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4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7. 26. 09:44

이사야 강해 제145(32:5-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2()

 

이사야는 왜 악한 자와 존귀한 자의 차이, 그리고 악한 자를 따르게 되는 어리석은 자와 우둔한 자의 특징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가?(32:5-8)

 

32장에 들어서면서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 땅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7가지 은혜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32:1-4). 그 다음에 본문에서는 메시아의 복음사역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믿음의 눈이 떠져서 영적인 분별력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32:5-8). 그래서 이사야는 미리 악한 자와 존귀한 자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32:7-8). 더구나 악한 자를 따르게 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우둔함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32:5-6). 그와 같이 이사야가 상세하게 예언도 하고 보충적으로 설명까지 해주는 이유는 부디 동족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악한 자를 따르지 말고 선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메시아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와 같은 이사야의 간절한 소망이 내포되어 있는 본문의 말씀에 대하여 자세하게 그 내용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다음과 같이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파악해보겠습니다;

첫째로,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32:5);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제1장부터 제3장까지의 내용을 참조하면,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그들에게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주고 있습니다(1:26-27). 그 가운데 하나님 형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자유의지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행위를 하며 그에 따라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3:6, 16-19).

창세기를 기록하고 있는 모세는 그와 같은 창조의 원리를 설명한 다음에 그가 죽기 전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부디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다음과 같이 유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내가(여호와 하나님이)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사망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19-20).

모세의 당부 그대로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생명과 천국에서의 영생까지 말하고 있는 장수함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체적인 경우에 들어서게 되면,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어느 것이 악한 영의 뜻인지 구별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악한 자를 따르게 되는 어리석은 자와 우둔한 자에 대하여 본문에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가장 근본적인 구분을 이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존귀한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택을 잘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를 못하며, 또한 하나님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둔한 자는 종교적인 지도자의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고 그를 일컬어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32:5 의역).

둘째로, “(a) 이는 어리석은 자(b) 어리석은 것을 하며, (c) 마음불의를 품어, (d) 간사를 하며, (e)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f)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g)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32:6); 어리석은 자는 존귀하신 하나님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악한 영을 선택하고 있는 자입니다(32:6a). 왜 그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그 이유와 특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과 악한 영 사이의 차이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들은 별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2:6b). 마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이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생각)과 같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수 있는 영적인 존재라면 하나님이거나 사탄이거나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한 평생 잘 살다가 가면 그만인데 죽은 다음의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쉽게 말하고 있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2)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겁 없이 의롭지 못한 방법을 선택합니다(32:6c).

(3)  또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훔치는 간교한 방법을 선택합니다(32:6d).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접근을 하는 것입니다.

(4)  그래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이 살아있습니다. 창조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 양심의 소리를 과감하게 억눌러버립니다. 양심이 주인인 자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지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 마디로,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입니다(32:6e).

(5)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14:29). 그래서 선지자와 메시아가 여러 번 하나님말씀의 뜻이 그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146:9, 7:6, 22:7, 25:34-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는 세상적인 현실과 제약성을 내세워 변명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이며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절대적으로 재화가 부족한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나라 임금도 구제할 수 없는 가난한 자를 모두 돌볼 수가 있겠느냐는 논리입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바로 주린 자의 속을 비게 만드는 어리석음”(32:6f)입니다.

(6)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준다는 것은 육신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을 만나서 하신 말씀을 묵상해보면 마실 것을 주는 것 가운데에는 생수나 생명수의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4:14). 그와 같은 의미에 비추어볼 때, 어리석은 자는 생명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고(32:6g) 구원의 방법까지 독점하고자 획책하고 있는 선민과 같은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a) 악한 자(b) 그릇이 악하여, (c) 악한 계획을 세워, (d) 거짓말가련한 자하며, (e)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러함이거니와”(32:7); 어리석은 자와 우둔한 자가 따르고 있는 악한 자는(32:7a) 어떠한 자일까요?

(1)  이사야는 한 마디로, 악한 자는 그릇이 본래 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2:7b). 그것은 태생적인 악함을 의미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 곧 생명살림의 역사를 싫어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근본이 악한 자가 바로 선하신 하나님을 영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사탄입니다(14:12-15, 12:26). 사탄이 세상에 오게 되면 천하를 꾀고 있는 마귀가 됩니다(8:44). 그리고 그 영이 지배하고 있는 동물이 뱀이며 짐승이며 용입니다(12:9, 13:8). 나아가서 그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적그리스도이며 거짓선지자들입니다(요이1:7, 20:10).

(2)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시고 돌보십니다. 반면에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권력의 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 묶고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지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구원하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두려움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그 계획이 바로 악한 것입니다(32:7c).

(3)  악한 영들은 세상을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있는 악한 자들이 지배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마귀가 자신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천하권세를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4:8-9). 이에 따라 가련한 자들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꾀를 쫓고 있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서로 짜고서 거짓말을 하고 거짓증인을 내세우게 되면 재판에서 지게 되고 끝내는 죽음의 길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32:7d).

(4)  이사야가 가난한 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사회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회에 살아 있는가? 아닌가? 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barometer)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선택하지 아니하는 어리석은 자들과 하나님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크게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가난한 자들이 더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32:7e).

넷째로, “(a) 존귀한 자(b) 존귀한 을 계획하나니, (c)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32:8); 어떤 사람이 존귀한 자일까요?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자가 존귀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2:8a). 그 두 가지 사항에 대하여 조금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존귀한 자는 무엇보다도 존귀한 일을 계획하는 자입니다(32:8b).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계획이라고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설명을 참조하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말하고 있습니다(12:1-2). 조금 구체적인 설명을 해봅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모든 피조물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에서도 반드시 그 희생에 대한 보답을 크게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난 다음에 한 없는 영광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보상의 법칙이라고 하겠습니다(8:17-18).

(2)  둘째, 누가 존귀한 일인지 아닌지 판정을 하고 있을까요? 선지자 이사야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일이 존귀한 일이라고 아무리 주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달리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존귀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존귀한 일이라고 실천하고 있는 그 일이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일인지 아닌지 그 판정을 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2:8c).

(3)  사족을 더하자면, 하나님의 판정을 구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말씀의 취지에 비추어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말씀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실천하고 있는 그 일이 말씀의 뜻과 부합이 되는 것인지를 점검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신앙을 올바르게 파수하는 방법론입니다. 그와 같은 결론을 이사야의 설명이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이사야 예언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깊이 묵상해보면 그 용어들이 다음과 같이 새롭게 들려옵니다;

(1)  창조주 하나님과 대적하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이 세상의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세상살이에 있어서 손쉽게 권력과 부를 획득하려고 하는 자들이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버리고 사탄의 편에 서고 있습니다.

(2)  그리고 때로는 종교지도자들도 우둔합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종교적인 권력을 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러한 자들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서로 존귀한 자라고 주장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러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엄중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아무쪼록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먼저 이해하고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일을 행하시는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