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03강(사44: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2월 30일(수)
신앙생활의 반석인 3요소 곧 하나님, 말씀, 믿음에 대하여 이사야가 멋진 설명을 하다(사44:8-11).
창세기 제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의 창조는 특이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창1:26-27).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 깊은 의미를 알 수는 없으나 사람의 창조에 대하여 다시 설명하고 있는 창세기 제2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중요한 단서를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 living soul)이 되니라”(창2:7).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사람은 영혼(靈魂)을 지니고 살아가는 유일한 동물로 창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예수님의 증언 그대로, 창조주 하나님은 영(靈, spirit)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禮拜)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자신의 영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기운으로 그 육신에 불어넣어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은 영체도 아니고 육체도 아닌 이상한 존재로 만들어집니다. 이름하여 ‘생령’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 육신을 움직이고 있는 특이한 존재입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몸 속에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하자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그 능력으로 하나님을 지적으로 알고자 하며 감성적으로 느끼고 표현하고자 하며 또한 그 분의 의지를 모방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사람이 지니고 있는 혼적인 작용 곧 지성(知性)과 감성(感性)과 자유의지(自由意志)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영혼이 살아 움직이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 신앙생활의 반석(盤石)에 대하여 그의 선지서 제4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계시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證人)이라. 나 외에 신(神)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盤石)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사44:8).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창조의 신(神)으로서 신앙생활의 반석(盤石)이 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시고 알려주신 그 계시의 말씀이 신앙생활의 반석이 되고 있습니다.
(3)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그 구원의 말씀이 왔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증인(證人)들의 믿음이 또한 신앙생활의 반석이 되고 있습니다.
(4) 따라서 신앙생활의 반석의 3요소는 ①창조주 하나님, ②그 분의 말씀, ③성도의 믿음 등입니다.
이사야는 그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우상(偶像, idol)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자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멋진 설명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그 깊은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虛妄)하도다. (b)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無益)한 것이거늘, (c)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사44:9); 히브리서 저자는 소위 ‘믿음의 장’으로 불리는 제11장을 시작하면서 믿음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像, substance, KJV)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證據, evidence, KJV)니”(히11:1). 그 믿음의 정의를 참조하여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虛妄)하도다”(사44:9a); 믿음이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은 그 소망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가 실존하시며 실제로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사람이 우상을 만들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그 결과가 허망(虛妄, 헛된 바램)합니다. 왜냐하면, 우상이 창조주가 아니며 그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상 자체가 사람이 상상하여 만들어 놓은 신적인 모습에 불과한 것인데 어떻게 그 ‘허구적인 허상’(an imaginary ghost)이 실상인 창조주를 대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2)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無益)한 것이거늘”(사44:9b);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하나님이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생의 목적과 그 종착역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또 그 인생길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켜줄 것 같은 만만한 신을 하나 만들어서 대신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상을 섬기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생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영생의 구원도 얻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우상을 믿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인간들은 진실로 유익함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사44:9c); 여호와 하나님은 앞으로 행하실 일들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사전에 계시를 해주십니다(사48:5-6). 그 말씀 그대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 구원역사의 증인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들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역사에 대하여 전혀 알지를 못하고 더구나 만민구원사역에 대해서는 소경과 같습니다. 그렇게 무지하여 제 욕심대로 무식하게 행동을 하다가 결국에는 부끄러운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맙니다(사44:9c).
둘째로, “신상(神像)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사44:10); 이사야는 창조주를 섬기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이 만들고 있는 신상과 우상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보통 우상은 주물을 부어서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틀을 사용하여 여러 개를 만들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이방 신을 새기고 있는 신상은 상당히 정성을 들여서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정성을 들이든지 간에 그것은 효험이 없으며 구원을 베풀 수가 없는 허상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셋째로, “(a)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b)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사44:11); 여호와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시기에 앞서 모세를 통하여 먼저 그 총칙에 해당하는 십계명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전문을 참조하면 처음 네 개의 계명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제대로 섬기라는 것입니다(출20:3-11). 특히 여호와는 창조주이시므로 그 어떠한 피조물의 형상이나 모습으로 조각하거나 만들어서 섬겨서는 결코 아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출20:4-5). 그런데 그 계명을 어기고 있는 자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사44:11a);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 있는 사이에 시내 광야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이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아론에게 부탁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신상으로 만들어 섬기자고 합니다(출32:1). 십계명의 뜻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아론이 그만 계명을 어기고 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백성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출32:4).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 3천명이 죽임을 당하고 우상을 갈아서 그 가루를 백성들이 시냇물과 함께 마시게 되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출32:20, 28). 역사적으로, 그와 같이 행하는 무리들은 똑 같이 그와 같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사44:11a). 대장장이들이 만든 우상을 신이라고 섬긴다면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사44:11b);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만민구원의 메시아를 믿는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나갈 것임을 예지하고 있습니다(사11:1-12). 그렇게 하나님신앙이 전파되는 곳에는 사람이 만든 신상과 우상을 믿는 자들이 끝까지 저항을 할 것입니다(계19:19, 20:8). 만민구원보다는 자기들만 구원을 얻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 이기적인 신앙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과 영생보다는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소원성취를 하며 무병장수를 누리는 것이 최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결국은 크게 수치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사44:11b). 그 이유는 피조물들이 교만하게도 창조주의 권위에 대항을 했기 때문입니다(사14:13-15).
결론적으로, 이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만이 관철이 되고 승리를 얻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를 섭리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들이 그 사실을 깜박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을 볼 수도 없으며 그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급기야는 만만한 신이나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대신하고자 획책합니다. 그것이 현세적인 복을 얻고 소원성취를 하는데 훨씬 편리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본문에서 이사야는 한 마디로, 신앙생활의 반석이 없어 허망하며 그들에게는 무익할 따름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엄청난 두려움 가운데 크게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반석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을(마4:4) 깨닫고 실천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실제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이 이미 계시해주신 말씀대로 역사를 섭리하시고 성도의 인생을 영생의 구원으로 인도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을 때에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됩니다; 첫째, 그 믿음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보게 됩니다. 둘째,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세계가 차츰 눈에 보이기를 시작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즐거움이며 기쁨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기쁨을 느끼면서 믿음의 인생을 완주하시는 성숙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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