 그 일의 마무리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로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1)    먼저 그리스도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은 실천할 뿐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6:38).

2)    최종적으로 완성된 메시아의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3)    대속의 제물로 희생이 되신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또한 그를 통하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2:32-33).

4)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65:17-19).

결론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신앙을 속히 떠나서 우상을 섬기는 한편 선민만의 구원과 현세적인 영광을 추구했기에 그만 그들의 나라가 망하게 되고 이방인들의 땅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조국과 동족들이 그와 같은 환난을 당하게 되는 것을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강대한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이방 바사의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선민들을 해방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어주는 놀라운 역사가 전개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모세가 행한 일을 이방인의 왕이 다시 행하게 된다는 예언의 내용입니다. 이사야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게 이상하게 전개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 유대인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똑 같은 사랑으로 이방인까지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2)  그런데 선민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 선민에게는 구원의 의미로 빛과 평안을, 이방인에게는 진노와 심판을 의미하는 어둠과 환난을 주신 출애굽의 하나님이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3)  그들 선민들에게 이사야는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자 메시아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이 땅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그때부터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이방 왕 고레스를 동원하여 선민을 구출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인위적인 차별을 철폐하신다고 하는 엄숙한 선언입니다. 다만 앞으로는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역에 동참하는 백성들만이 새로운 이스라엘이며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참여하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의 부르짖음 그대로 저와 여러분들은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구원을 소원하고 현세적인 복을 독점하며 계속 선민의 기득권으로 누리고자 하는 잘못된 선민사상부터 청산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이 행할 수 있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