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5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1. 23:15

이사야 강해 제159(36:1-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16()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협박하다(36:1-10)

 

본문말씀은 주전 701년경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거의 점령한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가 선전관(宣傳官) 랍사게를 보내어 예루살렘 성에 틀어박혀 있는 히스기야 왕과 귀족들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단 10절로 적고 있는 본문은 그 내용이 세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당시의 상황(36:1-3) 둘째, 유다의 전략과 애굽의 군사력보다 월등한 앗수르의 힘(36:4-6) 셋째, 약소국 유다의 수호신에 불과한 여호와보다 강한 앗수르 제국(36:7-10) 등입니다. 이제부터 각 구절의 내용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히스기야 왕 14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b)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36:1);

(1)  히스기야 왕 14’(36:1a)이 언제인가에 대하여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 선민들이 기록하고 있는 그들의 역사책 열왕기하 제18장 제10절에 따르면, 히스기야 왕 제6년이 바로 앗수르에 의하여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게 되는 해인 주전 722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히스기야 왕 14년은 자연히 주전 714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의 즉위는 주전 728년이 됩니다.

(2)  둘째, 역사학자들의 고증에 따르게 되면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남조 유다 왕국을 재침하여 전국을 거의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에서 마지막 방어를 하고 있던 히스기야 왕을 압박하던 때는 주전 701년입니다. 그때가 히스기야 왕 14년이라면 그의 즉위는 주전 715년이 됩니다. 과연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요? 그 정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후자의 설을 따라 주전 701년경이라고 보고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3)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움켜쥐게 된 앗수르 제국은 서방으로 진출합니다. 그들의 군사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시리아와 가나안의 왕국들이 줄줄이 그 먹이가 되고 있습니다. 주전 733년에 시리아의 아람 왕국이 정벌을 당합니다(왕하16:9).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점령합니다(왕하17:6). 이어서 앗수르 황제의 군대가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때의 앗수르 황제가 누구이냐? 에 대하여 두 가지의 설이 있습니다; “사르곤(BC 722-705)이냐? 아니면 산헤립(BC 705-681)이냐?사르곤으로 보는 경우에는 주전 712년경입니다. 산헤렙으로 보는 경우에는 주전 701년경입니다.

(4)  왕하18:13’ 절에서 산헤립 왕이라고 못을 박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주전 701년경으로 보겠습니다(36:1a). 그때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감히 맞상대를 하지를 못하고 무조건 살려달라고 매어 달립니다. 그는 국가의 모든 금붙이와 은붙이를 모아서 전쟁배상금으로 바치고 겨우 산헤립의 군대를 달래어서 돌려보냅니다(왕하18:14-16). 그러나 산헤립 황제는 이에 만족하지를 않습니다.

(5)  앗수르의 군대는 여전히 군사요충지 라기스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왕하18:14). 그리고 산헤립 황제는 다르단을 총사령관으로 삼고 랍사리스와 랍사게를 부사령관으로 삼아서 예루살렘을 정복하라고 명령합니다(왕하18:17).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군대는 히스기야 왕의 화해제스처에 상관하지 않고 전국의 견고한 요새를 쳐부수고 46개의 주요 성읍들을 점령하고 재물을 약탈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36:1b). 드디어 화해정책을 포기한 히스기야 왕과 귀족들은 종주국 애굽에 원군을 청해놓고서 예루살렘 성에서 끈질기게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a) 앗수르 왕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b)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길에 서매”(36:2); 열왕기하 제18장 제17절에는 앗수르의 예루살렘 침공군의 총사령관 다르단과 부사령관 랍사리스와 랍사게의 이름을 모두 명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이사야는 오직 랍사게의 이름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36:2a).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랍사게가 선전관(宣傳官)의 임무를 겸하여 산헤립 황제의 말을 히스기야 왕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전하고 있는 산헤립 황제의 말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부터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성 동쪽에 시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예루살렘 주민들의 빨래터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36:2b). 랍사게는 그곳까지 진격한 군대를 잠시 쉬게 하고서 히스기야 왕에게 산헤립 황제의 말을 전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에서부터 외교책임자가 나오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사요충지 라기스에서 산헤립 황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왕하19:8-9). 유다 왕 히스기야의 긴급한 구원요청에 따라 애굽 제25왕조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가 직접 앗수르 산헤립 왕을 상대하고자 립나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산헤립은 당황하지 아니하고 애굽의 군대와 싸우는 한편 선전관 랍사게에게 빨리 예루살렘 성의 히스기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라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아 가니라”(36:3); 히스기야 왕의 명령을 받아 세 사람의 신하가 적장 랍사게를 만나고자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궁내대신 엘리아김이 외교팀의 수장입니다. 그는 힐기야 가문의 사람이라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유대지파 귀족 가운데 정계에서 명망이 높은 힐기야 가문의 사람이며 이미 대신의 반열에 올라 있는 신하입니다.

(2)  셉나가 지니고 있는 서기관이라는 관직은 다윗 왕조에서 왕명의 출납과 율법의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가 망한 다음에는 율법선생 가운데 산헤드린 대 공회에 출석하는 뛰어난 학자를 말하기도 합니다(5:34). 여기서는 일종의 고위직 관료이면서 동시에 학자입니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에서 학식과 경륜을 두루 갖춘 인물이 서기관 셉나라고 하겠습니다.

(3)  요아의 신분인 사관은 일종의 기록관입니다. 그렇지만 사관 가운데서 요아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윗 왕조에서 선견자로 이름이 높았던 아삽(대상6:39, 대하29:30)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아삽은 시편에 무려 12편의 시(시편50, 73-83)를 올리고 있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넷째로, “(4)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5)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36:4-5); ‘랍사게는 앗수르 제국의 관직의 명칭입니다. 문관과 무관을 겸하고 있는 관직입니다. 특히 왕명을 직접 받아서 전방사령관에게 전달하고 그 명령을 수행하는지 여부까지 파악하여 직접 황제에게 보고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승지와 장군을 겸하고 있는 묘한 감독관입니다. 앗수르의 황제는 자신의 손발과 같은 랍사게를 통하여 전방의 지휘체계를 읽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는 랍사게가 직접 황제의 명령을 전방사령관이 아니라 곧바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전하고자 하고 있습니다(36:4a). 그렇지만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일개 장군이며 산헤립 왕의 비서에 불과한 랍사게가 일국의 왕인 자신을 맞상대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명문귀족 출신인 궁내대신 엘리아김, 승지이며 율법학자인 서기관 셉나, 그리고 선견자 아삽의 후손인 기록관 요아를 대신 내어 보내어 산헤립 황제의 뜻을 알아오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36:3).

랍사게 장군을 통하여 히스기야 왕에게 말하고 있는 산헤립 황제의 첫 마디는 한 마디로 꾸중입니다; “싸울 책략도 전투를 직접 수행할 용기도 없는 히스기야 왕이 철옹성 예루살렘에 틀어박혀서 큰 소리만 치고 있으니 가소롭기가 그지 없구나. 불쌍한 백성들을 더 속이지 말고 막다른 현실을 인정하라. 독 안에 든 쥐와 같으니 더 이상 반항하지 말고 그만 성문을 열고 산헤립 황제 앞에 나와서 항복을 하라”(36:4b-5 의역)는 내용입니다.

다섯째로, “(a)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 도다. (b) 그것은 상한 갈대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c)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d)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36:6);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인 앗수르는 맞상대가 되고 있는 애굽 제국의 군사력과 그들의 제국주의정책에 관하여 훤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1)  애굽 제국을 정치적인 종주국으로 그리고 군사적인 후견국으로 믿고서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는(36:6a) 히스기야 왕은 큰 실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36:6d).

(2)  왜냐하면, 첫째로 애굽 제국은 군사적으로 앗수르 제국의 상대가 되지를 못한다. 그것은 강력한 앗수르의 정예병과 비교하면 마치 상한 갈대지팡이’(36:6b), 종이호랑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3)  둘째로, 애굽의 지원을 받게 되면 반드시 그 대가를 크게 지불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손톱에 든 가시와 같다(36:6c). 앞으로 유다 왕국의 자립과 독립을 크게 해치게 될 것이다.

여섯째로, “(a)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 하리라 마는, (b) 그는 그의 산당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c)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36:7); 앗수르 제국의 황제인 산헤립은 자신들의 신관과 종교에 비추어서 유다 왕국의 신 여호와가 열등한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힘 있는 신을 모시는 제단과 산당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호국신이 많을수록 왕국이 더 많은 보호를 받지 아니하겠느냐?

(2)  만약 여호와가 영향력이 크고 넓은 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신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히스기야 왕으로 하여금 종교개혁을 통하여 왕국 내에 즐비한 제단과 산당을 정비하도록 만들지 아니했을 것이다(36:7b).

(3)  히스기야 왕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내의 제단에서만 여호와에게 제사를 드리고 섬기라고 조치한 것을 보면 여호와는 그곳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종의 토착신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겠는가?(36:7c).

(4)  그러므로 힘이 약하고 그 영향력 또한 좁은 땅에 한정이 되어 있는 토착신 여호와의 능력을 의지하여 넓은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앗수르에게 대항을 하는 것은 실로 잘못된 신앙인 것이다(36:7a).

일곱째로, “(8)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내가 네게 말 2,000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히 내지 못하리라. (9) 그런즉 네가 어찌 내 주의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총독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있으랴? 어찌 애굽을 믿고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36:8-9); 짧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앗수르 황제는 그 동안 유다 왕국을 정복하기 위하여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는 기마병의 수가 2,000명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군마의 수는 그보다 훨씬 적다고 놀리고 있습니다”(36:8 의역). 앗수르 제국에서는 황제를 대신하여 속주(屬州)를 다스리고 있는 일개 총독이라고 하더라도 2,000필 이상의 기마대를 지휘하고 있으므로 예루살렘 성에 갇혀 있는 히스기야 왕은 아예 더 이상 항거할 생각을 하지 말고 깨끗하게 항복을 하라는 권유입니다(36:9a).

(2)  괜히 애굽의 원군을 믿고서 계속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계산착오라는 지적입니다(36:9b). 그 이유는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의 구원병을 산헤립이 립나에서 잘 막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왕하19:9). 그들이 앗수르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서 히스기야 왕을 구출해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여덟째로,내가 이제 올라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36:10);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무신론자인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의 교만함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감히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서 유다 왕국을 치러왔다고 거짓말을 함부로 내뱉고 있습니다(36:10). 이제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산헤립을 처벌해달라고 정확하고 정직하게 고하기만 하면 그 기도를 빌미로 하여 앗수르의 군대를 징벌할 것입니다(왕하19:14-19, 34-35). 한 마디로, 산헤립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이 선전관 랍사게를 통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전달하고 있는 말씀, 곧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통첩의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1)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내의 군마의 수와 기병의 수가 실로 빈약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  그리고 히스기야 왕이 기대하고 있는 애굽의 구원병도 예루살렘 성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3)  그 말은 사실입니다.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이 도우러 오는 도중에 그만 길이 막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변 길로 통하는 요새지 립나에서 기다리고 있던 산헤립 왕의 중앙군이 효과적으로 애굽의 군대를 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왕하19:9).

(4)  그렇지만 산헤립 황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참담한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히 여호와의 존재를 예루살렘 성전에 갇혀 있는 토착신 정도로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가소롭게도 앗수르 제국 내에 존재하고 있는 많은 신들의 위력을 그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창조주임을 전혀 알지를 못하고서 자국의 우상의 수가 많기 때문에 토착신 여호와 정도는 가볍게 취급할 수가 있다고 하는 자랑입니다.

(5)  그러므로 그 속사정을 정확하고도 정직하게 하나님께 상달해주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가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때를 기다려서 산헤립의 원정군을 모조리 쳐버리실 것입니다. 비록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 성내에 갇혀있는 소위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형편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늘로 통하는 기도의 문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6)  따라서 본문에서 세 가지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우상으로 또는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는 잘못을 결코 범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둘째, 제국의 힘을 믿고서 하나님신앙을 지닌 성도들의 나라를 정복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쳐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제국이 깨어지는 결과를 자초하게 됩니다. 셋째, 사면초가, 독 안에 든 신세가 되었을 그때가 바로 하늘을 쳐다보고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입니다”.

(7)  요컨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정직하게 기도할 때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가 되어서 살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성도의 특권을 풍성하게 누리시는 능력 있는 신앙인들이 모두 되시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