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60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2. 22:44

이사야 강해 제160(36: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17()

 

아람 방언과 유다 방언이 상징하고 있는 것들(36:11-13)

 

첫째로, 본문에서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앗수르의 선전관 랍사게가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행동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랍사게의 행동에 대하여 외교적으로 크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항은 두 가지입니다;

(1)  첫째, 랍사게는 앗수르 황제 산헤립의 말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전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36:4). 그러므로 조용히 히스기야 왕을 예방하고서 그 말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신하 3명을 성밖으로 불러내어서 그들에게 큰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36:3).

(2)  둘째, 그 정도의 무례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안의 유다 백성들이 모두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함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유다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유다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36:11b). 그 내용은 히스기야 왕의 말에 속지를 말고 성문을 열고 항복을 하면 잘 살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입니다(36:13-17).

둘째로, 랍사게의 무례한 행동을 보다 못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당장 유다의 말로 성안의 백성들에게 외치는 행위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36:11). 그러나 랍사게의 의도는 본래 성안의 유다 백성들을 선동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그만 두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36:13).

어쩔 수 없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유다의 말이 아니라 아람어로 말하라고 요청합니다(36:11a). 왜냐하면, 일반백성들은 자국어인 유다의 말은 알지만 외국어인 아람어는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요구마저도 랍사게는 묵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본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나 신하들에게 전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예루살렘 성안의 백성들에게 날리는 삐라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6:12 의역). 이상의 내용은 약소국이 겪고 있는 비애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로, 특히 본문에는 예루살렘 성에 틀어박혀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다윗 왕조의 참담한 형편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랍사게가 이르되, 내 주(산헤립 황제)께서 이 일을 네 주(히스기야 왕)와 네(유다의 신하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하더라”(36:12). 성이 오래 포위를 당하여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끊어진 상태임을 알고서 랍사게가 이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본문이 시사해주고 있는 내용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앗수르 언어와 시리아의 아람 언어, 그리고 가나안의 유다 언어가 서로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교를 담당하는 자들이 그 세 가지 언어를 전부 습득하고 있습니다.

(1)  예를 들면 본문에서 랍사게는 앗수르 황제 산헤립의 총애를 받고 있는 신하입니다. 그는 문무에 밝은 자입니다. 전장에서 장수의 역할도 하면서 공부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시리아의 말인 아람어도 알고 있습니다(36:11). 만약 랍사게가 앗수르 말밖에 모른다고 하면 그에게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아람어로 말해달라고 요청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랍사게는 앗수르 사람이지만 외국어에 능통합니다. 아람어와 유다 말을 전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리고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인 궁내대신 엘리아김, 서기관 셉나, 사관 요아 역시 이웃나라 아람의 말을 익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 메소포타미아와 유다 사이의 외교관계에 있어서 그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시리아의 아람어를 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섯째로, 그렇다면 언제부터 앗수르, 아람, 유다 등의 언어가 서로 알아 듣지 못할 정도로 분화가 되었을까요?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세기를 보면 셈의 아들의 이름이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 그리고 아람으로 되어 있습니다(10:22). 그리고 그들로부터 (황인종의 여러) 족속과 언어와 지역과 나라가 갈라진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10:31). 그런데 획기적으로 그들의 방언이 마치 외국어처럼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는 계기는 바벨탑붕괴사건이 발생하고 셈족이 해방이 되어 온 세상으로 흩어진 이후부터입니다(11:7-9). 하나님께서 그들이 사는 지역을 멀리 떨어지게 하시고 그들의 언어를 서로 알아듣지 못하도록 혼잡하게 만들어버리셨기 때문입니다(11:9).

(2)  유다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은 조상 아르박삿이 일찍 터를 잡았던 갈대아 인의 우르지역입니다(11:31). 그곳은 그 옛날 니므롯의 제국이 시작이 된 시날 땅 바벨지역입니다(10:10). 곧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역입니다.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향을 떠나서 북부 시리아 하란을 거쳐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12:1-5, 7:2-4). 그는 유프라테스 강을 떠나서 함족의 땅으로 들어왔기에 히브리인으로 불리게 되고(14:13) 그의 말은 그 후 히브리어로 분화가 되게 됩니다(31:47).

(3)  아브라함의 아우 나홀은 아버지 데라의 재산을 상속하여 하란 땅에 나홀의 성을 건설했으며(24:10) 그 유업을 손자 라반이 계승하고 있습니다(29:4-10). 라반의 누이가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이며(24:47, 67) 두 딸이 야곱의 아내인 레아와 라헬입니다(29:21-30). 그러므로 아람어는 이스라엘 조상들의 친척의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야곱과 그의 장인 라반이 갈라질 때에 그 경계 돌 무더기를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서로 달리 부르고 있습니다; 아람방언으로는 여갈사하두다’, 그리고 히브리방언으로는 갈르엣입니다(31:47). 그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이미 방언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아람방언과 유다 방언이 본문에서 외교적 마찰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오래 흐르게 되니 지방 말에 불과했던 방언이 이제는 서로 소통을 할 수가 없는 외국어로 변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남북으로 갈라져서 70년의 세월을 지내오고 있는 한민족들도 빨리 통일을 해야만 합니다. 자꾸 늦어지게 되면 방언이 외국어가 되어버리는 비극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신앙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 세상에 전해야만 하는 성도들은 가능하면 여러 가지 언어를 습득하여 선교에 만전을 기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 일을 도와주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와 계신다는 사실을(2:1-4) 기억하면서 기도로써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능력을 간구하는 자들에게 이 시간 충만한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