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6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5. 00:19

이사야 강해 제165(37:14-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22(주일)

 

세상적인 구원의 방책이 모두 사라지자 히스기야 왕은 어떤 내용의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있는가?(37:14-22)

 

예루살렘 성을 포위공격하고 있던 앗수르 측이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통첩을 두 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랍사게 장군이 산헤립 황제의 명령으로 성내의 백성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친 것입니다(36:2-20). 그리고 두 번째는 산헤립 황제가 직접 사절을 파견하여 예를 갖추어 히스기야 왕에게 칙서를 전달한 것입니다(37:9-14). 두 가지의 사례는 그 외교적 의미가 상당히 다릅니다. 전자는 예루살렘 성내의 내분과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일종의 선전과 선동의 술책입니다. 반면에 후자는 정식으로 외교사절을 파견하여 히스기야 왕에게 정중하게 산헤립 황제의 칙서를 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가 전투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난 것이라면 후자는 애굽과의 전투에서 앗수르가 승리하고 있으므로 그만 항복을 하고 백성들의 살길을 도모하라고 히스기야 왕을 설득하며 그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차이점을 생각할 때에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 히스기야 왕이 항복과 화해로 돌아설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왕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애굽에 의한 구원의 방책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 히스기야 왕은 이제 과연 무엇을 믿고서 끝까지 강경하게 버티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산헤립 황제가 알고 있는 이방 신들과 히스기야 왕이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질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를 무시하고 조롱한 산헤립 왕과 앗수르 군대는 하나님의 징계를 크게 받을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이 능히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무릇 하나님신앙을 제대로 가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과연 누구시며 다른 이방 신이나 우상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히스기야 왕의 하나님에 대한 신관이 어떠한가를 본문에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산헤립 왕이 예로 들고 있는 이방의 신들과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을 폭넓게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러한 점을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14) 히스기야그 사자들의 손에서 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15)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37:14-15); 산헤립 황제의 친서는 히스기야 왕에게 보내어진 것입니다. 그 내용은 예루살렘 성내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히스기야 왕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버틸 것인가? 아니면 항복할 것인가? 유다 왕국의 최고 권력자인 히스기야 왕이 결정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의 태도가 이상합니다. 그가 결정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최고결정권자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최고결정권자가 누구일까요? 본문에서 그 해답이 다음과 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1)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 황제의 친서를 들고서 성전으로 들어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도록 그 앞에 펴놓고 있습니다(37:14). 그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의 주인이시며 유다 왕국의 최고결정권자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은연중에 히스기야 왕이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결정을 얻기 위해서 히스기야 왕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37:15).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응답이 직접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오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그 응답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에게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37:21-22).

(3)  왜 그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히스기야가 비록 왕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신뢰한 자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애초에 앗수르와의 국방외교정책에 대하여 하나님과 상의를 한 바가 없습니다. 그는 앗수르와의 전쟁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구원병이 예루살렘에 도달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만 것을 확인하게 되자 그때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막바지에 가서야 산헤립 황제의 친서를 들고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있는 것입니다(37:14).

(4)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의 특이성을 기름부음 받은 다윗 왕조의 왕이라면 얼른 알아채야만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왕임을 인정하고서 말씀공부도 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아직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뼈아픈 말씀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대저 내(여호와)나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37:35). 히스기야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엄중하신 경종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a)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b) 주는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c)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37:16); 비록 부족한 하나님신앙이지만 그래도 히스기야 왕이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a)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거느리고 계시고, (b) 천하만국의 주인이시며, (c) 유일하신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히스기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있는 것은 그 절대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있는 적들을 쳐부수어달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도로 부르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세 가지의 개념은 중요합니다. 모세오경에서부터 다음과 같이 강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창세기 제1장에서 하나님의 창조주이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1:1). 둘째, 출애굽기 제19장에서 세계가 다 여호와에게 속하였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19:5). 셋째, 출애굽기 제25장에서 천상의 모양을 본 따서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나오도록 속죄소를 만들고 있습니다(25:22).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본문의 말씀이 이방 신이나 우상들과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치고 있기에 앞으로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특성에 대하여 더 묵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1)  유일하게 복수이지만 하나의 진리로 역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1:26-27, 1:1-4).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의 신비가 전제가 되고 있습니다(4:4-6).

(2)  스스로 존재하시고 스스로 결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3:14). 그러므로 피조물이 어찌할 수 없는 창조주의 영광과 권세를 지니시고 있습니다.

(3)  사람의 모양으로 현신하시고 선지자와 대화도 나누십니다(18:1-15). 그리고 선지자의 의견도 중보기도로 청취하십니다(18:17-32).

(4)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3:15). 대를 이어서 아버지 하나님으로 그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그들은 모두 살아 있습니다(22:32).

(5)  당대의 의인 또는 믿음의 족장과 축복의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대대로 약속의 아들을 세워서 승계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1-4, 17:19, 28:13-15).

(6)  치유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원수를 무찌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15:26, 17:15-16).

(7)  휴거와 승천을 발생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5:24, 왕하2:11, 24:51, 1:9).

(8)  메시아와 선지자를 통하여 불치의 병자와 장애자를 고치시고 때로는 하늘곳간을 여시는 하나님이십니다(왕하5:14, 4:23, 6:11).

(9)  부활과 영생의 하나님이십니다(21:33, 22:2, 11:19).

(10)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6:7-8).

(11)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65:17).

(12)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운명을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32:28, 35:10).

(13)    인신제사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제물을 마련하시고 희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2:13, 53, 2:5-11).

(14)    메시아를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셔서 믿음의 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7:14, 9:6-7, 11:1-5).

(15)    메시아에게 임한 임마누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의 강림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7:14, 11:2).

(16)    일단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면 먹이고 입히시며 훈련을 시키고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16:25-30, 8:14-16).

(17)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능력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4:14-20, 21:1-7, 4:15-17, 1:1-9).

셋째로, “(a) 여호와여 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b) 여호와여 을 뜨고 보시옵소서. (c)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계시는 하나님훼방(d)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37:17); 하나님은 사람의 소리를 모두 듣고 계시며(37:17a) 사람의 행동을 모두 보고 계십니다(37:17b). 그리고 심중의 소리도 들으시고 그 계획도 모두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창조주로 그냥 머물러 계시는 것이 아니고 피조세계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가 죽은 것이 아니라 엄연히 살아계십니다. 그렇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식한 자가 산헤립 황제입니다(37:17c).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산헤립은 제 마음대로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 하시는 역사의 섭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보고를 드리고 있습니다. 보고하는 방법이 바로 산헤립의 칙서의 내용을 하나님 존전에 소리 내어 읽어 드리는 것입니다(37:17d).

사실 앗수르가 강대국이 되고 지역의 패권을 행사하며 많은 왕국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손안에 있는 행위에 불과합니다(37:26-27).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임을 받고 있는 몽둥이에 불과한 앗수르가 오히려 주인이신 하나님을 훼방하고 있습니다(37:17c, 28-29). 그 결과는 참혹할 것입니다(37:35-36).

넷째로, “(18)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을 황폐하게 하였고, (19) (a)그들의 신들불에 던졌사오나, (b) 그들은 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이라. (c)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37:18-19); 앗수르의 영웅 왕들이 많은 왕국을 정복하고 백성들을 전쟁포로와 노예로 제국에 끌어감으로써 그 땅을 황폐화시킨 것이 사실입니다(37:18). 그리고 이웃나라를 정복하게 되면 약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신상을 파괴하고 목상을 모두 불에 태워버렸습니다(37:19a). 그 이유는 피정복민들의 정신세계의 주인이 더 이상 이방 신이나 우상이 아니며 제국의 신과 황제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앗수르의 행동에 그 어떤 브레이크도 걸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열국의 신들이 모두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우상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37:19b). 사람들이 돌을 깎고 다듬어서 신상으로 만들고 주신으로 모십니다. 그리고 나무로 아름다운 여신을 조각하여 주신 옆에 세웁니다. 이방인들은 바알 신같이 힘이 있는 남신과 아스다롯처럼 아름다운 여신이 금슬이 좋은 부부 신으로 섬김을 받게 되면 이 세상에 풍요와 번영이 계속 찾아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년이 들거나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성이 부족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몰렉 또는 멜렉에게 드린 인신제사를 역사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왕하17:31). 그러나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37:19c).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엄금하시기 때문입니다(20:4-5, 32:4-6, 28).

참고로, 앗수르 시대의 이방 신들에 대해서는 사마리아에 만연하고 있는 앗수르 식민(植民, planted people)들의 우상문화에서 잘 엿볼 수가 있습니다(왕하17:29-31). 그리고 솔로몬 시대 이방인들의 우상문화와(왕상11:3-8),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 왕 시대의 우상문화에 대해서는 선민들의 역사서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21:2-7).

다섯째로, “(a) 우리 하나님 여호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b) 천하만국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알게 하옵소서 하니라”(37:20);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사람이 만든 신이 아니며 우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이방제국의 황제인 산헤립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 겁이 없으며 오만한지 모릅니다.

그 사실을 히스기야 왕이 강조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십시오.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는 줄 온 천하에 알게 해주십시오”(37:20 의역). 내용을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 하나님 여호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37:20a); 히스기야가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오로지 선민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관념이 강하게 들어있는 표현입니다. 결코 앗수르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앗수르는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능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람들이 만든 신이나 우상쯤으로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혼내주시고 유다 왕국은 구원해달라는 간구입니다.

(2)  천하만국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알게 하옵소서 하니라”(37:20b); 히스기야가 너무 이기적인 간구라고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잘못한 앗수르를 징계하는 과정에서 유다 왕국이 반사적인 이익으로 구원을 받아 챙기는 것이 좀 어색했는지 한 대목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앗수르를 징계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온 세상에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37:20b 의역).

(3)  히스기야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몰라보고 무시하고 있는 제국을 징계하시는 궁극적인 이유를 그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호와가 누구이신지 선민과 이방인들이 모두 알아야만 합니다(19:21).

2)    선민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든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이십니다(19:19-20)

3)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행태를 고치십니다. 곧 사람들의 하나님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들의 행동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19:22-23).

4)    진리를 깨닫는 자들을 세워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십니다(19:24-25).

결론적으로, 성경에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 시대에 그의 장조카인 롯이 그러하고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에 히스기아 왕이 그러합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등의 도시가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 망하기 직전에 천사에게 끌려 나오다시피 하면서 겨우 구원을 얻고 있습니다(19:16). 그의 아내는 두고 온 재물이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기도 합니다(19:26).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애굽의 원병이 산헤립 군대에 의하여 저지를 당해서 도저히 예루살렘에 도달하지를 못하게 되자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신이 잘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저 산헤립 황제가 여호와의 창조주 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이방 신이나 우상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으니 이를 처벌해달라는 기도의 내용으로 일관합니다. 그 결과 반사적인 이익을 얻어서 예루살렘 성이 구출이 되면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은 히스기야입니다.

그의 소행이 영 흡족하지 아니하여 그런지 하나님의 응답이 간접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에게 직접 응답을 하시지 아니하시고 선지자 이사야에게 응답을 하신 것입니다. 그 내용도 히스기야 왕의 간구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와 다윗 왕과의 언약을 기억하여 구원을 해줄 것이라는 응답입니다. 참으로 다윗 왕조 히스기야 왕의 하나님신앙이 깊지를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과 성령님의 강림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로부터는 구원을 얻지만 100년 남짓 지나면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마지막 제사장나라가 사라질 운명임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제사장나라가 다시 회복이 될까요?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과 같은 형태는 아닐 것으로 이사야가 전망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메시아의 오심과 하나님나라에 관한 그의 예언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메시아가 오시고 또한 성령님이 강림하여 성도들에게 개인적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시대에 성도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할애하여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며 깨달은 내용을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으로 삼아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본문을 읽으면서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이 어떠한 창조주이신지 그리고 그 구원계획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시어서 히스기야 왕과 같은 부끄러운 구원의 모습을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