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50강(사33:13-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1월 7일(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4단계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사33:13-16)
본문에서 이사야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단계를 네 가지로 정리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창조주께서 하신 일과 그 권능을 깨닫는 것입니다(사33:13). 둘째 단계는 창조주의 심판이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부활한 다음에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사33:14). 셋째 단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사33:15). 넷째 단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처와 양식과 생수로 만족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사33:16).
이제부터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기 위하여 각 구절을 살펴보면서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깊은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너희 먼 데에 있는 자들아, (b) 내가 행한 일을 들으라. (c) 너희 가까이에 있는 자들아, (d) 나의 권능을 알라”(사33:13);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사1:1, 2:1, 6:8-9). 그러므로 이사야가 보기에 먼 데에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사33:13a). 그리고 그의 가까이에 있는 자들은 동족들인 선민들입니다(사33:13c). 그들에게 이사야는 구원을 받기 위한 첫 단계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는 선민들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전하지 아니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선민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통적인 유대교의 관념입니다.
(2) 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는 무엇보다도 이방인들이 구원으로 나아오기 위해서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지금도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듣고 깨달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사33:13b). 환언하자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선교가 가장 필요하다는 견해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메시아의 지상명령입니다(마28:18-20, 행1:8).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3:29),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3-15).
(3) 하나님께서는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모두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이며 구원의 대상이라고 여기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확고하신 하나님의 뜻이 구약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선지서가 ‘요나’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와 요엘이 메시아와 성령님의 오심에 관하여 많이 예언하고 있겠습니다.
(4) 선민들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천하만물과 만민을 모두 창조하신 하나님을 단지 선민들만의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이사야는 자신 가까이에 있는 그의 동족 유대인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크신 권세와 능력에 대하여 알아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사33:13cd);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는 권세를 지니고 계십니다.
2)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3) 선민들이 그 두 가지 사실을 진리로 인정하는 것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로, “(a)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b)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c)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d)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사33:14); 선민들인 ‘시온의 죄인들’(사33:14a)과 이방인들인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사33:14b)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1)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두 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게 되면 또 심판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제멋대로 살다가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고 하는 생각을 접고서 영생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두 번째의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2) 두 가지 종류의 심판에 대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첫째가 이 세상에 임하는 역사적인 심판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이사야는 여기서 ‘삼키는 불’(사33:14c)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둘째가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처해지는 종말심판입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게 되면 죽은 자까지 부활시켜서 마지막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요5:25-29). 그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산 자는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계20:14-15). 그것을 이사야는 본문에서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는 것”(사33:14d)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a)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b) 정직히 말하는 자, (c)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d)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e)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f)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사33:15), “(a)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사33:16a); 이사야는 ‘높은 곳에 거할 수 있는’(사33:16a) 방법,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이 대목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고스란히 반영이 되어 있는 생활수칙입니다. 성도들이 그 생활수칙을 지키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때에 구원을 확보할 수가 있다는 예언입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성도의 삶의 방법론을 알기 쉽게 6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사33:15a); 인간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이 ‘정의’(justice)입니다. 그것은 국가의 법률에 의하여 판단한 것이므로 집단이기적인 판결일 수 있습니다. 즉,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의롭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선언하고 있는 의로움은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에게 가장 선한 것을 ‘공의’(righteousness)로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를 원하고 있는 성도들은 이 땅의 정의의 구현이라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 비추어서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백성의 의무입니다.
(2) “정직히 말하는 자”(사33:15b); 정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인 ‘정직’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입니다;
1) 사람들 앞에 속임이 없을 때 그것은 사회적으로 ‘정직’(honesty)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은 좀 다릅니다.
2)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창조주 앞에 종으로 서 있다는 정확한 인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섬기는 가장 기본적인 분수이며 법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먼저, 피조물인 자신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눅5:8). 하지만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질문에 똑바로 진실하게 대답을 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반영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은 ‘upright’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 그것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모습 또는 두려우신 창조주 앞에 서게 된 욥의 모습을(욥38:3, 40:7)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선 두려움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때에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사33:15c); 남의 것을 착취한 것이므로 불의의 재물입니다. 그와 비슷한 것이 전리품입니다. 그것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그 모범을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창14:19-24). 그리고 복음서에서는 삭개오가 다음과 같이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4)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사33:15d); 성도는 뇌물을 받지 않도록 손을 흔들어 퇴짜를 놓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뇌물은 다음과 같이 공정한 재판을 어그러뜨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23:8).
(5)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사33:15e);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사람의 꾀를 쫓는 것이 잘못입니다. 더구나 무죄한 자를 해치고자 하는 음모에 가담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 피 값을 반드시 찾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9:6).
(6)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사33:15f);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 옛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사람이 완전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일러주고 있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그렇습니다. 평생 하나님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 뜻을 묻고 그 말씀 그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구원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젊은 요셉은 어두운 방 귀부인의 은밀한 유혹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항상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있습니다(창39:9). 그것이 그의 형통함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자연히 악을 쳐다보지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사33:15f).
넷째로, “(b)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c)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d)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33:16bcd);
(1)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좋은 집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집은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반석이 되어주시는 요새와 같은 집입니다(사33:16b). 그와 같은 거처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성도에게 평생 동안 제공해주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2) 집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성도들의 필요를 이미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일을 하는 동안 마치 머슴에게 세경을 주시듯이 양식을 마련해주십니다(사33:16c). 그러한 은혜를 모세가 다음과 같이 입체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셨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8:3-4).
(3)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물은 두 가지입니다;
1) 첫째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시는 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십니다. 물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 나오도록 하여서라도 반드시 제공해주시는 것입니다.
2) 둘째는 영원한 생명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물은 이 땅에서 목숨유지를 위하여 마시는 음료수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수를 주시겠다는 약속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사33:16d).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약속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3)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의 의미에 대해서 좀더 설명을 해봅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4-55).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말씀의 성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살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소화하며 실천하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리십니다(요19:34). 그 보혈에는 죄 사함의 은혜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속의 은혜와 생명력을 믿고서 죄와 사망을 이기며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요1:12-13, 29, 16:33).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본문에서 성도들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의 단계로 나누어서 알기 쉽게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1)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선교에 나서라는 것입니다.
(2)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면 역사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죽은 다음에라도 부활시켜서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판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소멸까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명심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생활수칙 6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것, 2) 사람들 앞에 정직하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종의 분수와 법도를 지킬 것, 3) 약자의 재물을 착취하지 아니할 것, 4) 뇌물을 받지 말 것, 5) 악한 꾀를 따르지 말 것, 6) 악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할 것 등입니다.
(4)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면 머슴에게 세경을 주듯이 하나님께서 집과 양식 등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특히 그 양식 가운데에는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은혜와 보혈의 은혜가 풍성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시면서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실천하시는 귀한 성도님들의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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