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4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7. 28. 07:38

이사야 강해 제149(33:7-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6()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고 있는 세상나라들의 권력지상주의의 모습(33:7-12)

 

이사야는 먼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강대국들의 논리와 횡포에 대하여 적나라하게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33:7-8). 그 틈바구니에서 페니키아, 유다, 아람, 이스라엘 등 작은 왕국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3:7, 9).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나라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직접 역사에 개입하실 것이라는 계시의 말씀입니다(33:10-12).

그 구체적인 이사야 예언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하여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그 깊은 의미를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보라, (b) 그들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c)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33:7); 여기서 이사야가 보라”(33:7a)는 것은 영적인 눈을 떠서 미래를 한번 전망해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조국 유다 왕국이 임박한 강대국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하여 전쟁과 화친이라는 두 가지 방책을 모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33:7bc). 이사야 당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두 차례나 침략하고 있는 앗수르와의 전쟁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가 처음 쳐들어 왔을 때에는 히스기야 왕이 화친책을 사용했습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많은 성읍이 점령을 당하자 히스기야 왕은 대항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앗수르 황제에게 싹싹 빌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궁과 성전의 금은을 모두 끌어 모아 전쟁배상금으로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바침으로써 겨우 화친을 맺고 있습니다”(왕하18:13-16 요약).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평화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 해 후에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가 아예 유다 왕국을 완전히 집어삼키고자 재침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33:7c)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앗수르가 다시 침략을 해오자 히스기야 왕은 이제 강대국과의 화친책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됩니다. 그래서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종주국인 애굽 제국에 재빨리 구원병을 청하고 있습니다(31:1). 당시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가 유다 왕국을 구하기 위하여 앗수르와 맞서게 됩니다(왕하19:8-9). 하지만 별 소용이 없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는 성공적으로 애굽의 구원병을 막아내는 한편 예루살렘 성에 갇힌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을 더욱 압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왕하19:10-13). 그러므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33:7b).

둘째로, “(a)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어지며, (b)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c) 성읍들을 멸시하며, (d) 사람을 생각하지 아니하며”(33:8);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 앗수르 제국이 중동 전체의 패권을 차지하고자 가나안과 애굽으로 서진(西進)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주전 733년에 시리아의 아람 왕국을 점령합니다(왕하16:9-10). 그리고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합니다(왕하18:9-12). 이제는 페니키아와 블레셋 그리고 남조 유다 왕국을 굴복시키고 애굽으로 쳐들어가면 됩니다. 장차 중동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가 될까요?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앗수르 제국이 서진에 나선 이후부터 국제간의 교류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앗수르에서 유다 왕국으로 오는 대로가 끊어집니다. 그리고 앗수르에서 애굽으로 가는 대로도 끊어져버립니다(19:23과는 반대되는 현상임). 물자의 교통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교류마저 막혀버리고 만 것입니다(33:8a).

(2)  주전 714년경 앗수르의 군대가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왔을 때 히스기야 왕이 사력을 다하여 화친에 나섰습니다(왕하18:13-14). 나라의 금붙이와 은붙이를 총동원하여 겨우 앗수르 군대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가까스로 화친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러나 13년 후에 앗수르가 재침을 하고 있습니다(왕하18:17). 전체의 패권을 움켜쥐고자 하는 강대국의 욕심 앞에 약소국과의 불가침조약이라고 하는 것은 한갓 종이쪽지에 불과할 따름입니다(33:8b).

(3)  패권을 두고 싸우고 있는 강대국 황제의 논리가 무엇인지를 이사야가 정확하게 예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군사력이 약한 나라의 성읍은 강대국의 먹이에 불과합니다(33:8c). 그리고 약소국의 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위력이 강대국의 군마(軍馬)의 위력보다도 약한 것입니다(36:19-20). 자신의 나라와 성읍을 보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시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다의 성읍을 멸시하고 있는 앗수르 제국 황제의 논리이며 무신론(無神論)입니다. 요컨대, 앗수르의 침입에 벌벌 떨고 있는 유다 왕국의 호국신(護國神) 여호와도 마찬가지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36:18).

2)    황제의 논리는 철저하게 지배와 복종이라는 권력게임입니다. 사람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황제의 지배를 받으며 그 시키는 일에 복종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람이란 그 가치가 노예에 불과합니다(33:8d). 창조주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준 인간을 노예로 취급하고 있으므로 역사적으로 출애굽 당시의 애굽처럼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받을 대상입니다. 본문 이사야의 예언은 이미 그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a) 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b) 레바논은 부끄러워하고 마르며, (c) 샤론은 사막과 같고, (d) 바산갈멜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도다”(33:9); 그와 같이 황제의 논리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그 장래가 어떻게 될까요? 온 세상은 패권을 서로 장악하려고 하는 강대국들의 전쟁으로 물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영원한 패권국이 없습니다. 영원한 인간의 권력이 없듯이 당연히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패권국과 도전국사이의 전쟁, 그리고 강대국들 사이의 서열을 정하는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선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두가 쇠락과 멸망의 미래를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리는 인간들 때문에 땅이 슬퍼하고 있습니다(33:9a).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받아 들이게 되면 땅도 쇠잔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4:10-12, 6:13).

(2)  지중해무역으로 부국(富國)이 된 레바논의 페니키아 왕국도 부끄러운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33:9b). 군사력이 약한 채 부국임을 자랑하고 있으니 강대국의 좋은 먹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욥바에서 갈멜 산맥에 이르는 샤론의 평야는 해안지역이며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지중해로 뻗어가는 전진기지입니다(대상5:16, 9:35). 그곳이 사막화가 되고 말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33:9c). 그 뜻은 장차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상실이 되고 말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제사장나라의 장래가 암담해지는 것입니다.

(4)  바산과 갈멜도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33:9d). 여기서 바산은 아람 왕국에 속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갈멜은 북조 이스라엘에 있는 산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아람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a)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제 일어나며, (b)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c) 내가 이제 지극히 높아지리니”(33:10); 패권을 서로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 틈바구니에서 작은 나라들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의 촛불)가 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으로 전락한 제사장나라를 우습게 여기고 침략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한갓 지역국가의 수호신이며 우상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패권국가도 자주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패권국이 바뀌더라도 변하지 아니하고 있는 철칙(鐵則)이 하나 있습니다. 군사력으로 모든 국제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영원한 제국이 없으며 서로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의 역사만이 되풀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무신론적인 세상에서 황제의 논리가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는 막후가 아니라 직접 인간의 역사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33:10a). 이사야는 몸을 일으키시는 여호와의 모습을 다음과 같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1)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33:10b); 황제의 논리 위에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온 천하에 알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높으신 능력 앞에 강대국이 약소국을 함부로 침략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강자가 약자를 마음대로 지배하던 시대도 종말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2)  내가 이제 지극히 높아지리니”(33:10c);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여기고 있던 세상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출현 앞에 숨을 죽이게 됩니다. 유일하신 창조주, 모든 인류의 영혼까지 소멸시킬 수 있는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지 아니할 피조물이 없습니다(10:28). 참고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창조하시기 전에(65:17-25) 마지막으로 만민의 회개를 종용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가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나실 것이라고 이사야가 벌써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7:14, 9:6, 11:1-9).

다섯째로, “(a) 너희를 잉태하고 을 해산할 것이며, (b) 너희의 호흡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33:11); 인간역사의 존립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요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호흡잉태입니다. 사람은 호흡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여자가 잉태를 할 수 있어야 자식을 낳아서 다음 대를 이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세상을 징계하시면 그 두 가지 요소가 사라질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여인의 태를 닫아버리시고(33:11a) 사람들이 호흡할 수 있는 공기를 죽음의 불로 태워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우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인류의 역사가 다음과 같이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1)  오늘날 생물학적인 신종무기가 개발일로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 사람들의 생산능력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일종의 유전자조작입니다. 세균무기, 화학무기에 이어서 사람의 DNA에 작용하여 정자의 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무기가 생산이 되게 되면 한 마디로, “겨를 잉태하고 짚을 생산하는”(33:11a) 종말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 89세의 사라를 제멋대로 후궁으로 데리고 간 블레셋의 황제인 그랄 왕을 혼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왕궁여인들의 태를 모두 닫아버리신 적이 있습니다(20:18). 그와 흡사한 두려운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2)  대량학살무기인 핵무기의 두려운 점은 핵폭발로 인하여 반경 수십km이내의 지역에 강력한 빛과 열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의 불기운입니다. 주변의 공기가 모두 타버려서 사람들과 동물들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그 모습을 이사야가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호흡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33:11b).

여섯째로, “(a)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b) 잘라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33:12); 현대인류의 과학이 만들어내고 있는 핵무기의 위력은 지구상의 인류를 완전히 몰살시킬 수 있는 수준이라고 벌써 1960년대 중반부터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려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말심판은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모든 하늘과 땅이 다음과 같이 녹아지고 해체가 되는 수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그와 같은 사실을 이사야가 사도 베드로보다 700년 먼저 더욱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33:12a); 사람들의 육신이 먼저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익어버릴 것입니다. 그 규모가 전세계적입니다. 그래서 마치 인종청소의 경우와 같이 여러 민족들이 엄청난 화력 가운데 말살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2)  잘라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33:12b); 인류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도 그 피해가 막심합니다. 뜨거운 불기운에 삼라만상이 마치 가시나무와 같이 타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의 세계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새로운 땅과 하늘을 창조하시지 아니하면 안 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인류에게 묻고 있습니다; “황제의 논리로 강자가 힘으로 약자를 지배하는 세상을 계속 영위할 것입니까?그 결과는 뻔합니다; 첫째, 패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강대국들이 서로 싸우다가 결국은 모두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약소국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마치 고래싸움에 끼인 새우처럼 그 등이 터져나가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을 그냥 두고 보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심판의 하나님께서 그 몸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긍휼의 하나님께서 마지막 종말심판을 행하시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한번 더 제공하시는데 그것이 이사야가 이미 제7, 9, 11장에서 예언한 바 있는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아니하는 민족과 개인들에게 임할 종말심판의 내용을 이사야가 차제에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진노로 모든 육체와 삼라만상이 모두 불타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종말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동족들에게 부디 메시아를 영접하고 구원과 영생을 받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세월을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들만이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구원의 은혜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