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10강(사45:9-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1월 6일(수)
이사야의 선지자 활동과 그가 선지서를 기록한 이유에 대하여
이사야는 선민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위정자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도록 선택을 받은 선지자입니다(사1:1, 2:1, 6:1-12).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 곧 주전 740년경에 선지자로 세움을 받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때에 예루살렘에서 선지자 활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사야는 주전 701년경에 발생한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유대 땅 침공과 예루살렘 성 포위공격의 산 증인입니다.
이사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역사개입으로 산헤립 황제의 대군이 허무하게 철군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사37:14-37). 그리고 갑작스러운 중병으로 죽을 운명에 놓인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간구를 하자 병이 낫고 15년 목숨연장을 받게 되는 사건도 경험을 하게 됩니다(사38:1-6). 그것은 선민의 나라에서 발생한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입니다(사38:7-8).
그러나 이사야는 그 다음 선민들의 행동을 보고서 절망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명마저 연장을 받게 된 히스기야 왕이 그만 교만한 통치자로 변하고 마는 현장을 보게 된 것입니다(사39:1-8, 왕하21:1-2). 제멋대로 세상적인 영광과 성공을 추구하며 살다가 큰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도 히스기야 왕처럼 마지막 순간에 성전에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놀라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히스기야 왕이 국난을 극복한 자신의 위세와 영광을 멀리서 온 바벨론 사신들에게 크게 자랑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사29:1-4). 왕국의 무기고와 보물창고까지 모두 보여주면서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합니다. 그 때문에 장차 바벨론에 의하여 유다 왕국이 망할 것임을 예언으로 전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 앞에서도 히스기야는 당당합니다(사39:5-8). 한 마디로 선민의 왕인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라가 태평할 터인데 그 먼 날의 일을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입니다(사39:8). 그러한 히스기야 왕에게서 왕자 므낫세가 태어나고 그는 왕이 되자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되고 맙니다(왕하21:1-11). 백성들이 완전히 우상문화에 물들고 무죄한 자의 피가 온 예루살렘에 흘러 넘치게 됩니다. 마침내 유다 왕국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선포가 되고 맙니다(왕하21:11-15).
이사야는 성군으로 믿었던 히스기야 왕의 자기 우상화와 현세적인 믿음의 태도를 보고서 그만 선민들에게서 그의 눈을 떼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이사야는 그 동안 동족들에게 외친 그의 예언의 내용을 선지서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오심을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그것밖에는 동족구원의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구원의 역사와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 대하여 예언을 계속하면서 그것을 역시 그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서 이사야는 선민들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요지는 부디 선민 유다 왕국의 위정자와 백성들처럼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마23장). 앞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공의와 만민구원의 일생을 배워서 그렇게 참된 여호와의 종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사53장). 그것이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지 아니하고 새로운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여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선민들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하나님의 공의와 만민구원의 계획을 믿고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는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신에 대하여(사45:9-13)
본문에서 이사야는 선민들이 두 가지 잘못을 여호와 하나님께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는 창조의 목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들 선민이 없으면 여호와는 이 세상에 개입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수단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면서 자신들의 의로움과 위대함을 자랑하고 있는 선민들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본문에서 이사야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b)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사45:9); 그 유명한 토기장이 비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사29:16, 렘18:3-6, 롬9:21-24). 이사야는 토기장이 비유를 통하여 선민의 잘못을 가장 알기 쉽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사45:9a); 선민이라고 우쭐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면 일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토기장이와 같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는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토기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깨뜨려버리실 수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명심하고서 함부로 토기장이와 같으신 창조주에게 대들지를 말라고 이사야가 경고를 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2)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사45:9b); 피조물에 불과한 선민들이 크게 보아 두 가지를 하나님께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1) 첫째, 창조의 목적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요나 선지자의 항변이 그와 같은 좋은 예입니다. 그는 멸망시키기로 한 이방인의 도읍 니느웨를 왜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어서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있는지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욘4:1-5, 8-9).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욘4:11, 요3:16-17, 6:39). 그런데 선민의 선지자인 요나는 선민구원사상에 사로잡혀서 이방인은 용서함을 받을 수 없으며 무조건 멸망의 대상일 뿐이라고 하나님께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관입니다.
2) 둘째, 선민이 하나님의 손발이 되고 있으므로 자신들이 없으면 하나님도 별수가 없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참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가소로운 선민들의 과대망상입니다. 이에 대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궁금합니다.
둘째로, “(a)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b)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45:10); 선민들의 패역함을 부모님에 대한 불경함으로 비유하여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사45:10a);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 때에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왜 자기와 같은 자식을 낳았느냐는 것입니다. 잘못 낳았으니 모든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반성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와 같은 자식을 낳았으니 모든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모두 하나님께 전가시켜놓고서 잘못 만들어진 이방인을 부디 멸망시켜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선민들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해주고 있는 지적의 말씀입니다.
(2)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45:10b);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과정이 얼마나 신중하며 또 그들을 구원하는 과정이 얼마나 큰 산고를 치르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마치 옥동자를 낳기 위하여 산고를 치르고 있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수고를 모르고 제멋대로 대들고 있는 탕자의 형과 같은 존재가 바로 선민이라고 하겠습니다(눅15:20-32). 그러므로 선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사32:9-14, 39:5-7).
셋째로, “(a)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b)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사45:11); 장래 일을 묻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1)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사45:11a); 사람들은 미래가 궁금할 때에는 점쟁이를 찾게 됩니다. 그것은 귀신에게 장래 일을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민이라고 하는 유다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일개 점쟁이의 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물을 드리고 물으면 언제나 장래 일을 말해주는 우상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영적인 타락입니다.
(2)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사45:11b); 선민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가 잘못되어 있다고 시비를 거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잘못되어 있으니 시정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예 기도를 통하여 이방인을 구원하는 행위 따위는 철회를 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훗날 만민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를 배척하고 죽이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넷째로, “(a)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b)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사45:12);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자신의 전능하신 오른 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사45:12a); 하나님께서 땅을 먼저 만드시고 그 다음에 그것을 경작할 수 있도록 사람을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종으로 창조를 하십니다(창2:15).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땅을 경작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들을 돌보고 살리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십니다(창1:26-27). 그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2)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사45:12b);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 능력은 피조물이 감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줄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조각 칼이나 수술칼과 같아서 만물과 만민을 조각하고 치유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에는 악한 세력과 반항하는 자를 토벌하기 위하여 천상의 엄청난 군대를 동원하실 수도 있습니다(마26:52-53). 하지만 토벌과 심판보다는 피조물을 치유하고 고쳐서 사용하시려고 하십니다(사19:22, 요3:17). 그러므로 선민 유다의 백성들처럼 마치 자신들이 없으면 하나님이 손이 없으신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불신앙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참고 인내하고 계시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경박함과 교만함의 발로입니다.
다섯째로, “(a)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b)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값음이 없이 놓으리라. (c)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였느니라”(사45:13);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서 건설하시는 새 나라의 건국이념을 언급하고 또한 그 나라건설에 동참하자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사45:13a); 인간세상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창조주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고 그 생명을 모두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1)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들조차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고 자신들의 정의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구원의 대상이고 이방인들은 모두 멸망의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 이방족속들은 모두 선민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2) 그렇게 자신들만 의롭고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잘못된 신앙이며 삐뚤어진 선민우월주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선민들을 버리시고 그 대신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메시아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사7:13-14, 9:1-7, 11:1-14). 앞으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메시아의 일생을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심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사45:13a).
(2)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값음이 없이 놓으리라”(사45:13b); 잘못된 선민사상으로 무너진 하나님신앙을 메시아가 공의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바로 잡으실 것입니다;
1) 만민을 구원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형성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새로운 성읍을 건축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메시아의 나라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땅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하여 그 나라가 완성이 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것입니다(고전15:24).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2) 메시아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바칠 것입니다. 그 대속의 희생을 자신을 위한 것임을 믿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롬8:1-2). 그렇게 메시아의 공로로 하나님의 용서함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앞으로 달리 살아가야만 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 여전히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를 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해주어야만 합니다. 값없이 주시는 메시아의 구원을 믿고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데 모두들 나서야만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사명입니다(마28:18-20, 행1:8).
(3)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였느니라”(사45:13c);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이사야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명령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과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만민과 만물구원에 나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롬8:19-21). 예외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메시아가 행하는 그 일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도우시는 그 일에, 값없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참여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그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잊혀지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이사야는 동족인 선민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하거나 선민이 무슨 대단한 벼슬인 줄 알고서 함부로 하나님께 대들지를 말라고 합니다”.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창조의 목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없으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뜻을 펼 수가 없다고 자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선민들은 자신들만이 구원의 대상이고 이방인들은 멸망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도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이 만민이 모두 구원의 대상입니다.
(2) 만민을 구원하고 만물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선민들이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그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어서 그 일을 시행하실 것입니다.
(3) 따라서 앞으로 그 일에 나서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새 역사에서 제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새로이 창조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된다는 의미입니다(마7:21, 28:18-20).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메시아처럼 만민구원의 복음사역에 나서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아무쪼록 그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를 축원합니다. 살롬!
'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강해 제212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27 |
---|---|
이사야 강해 제211강(사45:14-17)(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27 |
이사야 강해 제20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26 |
이사야 강해 제20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26 |
이사야 강해 제207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