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68강(사37:35-3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1월 25일(수)
예언의 말씀보다 더 엄청난 심판의 내용(사37:35-38)
이 세상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는 종들에 대하여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로 보호하시고 또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그것은 예언의 정도와 사람들의 상상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을 검토함에 있어서 다음 두 가지 사항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여로보암2세 시대 갈릴리의 선지자 요나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을 때에 그 성의 주민 12만 여명이 구원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욘3:3-10, 4:11). 그때의 상황과 본문의 상황이 무엇이 다르기에 하룻밤에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인이 몰살을 당해야만 하는지를 규명해야만 합니다. 둘째,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성도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떠한 능력이 발휘가 되고 있는지를(마28:18, 엡1:21) 함께 파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각 구절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그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대저 내가 나(여호와)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사37:35);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다윗 대왕처럼 하나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에게는 엄청난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어떠한 복인지를 두 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의인의 존재 때문에 그 성을 보호하십니다(창18:32). 둘째, 이 땅에서의 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길을 내십니다(요14:1-3).
그와 같은 약속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두 가지의 증거가 있음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1) 창조주 여호와의 이름 그 명예를 걸고서 보호하심과 구원하심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사37:35a). 말로써만 그치고 있지를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도록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천하권세를 위임하고 계십니다(마28:18). 그 권세로 성도들이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마28:19-20).
(2) 하나님의 종 다윗 대왕에게 발생한 일을 참조하면 된다는 것입니다(사37:35b). 다윗을 보호하여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하고 대 제국 이스라엘을 건설하게 해주고 있습니다(삼하8:1-14). 그리고 그가 얻은 영적인 축복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무려 150편의 시편 가운데 그 절반에 가까운 73편의 시가 다윗의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 찬양 그리고 영적인 깨달음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을 정도입니다. 그와 같은 승리의 역사가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요16:33).
둘째로,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18만 5천인(人, 사람)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37:36);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칼로 일어선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마26:52). 그리고 선지서 요나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니느웨에 살고 있는 앗수르 사람 12만여명에게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주고 싶어하십니다(욘4:11). 그런데 왜 본문에서는 냉정하게 천사를 보내어 하룻밤에 무려 앗수르 병정 18만 5천명의 목숨을 거두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앗수르의 대군이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침범하여 입힌 손해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왕도인 예루살렘 성을 제외하고 전국의 주요 성읍을 앗수르의 군대가 정벌했습니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 성읍만 하더라도 46개라고 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2) 당시의 인명의 손실이 어느 정도일까요? 남북이 갈라졌을 때에 남조 유다 왕국의 용사의 수가 18만명입니다(왕상12:21). 그 정도의 군대를 유지하자면 20배의 백성들이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유다 왕국의 백성들의 수를 적게 잡아도 300만명이 넘습니다.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앗수르 군대에 살해되거나 포로로 끌려간 백성의 수가 100만명이 넘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주후 70년 예루살렘과 유다가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망할 때에 죽임을 당한 수가 110만명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3)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과 그의 선전관 랍사게가 여호와 하나님을 약소국 유다의 수호신 또는 별 볼일 없는 우상의 하나로 여기고 참담하게도 능욕을 했습니다. 그 대가를 받아내자면 사실 적병 18만 5천명의 목숨으로도 어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4) 그렇지만 메시아가 오시면 먼 훗날 앗수르의 자손들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미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19:23-25).
셋째로,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사37:37); 립나에서의 전투를 마치고 라기스 요새지에 와서 쉬고 있던 산헤립 황제가 예루살렘 성밖에서 발생한 참극에 대하여 보고를 받습니다.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는 여호와 신의 저주와 재앙이 앗수르의 진영에 임한 것입니다(사37:36).
재차 첨병을 보내어 정찰을 한 결과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인이 몰살을 당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라기스의 중앙군을 이끌고 가장 빠른 시간 내 본국으로 철수하고 있습니다. 도중에서 전열을 정비한 유다 왕국의 병사들에게 습격을 받지 아니하려면 서둘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900km이상 동쪽에 떨어져 있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까지 도망을 가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산헤립 황제입니다(사37:37).
넷째로,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사37:38); 앗수르의 수도에서 산헤립 황제가 민심을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훗날 페르시아의 황제인 아하수에로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급히 수산 궁으로 돌아와서 민심을 수습하느라고 위무공작(慰撫工作)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에1:3-5).
민심을 수습한 다음에는 다시 원정에 나서기 위하여 군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 일이 순조로이 잘 이루어지도록 전쟁과 불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 자주 찾아가서 정성을 드리고 있습니다(사37:38a). 유다 왕국의 수호신 여호와의 역사로 엄청난 실패를 경험하였기에 이번에는 제국의 큰 신 니스록에게 전쟁의 승리를 거듭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쟁을 준비하면서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에 왕자의 난이 발생합니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산헤립 황제가 두 아들에 의하여 살해를 당하고 맙니다(사37:38b).
왕자의 난을 수습한 에살핫돈이 새로운 황제가 됩니다(사37:38c). 그는 부왕 산헤립보다 더 뛰어난 영웅입니다. 아예 애굽 제국으로 쳐들어가서 하 이집트를 집어삼키는 쾌거를 이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에 대해서는 침략할 마음을 먹지를 못합니다. 산헤립 황제 때 너무나 혼이 났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선민 이방인 상관이 없이 사람의 목숨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병정 18만 5천명의 목숨을 하룻밤 사이에 빼앗고 있습니다(사37:36). 무엇이 그와 같은 참혹한 심판을 초래하고 있는 것일까요?
(1) 300만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만 남기고 거의 전국을 초토화시켜버린 앗수르입니다(사36:1). 그들과 맞서 싸운 유다의 용사들만 하더라도 18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왕상12:21).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목숨에는 목숨”(출21:23-25)이라는 율법의 정신에 따르면 단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병사 18만 5천 명만을 몰살시킨 것은 그나마 희생을 최소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을 약소국 유다 왕국의 수호신이나 우상 정도로 우습게 여기고 자신의 하수(下手, 열등한 사람)라고 능욕한 산헤립 황제의 죄가 큽니다. 그 교만과 오만함은 가히 사탄에 버금가고 있습니다(사14:12-15).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강력한 처벌이 불가피합니다. 비록 이방인의 목숨까지 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강한 처벌을 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3) 본국으로 퇴각하여 또 다시 원정준비를 하고 있는 산헤립 황제를 하나님께서 아예 제거해버리십니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합니다. 20년후 니느웨에서 발생하고 있는 산헤립의 죽음입니다(사37:38).
(4) 먼 훗날 앗수르의 백성들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큰 역사가 임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미리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9:23-25). 메시아의 오심으로 대대적인 이방인 구원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그 혜택을 앗수르가 톡톡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5) 성도들은 너나없이 그와 같은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면서도 매일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을 되돌아보아야만 합니다. 산헤립처럼 창조주를 몰라보고 조롱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을 심판의 하나님으로 만드는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다시 한번 말씀 앞에 겸허하게 옷깃을 여미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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