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67강(사37:30-3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1월 24일(화)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어떻게 징계하실지 이사야에게 미리 말씀해주신 내용(사37:30-35).
본문에서 이사야는 산헤립 황제의 행보와 그가 어떻게 패퇴하여 본국으로 도망을 가게 되는지를 마치 손금을 들여다보듯이 정확하게 예언의 말씀으로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 숨어 있던 유다의 백성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으며 유다의 땅이 얼마나 빨리 회복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을 파악하기 위하여 각 구절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새겨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b) 올해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둘째 해에는 또 거기에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셋째 해에는 심고 거두며 (c)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사37:30); 앗수르의 대군이 예루살렘 성을 계속 포위하고 있습니다. 항복을 권유하는 산헤립 황제의 친서가 히스기야 왕에게 도착해 있습니다. 친서의 내용 그대로 애굽의 원군이 산헤립 황제의 정예병에 의하여 저지를 당하여 전혀 예루살렘 성에 이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절망에 사로잡힌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 선지자 이사야에게 주어지고 그 내용이 그의 종을 통하여 히스기야 왕에게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응답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오만방자한 산헤립 황제의 코를 꿰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본국으로 되돌아가도록 역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자연히 예루살렘 성과 유대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기적과 같은 일이 과연 발생할 수가 있을까요? 너무나 초자연적인 말씀이어서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가진 인간의 입장에서는 달리 이해를 하고자 시도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앗수르의 본국에서 예상 밖의 급작스러운 안보상의 위기가 발생하여 원정에 나와있는 산헤립 황제에게 급보가 날아듭니다.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본국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예루살렘 성을 포기하고 재빨리 군대를 수습하여 정신 없이 본국으로 달려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러한 현실감이 있는 해석이 훗날에 성행할 것입니다.
흔히 이해와 설명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제멋대로 해석을 하고서 머리 속으로 사건을 정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임을 희석하고 자연적인 현상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묘한 심리입니다. 그러한 인간들의 심성을 창조주께서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처방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처방이 다음과 같은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사실임을 보완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증거들(또는 징조들, 사37:30a)입니다;
(1) 적이 물러가고 삼 년 만에 정상적인 농사와 추수가 가능해질 것입니다(사37:30b).
(2) 그 사이 두 해 동안에는 놀랍게도 버려진 밭에서 스스로 자란 곡식과 열매를 얻어서 자급자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준 것과 같은 기적입니다.
(3) 특히 삼 년째의 농사에는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얻게 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사37:30c). 다년생 나무인 포도나무에서 어떻게 금방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징조입니다(사37:30a).
둘째로, “(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32) (a)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b)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c)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사37:31-32); 다윗 왕조와 유다 왕국을 재건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유다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만을 제외하고 전국을 휩쓸고 그 땅의 재물과 백성을 전부 약탈해간 앗수르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전국의 지방을 다시 회복하고 건설하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급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사야는 그 일이 반드시 성취가 되는 이유를 하나님의 열심이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사37:32c).
(2) 먼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인구를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 표현이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사37:31)입니다. 인구증가가 급속해지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그것이 소위 ‘전후(戰後) 베이비붐(baby boom)’이라고 하겠습니다.
(3) 예루살렘 성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크게 보아 두 부류라고 이사야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사37:32a); 본래 왕도인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귀족들이며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2)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사37:32b); 적이 지방을 유린하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정신 없이 살길을 찾아 산으로 피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운이 좋아서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산으로 피신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남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베이비붐’을 이루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구증가가 빨라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a)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b)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사37:33-34);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가 예루살렘 성에 도착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블레셋을 견제하기 위하여 라기스 요새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왕하18:14). 그래서 다르단을 총사령관으로 삼고 랍사리스와 랍사게 장군을 부사령관으로 삼아서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을 공략하도록 했습니다(왕하18:17).
그리고 애굽의 구원군이 해변 길을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다음에는 재빨리 산헤립이 엘라 골짜기의 고지대 립나를 선점하여 유리하게 그들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마침 전황을 파악하는 한편 새로이 황제의 명령을 받으려고 온 선전관 랍사게에게 산헤립은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친서를 전달하게 합니다(왕하19:8-10, 사37:8-10).
이제 애굽의 원군을 얻을 수 없게 된 히스기야 왕이 항복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산헤립 황제는 예루살렘 성으로 개선하게 될 것입니다. 멀리 단 아래에는 히스기야 왕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자신에게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히스기야를 죽일 것인지 아니면 전리품으로 앗수르로 끌고 갈 것인지를 결정하면 됩니다. 생각만해도 즐거운 일만이 남아 있는 때입니다.
바로 그러한 시점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예언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1) “산헤립은 결코 예루살렘 성에 발을 디디지 못할 것입니다. 효과적으로 예루살렘 성을 직접 공략해보지도 못한 채 퇴각하고 말 것입니다”(사37:33 의역).
(2) 한번 더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조롱한 대가로 엄청난 군사를 잃어버리고 허둥지둥 본국으로 도망을 치기에 바쁠 것입니다”(사37:34a 의역).
(3) 끝으로 완전히 못을 박고 있습니다; “(성부이신 여호와 하나님, 성자이신 메시아,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등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완전합의로 결정하신 사항이므로 결코 변개함이 없을 것입니다”(사37:34b 의역).
넷째로, “(a) 대저 내가 나를 위하여, (b) 내 종 다윗을 위하여, (c) 이 성을 보호하며, (d)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사37:35); 여러 번 설명을 드린 대목이지만 다시 한번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히스기야 왕의 믿음이 좋다거나 예루살렘 성의 귀족이나 부유한 백성들이 하나님신앙이 특출하여 그들을 구원하여 준다고 하는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준다는 것입니다(사37:35a).
(2) 그 다음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주는 이유가 특이한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 종 다윗을 위하여”(사37:35b). 다윗 왕조의 조상인 다윗 대왕이 일찍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신실하게 섬기는 모범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제국의 대왕이었지만 스스로 겸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왕도 다윗 대왕의 후손답게 앞으로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3) 만약 그 말씀을 명심하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전후에 발생하게 되는 두 가지 사건 곧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국의 부와 군비를 공개한 것’(왕하20:12-19) 그리고 ‘왕자 므낫세를 잘못 키워서 나라에 망조가 들게 한 것’(왕하21:1-16) 등 씻을 수 없는 잘못을 히스기야 왕이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4) 적의 공격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견고하게 지켜주신다고 하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이며 곧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특징입니다(사37:35c).
(5) ‘구원’이라고 하는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땅의 위험에서 구출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출애굽기의 구원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 죄인을 대속하여 의인으로 살게 하고 나아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완전한 의미의 구원입니다. 그 가운데 히스기야 왕은 전자의 구원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사37:35d, 39:8).
(6) 하지만 선지자 이사야는 전자에서부터 후자의 구원을 앙망하는 경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제사장나라인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머지않아 멸망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사3:8). 그리고 완전한 제사장나라 곧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대속자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사7:13-14, 9:6-7, 11:1-9).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산헤립 황제와 앗수르를 징계하시고 예루살렘 성과 히스기야 왕을 구원해준다고 하더라도 선민들의 신앙상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급박한 위기상황이 지나고 나면 다시 불신앙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스스로 다음과 같이 여기고 말 것입니다; “산헤립 황제는 급한 본국의 정세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사를 거두어 화급하게 철군을 한 것이다. 그가 지체를 했더라면 앗수르 제국 자체가 아마도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능히 그럴 수 있는 예루살렘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하고서 이사야가 구체적인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1) 전국이 초토화되고 황폐화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년 동안 남은 백성들을 먹여 살리실 것입니다. 땅에서 그냥 자라고 있는 곡물과 열매로 이년 동안 연명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삼 년이 되면 정상적인 농업이 가능하게 하실 것입니다.
(2) 특히 삼 년째에는 포도나무를 심고 바로 수확을 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적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살리시며 먹이시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3)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만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재물뿐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장정들을 모두 앗수르로 끌고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남은 자를 가지고 빠르게 유다의 인구를 회복하는 역사를 보이실 것입니다. 놀라운 베이비붐과 인구의 증가가 발생할 것입니다.
(4) 그리고 당면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산헤립 황제가 결코 예루살렘 성에 도달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예루살렘 성을 공략해보지도 못한 채 억울하게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놀라운 일들이 발생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고서 옷깃을 여미기를 바랍니다.
(5)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왕과 유다의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준 것은 자신들이 의로운 선민으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맙니다. 그래서 다시 옛날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100여년 후에 유다 왕국이 망하고 맙니다.
(6)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고 구원해주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둘째, 왕이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갔던 다윗을 본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접하고서 그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평생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하나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간다면 마침내 영원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푯대를 향하여 정진하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강해 제16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06 |
---|---|
이사야 강해 제16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06 |
이사야 강해 제166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05 |
이사야 강해 제16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05 |
이사야 강해 제16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