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5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1. 23:13

이사야 강해 제158(35:7-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15(주일)

 

지옥과 같은 세상이 에덴동산, 새 예루살렘 성과 같이 회복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35:7-10)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이사야는 제34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34:16). 세 가지 사항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예언의 말씀 가운데 비약이 있다면 그 빠진 부분에 대해서 반드시 성경말씀 가운데 설명을 해주는 대목이 있다는 것입니다(34:16a).

(2)  비유나 상징이 어려워서 해석이 잘 안 되는 경우에는 성경말씀에서 그 짝을 찾아서 비교해보면 그 의미가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34:16b).

(3)  그와 같은 말씀풀이가 가능해지는 이유는 첫째, 모든 예언과 계시의 말씀이 전부 유일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34:16c). 둘째, 하나님의 영이 선지자들에게 감동을 주시고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아 그 지체를 사용하여 기록한 것입니다(34:16d). 따라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그 뜻이 일맥상통하며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 같이 조직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본문의 내용을 검토하게 되면 그 해석에 있어서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예언의 말씀과 짝을 이루고 있는 말씀 그리고 빠진 부분을 보완해주고 있는 말씀들이 앞장 제33장과 제34장에 풍성하게 이미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은 메시아를 배척하게 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지옥과 같은 삶에 대하여 이사야가 이미 제33장과 제34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내용과 정반대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를 배척했던 그들이 마침내 회개를 하고 메시아를 자신들의 유일한 구원주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과 환경이 변모하였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본문이 구성이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이 될 것이며, (b)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c)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35:7); 지옥과 같은 땅이 놀랍게 변화하는 모습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이 될 것이며”(35:7a); 일반적으로 사막은 낮 시간대에는 무척 뜨겁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낮 시간대만을 의미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뜨거운 사막은 밤이 되어도 무척 뜨거운 곳입니다. 곧 꺼지지 아니하는 불이 붙어 있는 지옥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4:9-10, 16:24). 그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연못이나 호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 호수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등장하고 있는 바로 그 큰 호수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33:21). 따라서 이사야는 지옥과 같은 세상이 천국과 같은 세상으로 바뀌는 기적이 장차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기적을 창출할 수가 있을까요? 그의 예언이 다음 단락에서 그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2)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35:7b); 메마른 땅과 같은 인생이 생명의 통로가 될 수 있는 복을 얻어야만 합니다. 그 방법은 생명의 창조주를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1)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1-2),

2)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b).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인도함을 받아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하면 그 말씀의 인도함을 실수 없이 받을 수가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이 역사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생애를 쫓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3)    그렇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게 되면 생명의 창조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온 세상에 전해줄 수 있는 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메마른 인생이 복의 원천에 푹 잠겨 있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창조주의 생명의 능력으로 지옥과 같이 이 땅이 에덴동산으로 변화가 되는 즐거움입니다.

4)    훗날 사도 요한은 좀 다른 방법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생수의 강물이 바로 생명수입니다(4:14, 22:1). 그 생명수를 마시고 강변의 비옥한 토양에서 생명나무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 나무의 열매가 영생을 주며 그 잎사귀가 만국을 치유하고 있습니다(22:2). 조금 더 풀이를 해봅니다;

5)    메마른 땅이 기름진 땅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창조주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메마른 심정이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기름진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하면 그 사회와 환경도 생명을 살리고 돌볼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6)    메시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성도가 남은 평생을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리하면 그 과정 중에 하나님나라가 확장이 되어나갑니다.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 곧 복의 근원과 통로가 될 수 있는 축복이(12:2-3) 성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3)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35:7c); 승냥이는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잡아 먹고서 생존을 하는 짐승입니다. 그러므로 승냥이가 살고 있는 곳은 생명을 살리고 돌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메시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그 장소가 변화하게 됩니다. 승냥이가 살고 있던 지역이 풀과 갈대와 부들’(갈대와 비슷하지만 키가 좀 작고 부드러운 식물)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식물은 가축의 먹이가 됩니다(41:2). 그러면 사람들이 목축을 하면서 풍요를 누리고 삶의 기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a)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b)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c)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d)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35:8); 이사야는 하나님신앙이 회복되면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교류가 증진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뜻을 대로가 회복이 되는 것으로(19:23), 그러하지 못한 경우를 대로가 끊긴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33:8). 그 길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복음의 대로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사야가 거룩한 길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35:8a).

거룩한 길과 관련하여 이사야의 예언은 어느 사이에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그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자격에 대하여 훗날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21:26-27).

이사야의 본문과 대조를 해보게 되면 요한계시록의 의미가 다음과 같이 잘 드러나게 됩니다;

(1)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35:8b);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속된 것을 버리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2)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35:8c);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피가 바로 자신을 위한 사죄의 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인 성도들을 말합니다. 물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가는 자가 생명책에 그 이름을 올리고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3)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35:8d);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긴 자들이 가증한 사람들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희생을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무릅쓰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가는 그 길을 쫓아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가증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우상을 섬기고자 합니다;

1)    사람이 만든 우상은 마치 알라딘의 램프요정 지니와 같아서 주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도구로서의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상이 과연 지니처럼 마법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데 우상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2)    그 점에 대한 이사야의 날카로운 지적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 도다”(44:17). 피조물인 사람이 만든 조각품에 불과한데 그 우상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겠습니까?

3)    그래서 이사야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 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44:19-20). 능력도 없는 가증한 물건을 만들어 구원주라고 섬기고 있는 이유는 쉽게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허탄한 마음에 미혹이 된 결과라는 지적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우매한 자의 잘못된 처사인 것입니다.

셋째로, “(a)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b)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35:9); 사도 베드로의 표현을 따르면, 성도를 집어 삼키려고 하는 사자가 사탄과 악한 영들입니다(벧전5:8). 사도 요한은 그들의 사주를 받고서 성도들을 핍박하는 권력자들을 짐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13:4-8). 그와 같은 사탄과 악한 영들 그리고 짐승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35:9a). 그러면 누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는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5:9b).

넷째로, “(a) 여호와의 속량(贖良, 천민의 신세를 면하고 양민이 되는 것)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b)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喜樂, 기쁨과 즐거움)띠고, (c) 기쁨과 즐거움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35:10); 흔히 대 선지서 이사야를 작은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뿐만 아니라 메시아의 구원사역의 내용과 하나님의 영의 강림과 역사하심의 내용이 예언으로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그 특징을 특히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의 속량(贖良, 천민의 신세를 면하고 양민이 되는 것)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35:10a); 구원의 계획이 본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음을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하려는 계획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우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그 은혜로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하나님께 돌아올 수가 있게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2)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喜樂, 기쁨과 즐거움)띠고”(35:10b);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며 앙망하고 있던 사람들이 시온을 바라보고서 큰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11:13). 그것은 영생을 주는 구원이 그 시온에서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메시아의 오심과 대속의 죽으심이 그 시온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인류의 역사 가운데 성취하시는 그 장소가 훗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입니다(27:33). 그리고 그 위 언덕에 있는 바위굴의 무덤입니다(27:60). 그 무덤에서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20:16-29, 고전15:4). 구원성취의 기쁨과 부활의 즐거움이 함께 하고 있는 그 시온을 바라보고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곧 구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3)  기쁨과 즐거움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35:10c); 메시아를 남은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됨으로써 성도들이 더 큰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24:49, 1:8, 2:1-4). 그때부터 남은 인생 가운데 구원의 기쁨과 영생의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처럼 부활을 얻을 수 있다는 새 언약을 믿고서 살아가게 됩니다(3:10-11).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성도들은 죽음의 슬픔과 죄의식의 탄식을 물리치고서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일꾼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8:34-39).

결론적으로, 본문의 내용은 한 마디로 시온을 바라보는 자 곧 장차 오실 메시아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반드시 그 인생 가운데 임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메시아의 대속의 은혜를 바라보는 자는 더 이상 지옥과 같은 세상의 아귀다툼 가운데 살아가지 아니해도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이 세상을 에덴동산과 같은 하나님나라로 변화시켜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본문의 이사야의 예언은 이미 기독교의 핵심교리를 상당히 진술하고 있습니다. 선민사상에 치우쳐 있는 유대교의 사회에서 이사야가 기독교사상을 많이 시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참고 삼아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 하나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유대교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종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늘 바깥에 보좌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오로지 그들의 예루살렘 성전에만 임재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방인을 위해서는 결코 임재를 하거나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아니하십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이 율법을 준수하고 있는 동안에는 항상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자신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며 시온의 영광을 떨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회만 주어지면 칼로써 세상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제국을 다시 만들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하는 사상입니다. 그와 같은 유일신 종교가 이 세상에 더러 있습니다.

(3)  그런데 기독교는 그 정복의 칼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대속의 십자가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종교입니다. , 칼로써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26:52) 그리스도의 지적이 진리임을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감으로써(16:24)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죄인인 나 자신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처럼 이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영생의 자리에 함께 있게 해달라고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법론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합치되는 것이기에 부활사건이 시온에서 발생을 했습니다(1:16-17). 따라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게 되면 이 세상이 하나님나라로 변화하는 기적이 마치 부활의 기적처럼 이 땅에 발생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때가 빨리 임하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간구하고자 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