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06강(사44:21-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1월 2일(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야곱을 구속하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에 대하여(사44:21-23)
본문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용어의 의미가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용어만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다음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야곱이 하나님의 대 족장으로 그 운명이 달라졌다는 의미, (2)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의미, (3) 그리스도를 영접한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의미 등입니다.
그와 같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는 용어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이사야가 전해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예언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각 구절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그 깊은 의미를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b)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c)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44:21); 야곱이 개인이라면 이스라엘은 민족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세상적인 꾀를 따르고 있는 자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겠다고 작심한 자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 구절의 깊은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사44:21a); 야곱 곧 세상적인 꾀를 따라서 살고 있던 자라고 하더라도(창25:31-34, 27:11-19) 여호와 하나님의 종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대 족장으로(창32:28, 35:10, 47:7, 10, 48:22) 살아가는 자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종입니다. 나아가서 선민 이스라엘(출19:5-6)이나 새로운 이스라엘(마28:18-20, 눅24:445-49, 행1:8)이나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사44:21a).
(2)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사44:21b); 야곱이라는 이름의 사람 곧 개인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창1:26-27, 2:8). 세상사람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로 그 운명을 바꾸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창35:10).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고 시내 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출19:5-6). 따라서 그 모두가 개인이 되었든지 민족이 되었든지 전부 하나님의 종이며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사44:21b).
(3)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44:21c); 그런데 평생을 야곱으로 살아가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맙니다. 세상적인 꾀와 지혜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면 하나님의 눈밖에 나고 만다는 의미입니다(창25:31-34). 그러면 영생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반면에, 창조주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서 살려달라고 진심으로 매달리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창32:28-30). 그렇게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며(창35:7-13) 그에게 사명완수의 기회를 부여해주시는 것입니다(사44:21c).
둘째로, “(a)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 (b) 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c)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44:22); 이사야는 죄와 허물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구속함을 받고 있지만 그 구속의 방법이 다음과 같이 다릅니다;
(1)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사44:22a); 빽빽한 구름은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진면목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수 없도록 가리고 있는 수단입니다(출19:16, 18). 만약 빽빽한 구름이라는 보호막이 없이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노출이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네(모세)가 내(여호와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20). 그렇게 사람들의 허물을 가려주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입니다. 그리고 허물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어기고 있는 잘못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뜻과 생각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것보다 더 낫다고 우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따르지 아니했던 그 허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사44:22b); 허물과 달리 죄는 정말 가리움을 받거나 용서함을 받기 힘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피조물인 주제에 감히 스스로 창조주가 되고자 반역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죄인은 영벌(永罰, 영원한 형벌)의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요5:29, 계20:15). 그런데 만약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칭의(稱義, to justify)를 얻게 됩니다. 그 결과 용서함을 받아 그 죄가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사44:22b, 요1:12-13).
(3)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44:22c); 구속(救贖)이란 속전(贖錢)을 내고서 사람을 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자면 속전을 내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방면이 되자면 속전을 내어야만 합니다.
1) 마찬가지로 사람의 허물과 죄가 가리움과 용서함을 받자면 엄청난 속전이 필요합니다. 그 속전을 치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구원자로 이 세상에 보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허물을 가리워주고 그 죄를 용서해주는 분은 이사야의 지적과 같이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하겠습니다(사44:22c).
2) 그렇다면 메시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메시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의 허물을 가려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요1:29). 진심으로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적용시켜달라고 천상의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를 드리는 것입니다(히4:14-16, 7:24-28).
3) 그 요청에 따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 또는 죄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는 것 등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라고 하겠습니다(요14:1-3, 17:17-24, 계21:1-8).
셋째로, “(a)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b)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c)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사44:23); 야곱과 이스라엘 그리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모두 지으시고 구속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그 구속사업을 추진하신 것입니다. 그 일은 모든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큰 사건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와 맥이 통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구절을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사44:23a); 죄인을 구속하기 위하여 구원자로 메시아를 보내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메시아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인간을 대신하여 치르고 있는 그 참혹한 속죄의 현장을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서 진심으로 용서함을 구하는 자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실한 종으로 살게 되면 나중에는 천국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선지자 이사야가 내다보고 있는 미래입니다. 그와 같은 엄청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미리 보고서 이사야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 하늘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14a). 그렇다면 메시아가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다시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눅15:22-24). 왜냐하면, 그것은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6:39-40).
2)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메시아가 오시는 것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평화를 회복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 일이라고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14b). 그 이유는 하나님과 불화하여 음부의 세계에서 징벌을 받기에 이르렀던 인간들이 회개하고서 하나님과 평화하며 부활의 기쁨을 맛볼 것이기 때문입니다(롬3:25, 5:1-2). 그래서 이사야는 땅의 깊은 곳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2)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사44:23b); 사람들만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민과 더불어 만물을 구원하라고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요3:16-17). 따라서 삼라만상이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할 것입니다(사44:23b).
(3)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사44:23c); 선민 이방인 차별이 없이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어주십니다.
1) 그렇지만, 메시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개인적으로 엄청난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즉 개인적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대속의 제사를 대신 드려주신 메시아를 구주로 영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그러한 회개를 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야곱처럼 허물이 많은 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예언을 이룬다고 교만을 행했던 자입니다(창25:23, 27:12-14). 반대로, 스스로 바리새인들처럼 의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자는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눅18:11-12).
3) 따라서 세리 마태나 삭개오는 야곱과 같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메시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마9:13, 눅19:57, 사44:23c).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이사야는“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장차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더불어 개인의 심령 속에 복음의 씨를 뿌리게 되면 그 영혼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가 됩니다(눅17:21). 그렇게 중생한 개인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새로운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사44:23c).
결론적으로, 개인의 인생도 민족의 역사도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만들어나가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그 종으로서 신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나라를 잘 경영하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꾀를 따라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허물입니다. 나아가서 창조주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자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행세를 하고자 했으니 그 패역함이 바로 죄입니다.
그 씻을 수 없는 죄를 용서해주고 허물을 가리워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자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십니다. 이미 의롭게 된 자 이스라엘이 아니고 죄와 허물이 많은 야곱과 같은 죄인을 구속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오셨으니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용서함을 받은 다음에는 새로운 이스라엘답게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 생애를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습니다. 특히 이방인출신 성도이기에 야곱보다 더 구원의 은혜가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으로 임재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해주시니 남아 있는 인생으로 영광을 올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감격과 찬양이 이 글을 읽으시는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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