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제 9과(5:1-8)(손진길 작성)
|OBS18-9|
Q1.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욱 사랑하므로”(2:17)에 이어서 “심히 사랑스러우므로”(5:2) 왕이 에스더에게 특혜를 베푼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감정의 흐름과 마음의 자세를 마치 자신의 눈으로 본 것처럼 자신있게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Ø 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분은 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② 헌신된 자,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지도자가 나섰을 때에 ③ 형통의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인간 세상의 의사 결정권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주저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심을 잘 알고 있기에 저자가 이와 같이 자신있게 마치 눈으로 본듯이 기록하고 있는 것임.
Ø 이와 같은 믿음의 눈, 영적 깨달음을 가지고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게 되면 모순 투성이로 보이는 역사적 사실과 기록의 불일치 가운데에서도 필요한 교훈을 많이 발견해낼 수 있는데 이것이 지혜자들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을 찾는 지혜’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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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에스더서의 역사적 배경을 둘러싸고서도 ① 고대 역사서의 기록과 ② 성경상의 기록 나아가서 ③ 오늘 날 역사학자들의 결론 등이 상당 부분 서로 맞지 아니하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Ø 첫째로, 에스더를 황후로 책봉한 페르샤 황제의 이름이 서로 일치되지 아니하고 있는데 ① 사도들의 시대인 AD1세기의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크세르크세스(Xerxes)가 죽자 그의 아들 고레스(Cyrus)가 왕이 되었는데 그의 헬라 이름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이며 수산궁에서 유대 여인 에스더를 왕후로 삼았다”(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제2권, 서울;생명의말씀사, 2002, pp.37-40)고 기록하고 있으며 ② 성경은 아하수에로 왕이라고 하며(에1:1-2:18) ③ 오늘 날 역사학자들은 “크세르크세스 왕이 바로 아하수에로 왕”이라고 보고있는 것임.
Ø 둘째로, 성경은 모르드개가 “삼촌인 아비하일의 딸 에스더를 자기 딸같이 양육하였다”(2:7, 15)고 밝히고 있어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사촌 오라비가 되고 있는데 비해서 요세푸스는 “에스더의 삼촌이 바로 모르드개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 오늘 날 역사학자들은 나이 차이가 너무 큰 점으로 미루어 숙질간으로 보는 견해가 많음.
Ø 셋째로, 모르드개의 등장도 성경은 “유다 왕 여고냐와 함께 바벨론 포로가 된 자”(에2:6, BC597년경)로 되어 있으나 요세푸스는 스룹바벨(고레스 왕 및 다리오 왕 시대, 그의 책 p.22&28)을 도운 바 있는 유대 인 지도자 모르드개와(스2:2) 에스더의 삼촌인 모르드개는 다른 인물로 취급하고 있슴. 그런데 오늘 날의 역사학자들은 이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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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성경을 공부하는 자는 이와 같은 모순속에서 무엇을 발견해내는 것인가?
Ø 성경의 기록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찾아낸 역사적 추론 그리고 고대 역사학자들의 기록과 맞지 아니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대목이 바로 깊은 묵상을 필요로 하는 부문인 것임.
Ø 그와 같이 기록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류앞에 던져 놓았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하고 있는 것임. 예컨대, ① 모르드개의 활동 기간을 약 120년으로 길게 기록하고 있다면 그 기간을 이방 땅에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같은 지도자를 고대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기간으로 새겨볼 수도 있으며 나아가서 모세의 사명과 일생에 비추어 새로운 유대 인 지도자 모르드개의(4:16, 10:3) 자격과 역할을 한번 살펴볼 수도 있을 것임. ② 스룹바벨을 유대 인 총독으로 임명한 페르샤 왕의 이름 고레스,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유대 인 지도자로 임명한 아닥사스다의 부친인 크세르크세스 왕의 이름, 이 모두가 성경이 기록한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에 들어 있다면 이는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를 공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남은 자를 돌보시기 위하여 고레스 왕 시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그들의 상전의 마음을 움직여 오고 계시는가를 함께 깨달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
Ø 한 마디로, 성경의 기록은 조직적 구문 해석이나 주석적 글자 해석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그 의미적 해석과 실생활에의 적용단계에까지 나아갈 때 그 숨겨진 기록의 생명력이 하나의 영감으로 또한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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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금홀을 내어 밀어 그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이유가 “심히 사랑스러우므로”(5:2)인데 이와 같은 이유가 복음적 구원 선포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시초는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후 창조한 세상을 보시니 심히 좋았더라”(창1”31)인 것임.
Ø 인간의 눈으로 자연을 보거나 다른 인간을 볼 때에는 그렇게 사랑스럽지도 못하고 때로는 불만과 불평의 대상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사랑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인 것임.
Ø 그러므로 인간의 눈으로서만 비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의인의 간구이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원수갚는 것까지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제자된 도리인 것임.
Ø 에로스적 사랑인 아하수에로 왕의 에스더 사랑의 장면도 이와 같이 한 차원 높여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인간 사랑의 모습을 발견해낼 수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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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자신의 민족을 구원할려는 에스더가 왕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Ø 당장 백성을 죽음에서 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왕과 하만을 모시는 잔치 자리에 참석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임(5:4-5).
Ø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5:6) 거듭 에스더의 소원이 무엇인지 묻는 왕의 질문에 대하여 에스더는 내일 다시 잔치를 열고서 그 때 답변을 드리겠다고(5:8) 언급하고 있슴.
Ø 여기서 왕을 모신 잔치 자리에 하만과 에스더가 동석하고 있으며 세 사람이 자리를 함께해야만 하는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의미심장함. 이 장면은 ① 하나님앞에 하나님 아들들과 사단이 자리잡고 있는(욥1:6, 2:1) 욥기의 기록과 흡사하며 ② 이슈 역시 의인(하나님 경외자)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이를 사전 봉쇄하려는 사단의 음모가 맞물려 있는 것임(욥1:8-12, 2:3-6).
Ø 이와 같이 중차대한 문제이기에 에스더는 왕의 확고한 선심을(나라 절반이라도 양보해 주겠다는 최대의 호의임, 5:3,6, 7:2) 세 차례나 확인하고 있으며 그 자리에 반드시 원수의 수괴인 하만이 동석할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는 것임(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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