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64강(사37:8-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1월 21일(토)
히스기야 왕과 그의 세 신하가 마지막까지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애굽에 의한 구원의 소망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사37:8-15)
주전 701년에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오자 히스기야 왕이 처음에는 화해정책을 추진합니다. 전국의 금과 은을 끌어 모아 겨우 산헤립의 군대를 물러가게 합니다(왕하18:14-16). 그러나 산헤립 황제는 교활하게도 잠시 회군하는 척 하다가 말을 돌려 유다의 전국을 유린하기를 시작합니다(왕하18:17). 순식간에 볏짚이 쓰러지듯이 유다의 46개 성읍이 점령을 당하고 왕과 귀족들은 예루살렘 성에 틀어박혀서 마지막 저항을 하게 됩니다. 이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살 길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첫째, 종주국인 애굽 제국에서 구원병을 보내어주는 것입니다. 둘째, 조상들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기적을 다시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위기의 순간에 항복하면 살 길을 열어주겠다고 하는 적장 랍사게의 감언이설이 최후통첩으로 있게 됩니다. 그것은 랍사게 장군이 산헤립 황제의 말을 조용하게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방언으로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18:26-28). 그 의도는 뻔합니다; “예루살렘 성안의 백성들에게 왕과 귀족들을 불신하고 반란을 일으켜서 성문을 열게 만들려고 하는 수작입니다”(사36:11-20). 그와 같은 적의 의도를 간파하고서 히스기야 왕은 공포를 느낍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즉시 선지자 이사야를 방문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부탁하라고 지시합니다(왕하19:1-4, 사37:1-4).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성전으로 베옷을 입고 들어갑니다(사37:1). 바로 그때에 하나님의 계시가 이사야에게 임합니다(사37:5-6). 그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을 능욕하고 있는 앗수르의 군대가 물러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조치를 취하시겠다는 것입니다(사37:6-7). 그렇다면, 그 덕택에 예루살렘 성과 유다 왕국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잠잠히 지켜보고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비록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고 살 길을 열어주겠다고 하시는 예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만을 믿고서 끝까지 인내하기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어지간한 신앙의 성숙함이 없으면 그 기다림과 인내의 과정에서 수시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휩쓸려서 실족하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면, 그 옛날 하나님의 예언을 빙자하여 믿음의 여인 리브가와 영적인 장자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더 정확하게 기다리지를 못하고 그만 함께 공모하여 장남 에서에게 돌아갈 차기 족장의 축복을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가로챈 사건과 같은 것입니다(창25:23, 27:1-19).
바로 그와 같은 이치를 설명하고 또한 눈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각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8)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그 왕을 만나니 립나를 치고 있더라. (9) 그때에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의 일에 관하여 들은즉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가 나와서 왕과 싸우려 한다 하는지라. 이 말을 듣고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며 이르되, (10) 너희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히스기야)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이사야의) 말에 속지 말라”(사37:8-10); 랍사게는 산헤립 황제의 명령으로 예루살렘 성의 백성들을 선동하는 일종의 항복의 권고를 크게 유대 말로 부르짖은 바가 있습니다(사36:11-20). 그러나 그 결과는 미온적입니다. 성안의 백성들이 별로 동요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그의 말에 반박을 하지도 아니하고 있습니다(사36:21). 그 분위기가 예상 밖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채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애굽에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랍사게가 라기스로 산헤립 황제를 찾아가서 애굽의 구원병과 어떻게 대치를 하고 있는지 그 분위기도 살피고 새로운 명령을 받아오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전개가 되고 있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라기스는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45km떨어져 있습니다(사37:8a). 그곳은 수평으로 동쪽의 헤브론과 서쪽의 가사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의 애굽, 서쪽의 블레셋, 동쪽의 유다 등 세 나라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산헤립 황제의 중앙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랍사게가 그곳을 찾아갔을 때에는 황제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산헤립이 정예병을 이끌고서 급히 립나로 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사37:8b). 산헤립은 애굽의 병력이 예루살렘을 구하고자 해변 길로 신속하게 이동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서(사37:9b) 북쪽 15km지점에 있는 엘라 골짜기의 요새지 립나로 빠르게 이동을 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입니다.
(3) 따라서 먼 길을 달려와서 피곤한 당시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의 군대가 그곳에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사37:8b-9a). 산헤립의 군대가 엘라 골짜기 위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일시에 골짜기 통로를 지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박살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전략에 뛰어난 정복 왕이 산헤립이라고 하겠습니다.
(4) 전쟁에 밝은 산헤립 황제는 당장 자신을 찾아온 랍사게에게 다음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이제는 예루살렘 성의 백성들을 선동하는 전술을 버리고 히스기야 왕 자체를 흔들라는 것입니다(사37:10a). 구체적으로, 산헤립 황제가 어떻게 애굽의 구원병을 엘라 골짜기에서 효과적으로 물리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동시에 옛날부터 앗수르의 황제들이 연전연승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적국의 왕들과 그들의 신들이 앗수르 제국 황제들의 지략과 군사력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 결론적으로 히스기야가 섬기고 있는 여호와도 별 수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여 그의 믿음을 극도의 불안과 의심으로 바꾸도록 하라는 참으로 영특한 산헤립의 심리전입니다(사37:10b).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 이사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구원의 예언을 믿고서 끝까지 버틸 수가 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그만 적에게 항복을 하게 될까요?(사37:10)
(6) 이하의 구절은 히스기야 왕의 믿음을 흔들고 있는 산헤립의 상세한 도전의 내용들이며 또한 정신적으로 멘붕을 당하고 있는 히스기야가 마지막으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 하는 내용들입니다.
둘째로, “앗수르 왕들(디글랏 빌레셀3세, 살만에셀5세, 사르곤2세, 산헤립 등)이 모든 나라에 어떤 일을 행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멸절시켰는지 네가 들었으리니, 네가 구원을 받겠느냐?”(사37:11); 산헤립 황제의 말은 역사적으로 사실입니다. 그 자신도 대단한 정복 왕이지만 그의 선조 3대가 모두 정복 왕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1) 앗수르 제국의 디글랏 빌레셀3세는(bc746-728) 주전 733년에 시리아의 아람 왕국을 정복합니다(왕하16:9). 그리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상당부분을 점령합니다(왕하15:29). 그는 별명이 ‘불’(Pul)로 불리기도 하며 앗수르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입니다(왕하15:19).
(2) 살만에셀5세는(bc727-722) 북조 이스라엘을 거의 점령하고 마지막으로 사마리아 성을 3년간 포위공격하고 있던 중에 사망을 하게 됩니다(왕하17:5, 18:9).
(3) 사르곤2세는(bc722-705)는 부왕에 이어서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점령합니다(왕하17:6). 이로써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그는 블레셋을 공격하여 도시국가의 하나인 아스돗을 점령합니다(사20:1).
(4) 산헤립은(bc705-681) 블레셋과 남조 유다 왕국을 성공적으로 침략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의 신위적인 역사에 의하여 대부분의 군사를 잃어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갑니다(왕하19:35-36). 그 후 왕자들의 반란을 만나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왕하19:37).
셋째로, “나의 조상들이 멸하신 열방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및 들라살에 있는 에덴 자손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사37:12);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강대국 앗수르가 ‘카스피’ 해(海, sea)에서 남하하고 있는 유목민들을 막기 위하여 그들의 ‘우라르투’ 왕국과 전쟁을 하는 동안에 북조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2세(bc790-750)가 오랜 세월 잃어버린 동쪽의 땅을 상당히 많이 회복한 적이 있습니다(왕하14:25). 그러나 앗수르가 북방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자 국제정세는 급변하게 됩니다.
군사대국 앗수르가 가장 먼저 동남쪽 엘람 왕국의 수도인 ‘수산’을 정복합니다. 그곳의 이름이 ‘고산’입니다(왕하18:11, 사37:12a). 그 다음에는 서북쪽의 시리아 땅을 상당히 차지하게 됩니다. 산헤립의 설명을 참고하면 정복의 역사는 다음과 같으며, 그 나라의 신(神, god)들이 앗수르의 진격을 전혀 막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사37:11-12);
(1)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요새지 ‘갈그미스’를 먼저 점령하고 그 다음에는 차례대로 그 북쪽의 ‘들라살’과 ‘에덴’(겔27:23) 그리고 북동쪽의 ‘레셉’을 정복합니다(사37:12c).
(2) 그 다음에는 갈그미스 서쪽의 ‘하란’을 차지하고(사37:12b) 이어서 북서쪽 소아시아 쪽으로 쳐들어가서 ‘알렙포’와 ‘아르밧’을 점령합니다.
(3) 이에 따라 시리아의 아람왕국은 자꾸만 작아지기 시작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람왕국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과 동맹을 맺고서 앗수르와 대치를 하게 됩니다.
(4) 앗수르의 서방정책에 크게 위협은 느낀 북조 이스라엘의 왕 베가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도 동맹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고 맙니다. 이에 격분한 베가는 아람 왕 르신과 함께 유다를 징계하기 위하여 공격에 나섭니다(왕하16:5).
(5) 아하스 왕은 주전 734년 두 나라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배후를 공격해달라고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3세에게 요청합니다(왕하16:7-8). 그 결과는 실로 참혹합니다. 한 마디로, “이리를 피하려다가 산중의 호랑이를 끌어들인 꼴”입니다.
(6) 주전733년에 아람 왕국이 망하고(왕하16:9)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이 망하고 맙니다(왕하17:6). 주전 715년에는 블레셋이 크게 침략을 당합니다(사20:1). 주전 701년에는 본문에서와 같이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사37:10-11).
넷째로,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 왕과 이와 왕이 어디 있느냐? 하라 하였더라”(사37:13); 산헤립 황제가 아람 왕국의 북부 국경도시 ‘아르밧’, 중부의 요새지 ‘하맛’, 그리고 수도 다메섹을 멀리 북쪽에서 지키고 있는 ‘스발와임’ 성의 성주들을 모두 왕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사36:19, 37:13). 그러므로 당시에 아람 왕국의 왕 르신은 연합 왕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왕하16:6). 그것은 마치 블레셋의 대왕이 아비멜렉이며 그는 다섯 도시 국가의 왕들의 연합체를 이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헤나’와 ‘이와’(사37:13) 또는 ‘아와’(왕하19:13)가 언급이 되고 있는데 그 자세한 위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성읍들이 ‘스발와임’과 더불어 ‘사마리아’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설명이 되고 있어(왕하18:34) 주전 725년경 스발와임과 더불어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키고 북조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있는 앗수르 군의 배후를 공격했던 도시들로 짐작이 됩니다. 따라서 헤나와 이와는 스발와임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던 아람의 도시들로 추정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산헤립은 그들의 모든 노력이 전부 앗수르 제국의 무력 앞에 물거품이 되었으며 그들의 신들도 뾰쪽한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깨끗하게 무릎을 꿇으라는 권유입니다.
다섯째로, “(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15)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사37:14-15); 산헤립 황제의 글을 받아보고서 히스기야는 완전한 절망에 사로잡힙니다. 인간적으로 그리고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나라가 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망의 골짜기에 완전히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의 발걸음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하고 그에게 마지막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도록 조치하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사37:14-15). 마치 야구게임으로 보자면 9회말 ‘two out’의 상황과 같은 것입니다. 그때 상황을 역전시키는 회심의 한 수가 다음과 같이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1)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2) 조용히 산헤립 황제의 논리를 적어놓은 글을 그 앞에 펼칩니다.
(3) 그 내용을 읽고서 기도를 드립니다.
(4) 보고 들으신 그대로 판단하시고 창조주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리고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구원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5) 그 결과 하룻밤 사이에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적군 18만5천명이 천사에 의하여 전멸을 당하게 되는 대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사37:36). 그것은 마치 그 옛날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과 같은 것입니다(출12:29-42).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다윗의 시편말씀을 다시 한번 음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4-5).
히스기야 왕은 예루살렘 성에 갇힌 채 두 번째의 최후통첩을 적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고대하고 있었던 애굽의 구원병이 이제는 도달할 가망성이 전무합니다. 그런데 항복을 권유하는 산헤립 황제의 글이 논리가 정연합니다. 이미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받아놓은 하나님의 구원의 예언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살이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예언만 지니고 있으면 무엇 합니까? 예루살렘 성에 갇혀있는 히스기야 왕의 처지와 같이 항상 말씀은 멀리 있고 적의 칼날은 너무나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이 압도적으로 자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때에 히스기야의 발걸음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하는 은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적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는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서 그대로 읽어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립니다.
죽음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히스기야가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한번이지만 다윗 대왕은 평생에 너무나 많은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불리한 환경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강한 적들과 수도 없이 전투를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저 자신의 인생역정을 돌아봅니다. 다윗 왕만큼의 위기를 맛본 것은 아닙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잘못하면 왕국의 백성들이 모두 떼죽음을 당하게 되는 위치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적인 결단을 내리기가 더 쉽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의 경우는 어떠하십니까? 죽음의 위기 가운데에서도 구원과 영생을 바랄 수 있게 해주셨으니 그 은혜를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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