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01강(사44: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2월 28일(월)
이사야가 장차 임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예언하면서 동족들에게 아무쪼록 자기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가라고 말하다(사44:1-5).
제44장에 들어서면 본문에서 이사야는 그의 동족들에게 가장 알기 쉽게 하나님의 구원의 미래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쪼록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고서 이사야 자신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지금부터 각 구절의 내용을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사44:1);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종 야곱’과 ‘내가 택한 이스라엘’을 동시에 거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인 야곱’에게는 ‘그 주인이신 여호와’가 계시고, ‘선택을 받은 민족 이스라엘’에게는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신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종인 너희는 이제 제멋대로 행하지를 말고 주인의 말씀을 듣고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을 받은 민족인 너희들은 이제 너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이 바야흐로 선지자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터져 나오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사44:1).
둘째로, “(a)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b)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44:2); 여기서 이사야는 먼저 창조주가 만드신 전체 인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시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를 도와주시고 구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특히 그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사44:2a); 참으로 흥미로운 구절입니다. 다음과 같이 생명의 탄생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너를 만들고”; 창조주 하나님이 ‘너’라고 하는 인간을 만든 것이 먼저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생명이며 영혼의 탄생입니다.
2) “너를 모태에서 지어낸”; 그 생명과 영혼이 육체를 입게 됩니다. 모태에서 육체와 영혼이 결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모태가 생기기 이전 이른 바 ‘태초’(창1:1)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고 묘사가 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영과 육이 하나로 합체가 되어 살아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3)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사44:2a); 인생 가운데 사람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과 육신의 소원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롬7:21-25). 땅에서 태어난 육신은 땅에서 형통함을 누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영혼은 영생을 누리고자 합니다. 한 몸에 그렇게 겉 사람과 속 사람의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도와주고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일까요?(롬8:1-6) 이사야는 명쾌하게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진정한 도움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사44:1a 의역).
(2)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44:2b);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고자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어주실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의 동족인 유다 백성들이 훗날 그들의 땅에 오시는 메시아를 배척할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구원에서 배제가 되고 마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그렇지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사44:2b)고 먼저 동족들에게 안심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도 훗날 ‘올바르고 정직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 대목에서 ‘여수룬’(jeshurun, 올바르고 정직함)이라고 달리 부르고 있는 이유입니다.
셋째로, “(a)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b)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c)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d)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주리니”(사44:3); 여호와 하나님이 장차 만민을 구원하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사44:3a); 하나님은 광야에서 두 가지의 물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첫째, 육신적으로 갈증을 느끼는 자들에게는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여 그것을 마시게 해줍니다(출17:6). 둘째, 영적으로 목이 마른 자 곧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하여 천국말씀을 생수로 주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영적으로 도와주십니다(마5:3, 요4:14, 5:39, 14:26, 16:13).
(2)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사44:3b);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 환경을 에덴동산처럼 복구시켜주실 것입니다. 저주를 받아 황폐해진 마른 땅에 장차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흡족하게 주실 것입니다(욜2:23). 그리하면 시내가 흐르고 모든 생명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환경이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3)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사44:3c);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구원자 메시아를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 되심으로 그 대속의 은혜를 믿고 회개하는 죄인은 모두 의인으로 간주가 됩니다. 특히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를 하게 됩니다(욜2:28, 행1:8). 이사야는 그 은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있게 될 것임을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주리니”(사44:3d);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하며 그 영생의 복을 천하만민에게 흘러 보낼 수 있는 통로가 바로 그리스도이며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방인들의 땅 가나안에서 행한 그 일이(창12:1-4) 전세계적으로 확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일에 빠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넷째로,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사44:4);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메시아의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자 나서고 있는 성도들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버드나무가 무성한 것과 같이 영육간에 강건하고 그 열매가 풍성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이 대목 예언을 훗날 이 땅에 오신 메시아가 다음과 같이 더 실감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1-32).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대단하여 비록 겉보기에는 겨자씨와 같이 작지만 곧 큰 나무로 자라고 무성하게 되어 많은 새가 깃들 수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다섯째로, “(a)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b)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c)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기록에 남을 인생으로 살아가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사44:5);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속한 레위 인, 기타 이스라엘 자손들, 그리고 만민구원을 위하여 나서는 자들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상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사44:5a); 이사야는 첫째 유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위 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장자는 모두 여호와의 것입니다(출13:12). 그 이유는 출애굽 당시 애굽의 장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모두 목숨을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2)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장자 대신에 레위 인들을 여호와의 것으로 삼습니다(출13:13, 민3:12-13, 41-51). 그 때문에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고 그것을 여호와에게 속한 레위 인들이 가지게 됩니다(레27:30, 민18:21).
3) 애초 레위 인들이 여호와께 속하게 되는 시초가 출애굽기 제32장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출32:26).
4)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나아가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고자 결단하고 있는 자들이 레위 인들입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속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2)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사44:5b); 둘째 유형은 전형적으로 혈통적인 선민사상입니다;
1) 실제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거듭난 삶보다는 여전히 혈통적인 선민임을 자랑하고 있는 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영적인 결단과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보다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혈통적인 그리고 세속적인 소속관계를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
2) 그것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혈통적으로 야곱의 후손이라고 하여 여전히 자신이 선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만민구원사상으로 나아가기 힘든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선민우월주의에 물든 유대인들이 만민의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를 처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기록에 남을 인생으로 살아가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사44:5c);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만민구원사역에 동참을 할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가 자신의 깨달음을 가지고 제3의 유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레위 인들처럼 여호와께 속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살아가고자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2) 둘째,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좇아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인생의 기록이 필요합니다.
3) 셋째, 새로운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혈통적이거나 사람의 뜻으로 얻은 신분이 아닙니다.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에 하나님 자녀로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요1:12-13). 참고로,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러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는 자입니다(막12:30-31).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자신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진실로 여호와의 편에 서있다고 한다면(출32:26) 이제부터는 자신처럼 메시아를 앙망하는 선지자로서 달리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선민우월사상에 집착하지를 말고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환언하자면, 하나님의 말씀과 복을 온 천하만민에게 전할 수 있는(창12:1-4) 새로운 이스라엘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사44:1-5). 결국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훗날 그들의 땅에 메시아가 오시면 그의 제자로 살아가라고 은근히 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이 그 옛날 선민들의 잘못을 되풀이할 이유가 없습니다. 믿음생활에 있어서 혈통적인 우월함이나 제도적인 힘을 과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그들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결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크게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 인생의 기록이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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