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42강(사31:4-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0월 30일(금)
앗수르와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과 자신들의 종주국 애굽 제국을 서로 싸우도록 만들어 그 사이에서 자국의 생존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가나안과 그 주변의 약소국들에게 주고 있는 하나님의 경고(사31:4-5).
이사야의 시대 중동지역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패권을 다투고 있습니다. 동쪽의 호랑이는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 앗수르입니다. 그리고 서쪽의 호랑이는 바로가 다스리고 있는 애굽입니다. 신흥 강대국 앗수르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을 움켜쥐자 그들은 그 힘을 주체하지를 못하고 중동전체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진(西進)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애굽 제국으로 쳐들어가는 길을 개척하고자 가나안의 약소국들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눈앞에서 주전 722년에 형제국가인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있습니다(왕하17:5-6). 그 다음이 자신의 조국인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순서입니다. 과연 연이은 앗수르 원정군의 공격으로부터 그의 조국이 살아남을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의 관심이 그것이며 그의 선지서의 당면한 예언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가 죽던 해 곧 주전 739년경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유다 왕국의 백성입니다(사6:1-8). 그때부터 이사야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예언으로 받아 동족들에게 외치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을 위하여 기록으로 남기기를 시작합니다 그 주 내용은 우상의 나라 애굽 제국을 의지하지 말고 부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선민들이 인간의 지혜와 제국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그 능력을 먼저 구하게 되면 새로운 역사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구체적으로, 창조주께서 세상적인 패권국가의 힘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살리는 능력으로 역사하게 되는 새 시대를 만들어내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사11:9).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훗날 유대인들의 땅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사11:1-5).
그런데 동족들이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점은 그를 선지자로 세울 때에 여호와께서 벌써 해주신 말씀과 동일합니다(사6:9-12).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조차, 현실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종주국인 애굽 제국의 군사력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구원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애굽의 군사원조가 더 절실하다는 상황인식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침입을 당하고 있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왕과 신하들이 사신을 애굽에 파견하여 군사원조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사31:1).
당장 그와 같은 미래가 전개될 것임을 내다보고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동족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그와 같은 정책결정을 하게 되면 장차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오게 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참으로 도움이 되는 이사야의 예언이며 상황인식이기 때문에 깊이 있게 음미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구절을 살펴보면서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b)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왔다 할지라도 (c)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d)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e)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사31:4); 애굽 제국은 큰 나라이고 유다 왕국은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애굽 제국은 큰 사자와 같습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쥐게 된 앗수르 제국은 젊은 사자와 같습니다. 여기서 두 나라를 호랑이가 아니고 사자라고 표현한 것은 이사야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호랑이가 아니라 사자가 백수의 왕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게 되자 유다 왕국은 애굽 제국에 구원군을 보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전개가 될까요?
(1)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의미의 하나님말씀을 받아 동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큰 사자나 젊은 사자나 상관이 없이 강대국들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서로 약소국을 자신의 먹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기 위하여 싸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강대국이 승리를 하든지 간에 약소국은 또 다시 그 나라의 속국이 되고 말 것입니다”(사31:4a 의역).
(2) 그와 같은 이사야의 지적에 대하여 선민들이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나안의 여러 나라들이 애굽 제국을 종주국으로 잘 섬겨왔는데 앗수르를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되면 좋지 않겠는가? 만약 애굽이 군사원조를 빌미 삼아 원조받은 나라를 완전히 합병하고자 획책한다면 그것을 가나안의 여러 나라들이 눈뜨고 그냥 보고 있지는 아니할 것이다. 소위 국제여론이라고 하는 것이 엄연히 있는데 오랜 강대국 애굽 제국이 그렇게 파렴치한 일을 자행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본다”(사31:4b 의역).
(3) 이사야는 그와 같은 판단은 별로 힘이 없는 국제여론을 의지하고 있는 매우 유약한 상황인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강대국이 승리를 얻든지 간에 약소국은 승전한 강대국의 먹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처절한 논리만이 지배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왕과 신하들이 선택하고 있는 정책결정은 나약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승전한 강대국)이 그들(먹잇감에 불과한 약소국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국제기구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사31:4c).
(4)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후환이 없는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아서 다음과 같이 동족들에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d)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e)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사31:4de). 만약 왕과 신하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서 빨리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오기만 한다면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있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5)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훗날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한 자신들의 잘못을(왕하19:9) 회개하고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오게 됩니다(왕하19:14-19). 그 결과 천사가 나타나서 앗수르 군인 18만 5천명을 몰살시켜버리는 기이한 대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왕하19:35). 그런데 이사야는 그 정도의 예언만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로 받고 있는 예언은 더 엄청난 것입니다. 그것은 메시아의 오심과 그리스도 예수님이 자신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로 건설하시는 하나님나라의 찬란한 영광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6) 매우 상징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1) 메시아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십니다(사9:6).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자는 그 눈으로 그리스도의 행적과 교훈을 보면 됩니다(요10:38, 14:9).
2)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메시아와 함께 복음사역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권세와 사탄의 권세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전투가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치열하게 전개가 될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은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하여 번역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d) 이와 같이(메시아를 통하여) 나 만군의 여호와가 (메시아에게) 강림하여 (e) 시온 산(예루살렘)과 그(골고다) 언덕에서 (죄와 사망을 주장하고 있는 악한 권세와) 싸울 것이라”(사31:4de).
둘째로,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이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사31:5);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마치 그 옛날 출애굽의 역사와 같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유월절 사건과(출12:21-27) 시내 산 언약을(출19:4-6)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4-6).
(2)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새가 그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출애굽시킨 이스라엘 자손들을 영원히 보호해주신다는 언급입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애굽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구원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신앙을 분명히 할 때에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제사장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세 가지 용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이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사31:5)에서 볼 수 있듯이 ①호위하고, ②건지고, ③뛰어넘어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세 가지 동사 가운데 역사적으로 생각해보면, “뛰어넘어 구원”하는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의 의미가 가장 먼저입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13).
2) 둘째가 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를 말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사이에 난 바닷길을 건너게 하여 구원을 얻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출14:21-28). 유월절 사건으로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가까이 왔을 때에 애굽의 기마대의 추격으로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출14:8-10). 그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그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를 강에서 건져주는 것과 같습니다(출2:10). 가장 이해하기 쉬운 구원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3) 셋째가, 호위하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때부터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호위해줍니다(출13:21-22). 그 길을 안내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합니다(출3:12, 19:1-3). 그곳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목적이며 구원이 지향하고 있는 올바른 방향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
결론적으로, 다윗 왕조와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앗수르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애굽의 바로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구에 발생할 그와 같은 정책결정은 심각한 오판이 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사전에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두 강대국이 모두 기회만 있으면 가나안의 왕국들을 먹어 치우려고 하는 사자와 같은데 누구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이사야가 정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해주셨는지를 생각해보라고 은근히 상징수법으로 권유하고 있습니다; 첫째, 출애굽 당시 기적적인 유월절 사건을 통하여 노예생활에서 해방을 시켜주었습니다. 둘째, 홍해바다를 갈라서 물에서 건져주었습니다. 셋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호위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산에 도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곳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본문에서 동족들에게 부디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을 앙망하고 이제는 세상나라를 계속 의지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구원의 방책을 버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결론 삼아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 가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온전한 구원을 믿는 자에게 줄 수가 있습니다. 세상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여 잠시 구원을 얻었다고 하여 마냥 기뻐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온전한 구원이 아니며 오히려 잡아 먹히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구원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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