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70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8. 00:17

이사야 강해 제170(38:9-10, 14, 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27()

 

중년의 나이에 죽음을 직면하게 된 히스기야 왕이 우연히 깨닫게 된 사실은 무엇인가?(38:9-10, 14, 16)

 

첫째로, 본문의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죽음의 자리에서 깨달은 내용을 백성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먼저 그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제14절과 제16절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a)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b)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38:14),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38:16). 이해하기 쉽게 간략하게 먼저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14절 전반부 a의 내용입니다; 제비같이 날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학같이 고귀한 자리에 앉아 있었던 좋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중병이 들어서 비둘기 같이 슬피 울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서야 인생의 허망함을 알게 되어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을 눈이 빠지게 눈물로써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2)  다음은 제14절 후반부 b의 내용입니다; 죄와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죽을 운명입니다. 세상에서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중보자가 되시어서 저의 운명을 바꾸시고 살려주십시오.

(3)  이제 제16절의 내용입니다; 유일하게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님께서 중보자가 되어주시는 그것입니다. 나의 영혼도 영원한 생명도 온전히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도 마음도 모두 치료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죽을 운명을 다시 살 수 있는 운명으로 바꾸어주십시오.

둘째로,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히스기야 왕이 겪은 일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25세의 나이에 남조 유다 왕국의 제13대 왕으로 즉위한 히스기야는(왕하18:1-2) 재위 14년이 되자 죽을 고비를 두 번 맞이하게 됩니다(왕하18:13, 20:1, 36:1, 38:1); 하나는 강대국 앗수르의 침입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는 운명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갑자기 중병이 걸려서 죽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제36장과 제37장의 강해설명을 통하여 너무나 익숙한 내용들이지만 다시 한번 간추려 봄으로써 그 모든 운명을 바꾸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히스기야 왕이 어떻게 찬양하고 있는지를 음미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그 해 주전 701년에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유다 왕국의 대부분을 점령합니다.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은 왕도 예루살렘 성을 지키면서 끝까지 저항을 하지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믿었던 애굽의 원군마저 산헤립 황제의 뛰어난 지략으로 패퇴를 당하고 나자 히스기야 왕은 죽음을 직감합니다.

(2)  바로 그때에 히스기야 왕이 마지막 수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성전으로 찾아가서 죽기살기로 매어 달립니다. 그 기도의 결과 놀라운 예언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듣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욕한 산헤립 황제를 혼내주고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계시의 말씀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 185천명이 천사에 의하여 몰살을 당하고 산헤립 황제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돌아가고 맙니다(37:35-37).

(3)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같은 해에 발생했던 두 번째 죽을 고비와 크게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38장에 들어서게 되면 히스기야는 중병이 걸리고 갑자기 39세의 중년의 나이에 요절하게 되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됩니다(38:1). 그래서 병석에서 다음과 같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자신이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왕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전심으로 여호와에게 기도하여 예루살렘 성의 구원을 얻어낸 바가 있습니다(38:3).

2)    그리고 전란으로 황폐화된 제사장나라를 재건하는 일이 눈앞에 닥쳐있습니다. 또한 철군한 앗수르의 군대가 언제 재정비하여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형편입니다.

3)    이러한 비상시국에 제사장나라에서 리더십의 교체가 발생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더구나 자신에게는 후계를 이어갈 왕자가 아직 없습니다(왕하21:1).

4)    이제 형제나 종친들 가운데 누구를 새 왕으로 세워야만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후계체제를 둘러싸고서 권력의 누수현상이 심각할 것만 같습니다.

(4)  한 마디로, 자신이 죽게 되면 제사장나라가 당장 어떻게 될지 암담합니다. 그래서 병상의 히스기야는 겨우 몸을 일으켜서 벽을 향하고 앉아서 선지자 이사야가 전해준 예언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38:2);

1)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이 벽과 같이 앞이 캄캄하여 외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부족한 종이지만 자신을 살려주십시오.

2)    천사를 보내어 하룻밤에 강대국 앗수르의 군대를 물러가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목숨 하나 살려주십시오. 죽을 운명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변개하시어 다시 산다고 하는 운명으로 바꾸어주십시오.

3)    제사장나라의 의로운 왕으로 남은 세월 헌신하고 싶습니다. 폐허가 된 왕국을 재건하고 앗수르의 재침에도 대비하고 싶습니다. 부디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5)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면서 감히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달라고 눈물로 기도한 왕이 히스기야입니다. 그 결과 그의 운명이 바뀌고 있습니다. 항목을 바꾸어서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셋째로, 히스기야의 기도의 내용 가운데 무엇인가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그것은 창세기에서 믿음의 열조들의 일생을 참조해보면 바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곧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  예를 들면, 무자식인 아브람이 열국의 아비인 아브라함으로(17:5), 차남인 야곱이 가부장족장사회에서 믿음의 장자인 이스라엘로(32:28, 35:10),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많은 백성을 구원하는 애굽의 총리로(41:43, 45:7, 50:20) 그 운명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주시는 분이 바로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3)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운명을 바꾸어주시고 있습니다. 임종의 자리에서 타고난 운명을 바꾸어주시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우연히 발견한 히스기야라고 하겠습니다.

넷째로,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 히스기야 자신을 위하여 중보자가 되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38:14). 그 깊은 의미가 무엇일까요? 다시 한번 처음부터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연 히스기야의 운명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꾸어준 것일까요? 정답은 새로운 운명으로 바꾸어준 것입니다(38:5). 그렇다면, 모든 피조물이 죽을 운명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뒤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2)  이미 그렇게 결정이 되어 있는 히스기야의 당장 죽을 운명을 하나님이 변개시켜주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정한 시간의 흐름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만 할까요? 정답은 새로운 운명으로 바꾸어주기 위해서는 대신 책임을 지고 그 대가를 충분히 지불해줄 수 있는 중보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그 중보자가 되어 달라고 감히 간구하고 있습니다(38:14). 그 중보자가 사실은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입니다. 그 사실을 선지자 이사야는 제53장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다섯째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죽음의 운명을 다시 사는 운명으로 바꾼다고 하는 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일직선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인생의 흐름을 하나님께서 뒤로 물리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15년 뒤로 물려서 다시 15년의 인생을 더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38:5). 그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당장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인데 그 시간을 뒤로 돌려서 15년의 세월을 더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1)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에게 있어서 그 일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해주기 위하여 선대왕 아하스 때에 만든 정밀한 해시계의 움직임을 돌연 10도 후진시켜버리십니다(38:8). 그 순간 주전 70139세의 중년의 나이에 죽도록 되어 있는 히스기야 왕의 운명이 15년을 더 살다가 54세의 나이로 주전 686년에 죽는 것으로 바뀌어버립니다(38:5).

(2)  그리고 앗수르 제국이 다시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침략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앗수르 황제들의 운명과 제국의 운명을 결정짓고 마십니다. 그 결과 재침을 위하여 군대를 양성하던 산헤립 황제가 왕자들의 난으로 살해를 당하고(37:38) 그 뒤를 이은 황제들이 이상하게도 유다 왕국을 우회하여 애굽을 정벌하게 되는 전략을 구사하고 맙니다.

(3)  더구나 앗수르 제국이 애굽 제국까지 멸망시키고 세상에서 가장 큰 제국을 형성하게 되었을 때에 곧바로 내분의 발생으로 망하게 되는 기이한 역사가 발생하고 맙니다. 그것은 도저히 정상적인 제국의 흥망으로 볼 수가 없는 역사적인 수수께끼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히스기야의 깨달음을 통하여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죽을 운명에서 더 이상 헤매지 말고 부디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살아나는 운명을 얻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히스기야에게 허락하신 그 은혜가 오늘 날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이미 거듭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죽음과 부활의 하나님이심을 그리스도가 자신의 인생으로 역사 가운데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은 이미 죽을 운명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운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에 지배를 당하는 운명이 아닙니다. 이미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제자가 누릴 수 있는 위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