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66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5. 15:37

이사야 강해 제166(37:21-2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23()

 

누가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주인이며 종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시는 하나님(37:21-29)

 

본문말씀은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히스기야 왕에게 전한 내용입니다. 그가 왕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한 이유는 그것이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간구한 결과 얻게 된 하나님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정을 기도로써 아뢰고 살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를 하게 되면 기도한 당사자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들려오거나 심중의 깨달음으로 나타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예루살렘 성의 구원을 위하여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였는데 그 응답이 이사야를 통해서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히스기야 왕이 그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별로 탐탁하지 아니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간접적인 방법으로 우회하여 응답을 주고 계시는 것으로 지난 시간에 설명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내용의 계시를 응답으로 주고 계시는지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대충 살펴보더라도 다음과 같은 순서로 그 내용이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1)  선지자 이사야를 히스기야 왕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왕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전하게 하십니다(37:21).

(2)  순전한 하나님신앙을 지닌 자들이 들어볼 때에 산헤립 황제의 말은 가소롭고도 이치에 어긋나 있다는 지적입니다(37:22).

(3)  구체적으로, 산헤립은 직접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능욕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제국을 형성한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37:23-25).

(4)  산헤립 황제는 교만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상대를 약하게 그를 강하게 만들어주어 제국을 이룰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37:26-27).

(5)  오히려 오만하게도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뜻을 거슬리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산헤립과 그의 군대를 치시고 앗수르로 되돌려 보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37:28-29).

위와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는 본문에 대하여 각 구절을 좀더 검토해보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한번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b)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37:21);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 달라고 마지막 순간에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습니다(37:14-20). 그러자 이상한 일이 두 가지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 기도의 응답이 엉뚱하게도 선지자 이사야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37:21b). 둘째, 이사야가 왕을 예방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내어 그 응답의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습니다(37:21a).

요컨대, 히스기야 왕이 기도의 응답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지도 못하고 있으며 더구나 선지자의 종을 통하여 그 응답을 간접적으로 전달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히스기야 왕이 무엇을 잘못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별로 좋은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홀대를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히스기야 왕은 주로 앗수르 황제인 산헤립이 여호와를 멸시한 내용의 친서를 가지고 하나님께 그를 처벌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상대방을 징벌하게 되면 자연히 예루살렘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환언하면, 하나님께서 산헤립 왕의 불경에 대하여 진노하셔서 앗수르 군대를 징벌하시게 되면 히스기야 왕은 그 반대급부를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특한 계산법입니다.

(2)  그와 같은 히스기야 왕의 태도와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십니다. 선민의 나라가 적의 침략을 당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들이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서 반성을 하고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다윗 왕조의 왕이라고 하는 히스기야가 전혀 그러한 태도를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상대방이 무지하게 하나님께 잘못하고 있으니까 무조건 그 놈을 혼내어 달라는 기도뿐입니다. 상대적으로 히스기야 자신은 의로운 왕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히스기야 왕의 약은 수법에 하나님께서 속으실까요? 아닙니다. 이미 그 속셈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히스기야는 애굽의 원군을 기다렸으며 또한 이사야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여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움직여서 위기를 벗어나려고 획책했던 왕입니다. 그것은 보통나라의 왕이라고 하면 잘못된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선민의 나라 다윗 왕조의 왕으로서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국가적인 위기를 당하여 처음부터 자신들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되돌아보는 노력이 전혀 없습니다.

(4)  산헤립 황제의 친서를 통하여 히스기야 왕은 공식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애굽의 원군이 엘라 골짜기 립나에서 앗수르 매복군에게 걸리어 패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37:8-9). 이제 애굽의 구원군을 기다려보아야 헛수고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절망입니다. 그렇다면, 산헤립 황제의 말대로 그에게 항복하고 투항을 한다면 과연 살려줄까요?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군사대국 앗수르가 그렇게 한 예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잔인하며 정복지를 초토화시키고 쓸만한 인재를 끌고 가는 대신에 그 땅에 식민정책과 혼혈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왕하17:4-6, 24). 특히 패전국의 왕은 죽이거나 포로로 끌고 가서 감옥에 집어 넣는 것이 상례입니다(왕하16:9, 17:4).

(5)  히스기야 왕은 애굽의 구원병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위와 같이 산헤립 황제의 무도한 행위를 하나님께 고발하면서 그들을 무찌르고 자신들을 구원해달라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그 기도의 응답이 간접적으로 나타나며 그것도 심부름꾼을 통하여 전달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a)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산헤렙)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b) 딸 예루살렘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37:22); 공의의 하나님의 판정과 행동은 공평성과 형평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풀이를 하자면, 누구에게나 같은 ’(rule)을 적용시키고 있으며 범한 잘못과 그 책임을 묻는 형벌이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산헤립 황제가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장차 하나님의 백성인 시온의 자녀들을 통하여 도망가는 산헤립 황제의 군대에게 멸시와 조소를 퍼붓게 할 것입니다(37:22a).

그리고 산헤립 황제가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도 자신들이 정복한 나라의 우상과 같이 별로 힘이 없는 토속신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감히 우상이나 토속신에 비유한 산헤립 황제와 앗수르 장군들의 생각이 엄청나게 잘못된 것이라고 예루살렘 성의 구원사건을 통하여 똑똑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그 표현이 다음과 같습니다; “딸 예루살렘(예루살렘 성의 백성들)(산헤립) 향하여 (네가 틀렸다고) 머리를 흔들었느니라”(37:22b). 여기서 시제가 과거형인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결정한 사항이라는 표현입니다.

셋째로, “(23)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24) 네가 네 종을 통해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25)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37:23-25); 사람이 하나님을 능욕한다고 하는 것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이 산헤립 황제가 은연중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행한 잘못입니다(37:23).

그런데 하나님의 권위는 길이, 넓이, 높이, 그리고 깊이라고 하는 네 가지의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황제는 그 네 가지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도전장을 내고 있습니다;

(1)  첫째,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자신이 오를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37:24). 피조물인 주제에 감히 하나님의 무상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2)  둘째, 가장 깊은 골짜기 지옥에까지 이르는 죽음의 권세를 자신이 장악하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세가 제국의 황제인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37:24).

(3)  셋째, 오래 전부터 황제들이 치수사업을 통해서 농사를 지을 물과 마실 물을 백성들에게 공급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37:25a).

(4)  넷째, 중근동지역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여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이 되었으니 이제는 애굽 제국을 정복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포부입니다;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37:25b).

넷째로, “(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같이, 푸른 나물같이, 지붕의 풀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같이 되었느니라”(37:26-27); 산헤립 황제의 도전행위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단 한 마디로 응답을 하시고 계십니다; “네가 가는 곳마다 승전을 하고 적들의 성읍을 초토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인류의 역사를 그렇게 계획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대국의 힘을 무력화시켜서 앗수르에게 제국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는데 그 사실을 산헤립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37:26-27 의역).

산헤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시는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잘못은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점에 관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28)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29)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를 꿰며 재갈을 네 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37:28-29);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잘된 것은 전부 자기 노력이며 자기 복이고 잘못된 것은 전부 남의 탓인데 궁극적으로는 그와 같은 형편과 처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탓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인간들의 교만과 오만함이 그렇게 표출이 되어 나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국의 황제인 산헤립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심히 산헤립의 행태를 살피시고 있습니다. 그가 거처에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 사람들 앞에서 출입할 때에 하는 행동을 면밀히 살피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의 큰 잘못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잘한 것은 전부 황제인 산헤립 자신의 공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전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하나님 탓이라고 불만을 표출하는 것입니다”(37:27-28a 의역). 특히 약소국 유다 왕국의 수호신이라고 하는 여호와가 다윗 왕조를 부추겨서 자신에게 계속 항전을 하고 있으니 그것에 대하여 심히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산헤립 왕의 삐뚤어진 행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징계를 하시고자 이미 결심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의 군대를 무찔러버리고 그를 본국으로 뺑소니를 치도록 만들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표현이 일찍이 하나님께서 욥에게 창조주의 전능성을 설명하실 때의 문구 그대로입니다;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40:24-41:2), “내가 갈고리로 네 를 꿰며 재갈을 네 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37:29b).

결론적으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침입자가 도리어 주인을 도둑으로 몰아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이 하고 있는 행위가 바로 적반하장입니다. 약소국 유다 왕국이 자신의 강력한 군대 앞에 빨리 항복을 하지 아니하고 버티고 있는 것에 대하여 대단히 심기가 불편한 것입니다.

이사야에게 계시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게 되면, 앗수르의 군대가 가는 곳마다 승전을 하고 또한 산헤립이 대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전부 하나님의 계획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산헤립 황제는 역사를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를 먼저 살펴야만 합니다. 그런데 무신론자인 앗수르의 황제들은 전혀 그러한 태도를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유다 왕국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이 정신전력 면에서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심히 불쾌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산헤립 황제와 그의 군대를 크게 징계하여 본국으로 뺑소니를 치도록 만들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히스기야 왕은 상대적으로 구원함을 받게 되고 의기양양해질 것입니다.

사실은 히스기야 왕의 그와 같은 태도가 선지자 이사야가 볼 때에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소식을 자신이 직접 왕에게 전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대신 보내고 있습니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히스기야 왕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아람 왕국과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연달아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정복이 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자국은 안전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정세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부왕인 아하스는 매우 한심하게도 다메섹에 건설한 앗수르 황제의 대규모 제단을 보고서 그것을 예루살렘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앗수르의 비위를 잘 맞추면 유다 왕국이 계속 유지가 될 수 있다고 태평스럽게 정세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을 히스기야가 계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막상 앗수르가 쳐들어오자 금과 은을 주고서 화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보화를 챙긴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는 아예 유다 왕국을 완전히 집어삼키려고 합니다. 뒤늦게 애굽에 원군을 청해보지만 앗수르의 포위망을 뚫지를 못합니다.

(3)  애굽의 원군을 패퇴시키고 있으므로 이제 항복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산헤립의 친서를 받고서야 히스기야가 절망 끝에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저 오만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앗수르를 징계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해달라는 기도입니다.

(4)  문제가 많은 히스기야의 하나님신앙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명예와 다윗과의 언약을 생각하여 그 기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37:35). 그러나 히스기야의 반성을 촉구하는 입장에서 두 가지의 조치를 취하시고 계십니다; 첫째, 기도에 대한 응답을 히스기야에게 바로 주시지 아니하시고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시고 있습니다. 둘째, 이사야도 직접 히스기야 왕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전해주지 아니하고 사람을 시켜서 전달해주고 맙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한 히스기야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발생하는 일들에 대하여 이사야가 기록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사람들의 속마음과 그 출입하는 바를 일일이 살피시고 그 보응을 정확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영적으로 민감해야만 합니다. 괘씸한 산헤립 황제의 코를 꿸 것이며 그의 군대를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있는지 새삼 자신의 신앙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6)  올바른 하나님신앙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접해주고 자신은 피조물이며 종이라고 하는 사실을 항상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고 자신은 그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태도를 굳건히 지키시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