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40강(사30:30-3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0월 28일(수)
하나님께서 왜 앗수르 군대를 치시고 예루살렘 성을 구원하시고 있는가? 이사야가 ‘도벳’과 ‘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다(사30:30-33).
본문에서 이사야는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자 앗수르의 군대가 쳐들어오지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기 때문입니다(사30:30-31). 그리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이 땅에 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도벳을 미워하고 우상을 섬기는 왕들을 전부 심판하고자 작심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사30:32-33).
이제부터 각 구절을 풀이해보면서 그 의미를 깊은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사30:30);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시대 홍수로 인한 물 심판이나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진 유황 및 불 심판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폭우나 화염뿐만 아니라 우박과 폭풍을 동반하고 있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히 종말론적인 심판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려봅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에 있어서는 폭우와 해저지진으로 인한 지하수의 분출이 등장하고 있습니다(창7:11-12). 그것은 ‘물 심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물이 아니라 불에 의한 것입니다. 하늘에서부터 유황과 불이 떨어져서 모든 것을 불살랐기 때문입니다(창19:24-25). 그런데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심판의 모습은 그 이상의 것입니다. 화염과 폭우 정도가 아니라 그와 더불어 폭풍과 우박이 함께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사30:30c).
그렇다면, 폭풍과 우박의 심판이 언제 역사 가운데 임한 적이 있을까요? 출애굽 당시 애굽에 임한 재앙들 가운데 우박의 심판이 들어 있습니다(출9:18-22). 그것은 7번째 재앙이며 우렛소리 그리고 불과 함께 애굽 땅에 임하고 있는 심판입니다(출9:22-24). 그렇다면 폭풍의 심판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요? 태풍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보다는 ‘미친 전쟁의 바람’(the crazy wind of war)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의 시대에 마치 질풍노도(疾風怒濤, 미친 바람과 노한 파도)와 같이 적군 앗수르의 기마대가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가히 파죽지세(破竹之勢)입니다.
사실 주전 8세기 말에 유다 왕국을 침입하고 있는 앗수르 침략군의 기세가 그와 같습니다. 앗수르의 기마병들이 숨돌릴 사이도 없이 단숨에 왕도 예루살렘을 제외하고 모든 지방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왕하18:17). 그 전쟁의 폭풍을 누가 감히 잠재우고 히스기야 왕의 유다 왕국을 구원할 수가 있을까요? 가나안의 왕국들이 기대하고 있는 애굽의 바로가 아닙니다(왕하19:8-9). 유일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을 구원해주십니다(왕하19:35).
하나님께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사30:30a),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사30:31).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역사 가운데 실제로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만 5천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19:34-35). 그와 같은 엄청난 심판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이사야가 부득이 물, 불, 우박, 그리고 폭풍 등 네 가지가 한꺼번에 임한 것과 같다고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사30:31); 여호와의 목소리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다윗에게 약속한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적군의 포위공격으로부터 구원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왕하19:34). 이사야의 예언이 퍼져나가자 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구원의 희망에 가슴이 부풀고 반면에 앗수르의 군대는 낙담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사30:31a).
그런데 이사야의 이 예언의 말씀은 조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앗수르 백성들은 여호와를 전능하신 창조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신들이 그 동안 정복했던 작은 왕국들의 수호신 정도의 비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왕국과 그들의 수호신도 앗수르 군대의 힘을 당해내지를 못했습니다(왕하19:12-13).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이라고 하는 것이 그다지 앗수르 군대를 낙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예언이 거짓이거나 과장된 표현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께서(요4:24) 움직이시면 피조물인 사람들의 영혼이 창조주의 기세를 먼저 느끼고 소멸의 두려움에 휩싸여서 미리 떨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창15:12, 출20:18-20, 수2:9, 마27:54, 눅5:8). 역시 아니나 다를까 그 밤중에 결단이 나고 맙니다.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정예병 18만 5천명이 천사에 의하여 삽시간에 송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19:35). 그 죽음의 천사가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주께서 치시는 막대기”(사30:31b)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역사 가운데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멸시하는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위용을 보여준다고 하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하여”(왕하19:34a)의 의미입니다. 둘째,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가 앗수르 군대의 후미를 공격했지만 별로 성공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왕하19:9).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의 힘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왕하19:14-19).
그것은 세상적인 모든 방법이 사라지고 나자 마침내 하나님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히스기야 왕의 부끄러운 부르짖음에도 하나님께서 긍정적으로 응답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부끄럽고 절망적인 모습을 바라보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다윗 왕에게 하셨던 언약의 말씀에 비추어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2:1-4).
평소에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다고 보기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 부끄럽지만 자신의 방법이 잘못 되었다고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태도가 일찍이 다윗 왕이 말하고 있는 다음 말씀에 해당이 되고 있습니다;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돌이켜)”(왕상2:4a). 그러한 경우에라도 이미 다윗 왕에게 준 약속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에 구원을 베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후계 왕들에 관한 예언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왕 하나님신앙을 회복하였으면 남은 통치기간에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만 합니다(창17:1, 왕상2:4). 그리하면 다윗의 왕조는 후계체제가 튼튼하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겠다고 하는 언약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구원을 얻은 다음에 그리 행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왕하20:12-19). 그 결과 그 뒤를 잇고 있는 므낫세 왕이 한번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왕하21:2-16). 유다 왕국에서 모든 율법 책이 사라지고 있을 정도입니다(왕하22:8). 따라서 그때부터 제사장나라의 멸망이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왕하21:11-16).
셋째로,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사30:32); 앗수르를 징계하는 일은 이미 정해진 수순입니다(사30:32a). 앗수르는 창조주 하나님을 약소국 유다 왕국의 수호신 정도로 하찮게 여겼던 제국입니다(왕하19:12).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때마침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낀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엎드려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왕하19:1619). 그러므로 이제는 예정된 수순 그대로 앗수르를 크게 징벌하고자 하십니다; “그(여호와)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앗수르 군대)을 치시리라”(사30:32c).
하지만 이사야는 이상한 구절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앗수르 위에 (징계의 몽둥이를 휘두르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사30:32b). 아무리 무엄하고도 교만한 앗수르의 군대 18만 5천명을 전멸시켜버리기로 하나님께서 결정을 하셨다고는 하시지만 그래도 창조주의 마음이 아프기 그지 없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자식과 같은 인간들입니다(창1:26-27, 9:6). 한두 사람도 아니고 18만명 이상을 하룻밤 사이에 모두 죽여야만 합니다(욘4:11).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소고와 수금이 동원이 되고 있습니다(사30:32b).
그것은 자식의 비명소리와 고통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도록 귀를 막아버리는데 소용이 되고 있는 악기들입니다. 주후 12-13세기 유대인 주석학자인 다비드 킴히에 따르면 힌놈 골짜기에서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몰렉 우상에게 자식을 인신제사로 드릴 때에(렘7:31) 부친의 귀를 막아버리기 위해서 탬버린과 수금이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넷째로,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사30:33); 이 구절은 적어도 세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첫째, 앗수르의 군대를 희생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둘째, 인신제사를 금지시키시는 하나님의 뜻이 강력하게 드러나는 대목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 메시아를 대속의 제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도벳 사당의 인신제사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본 후에 각 경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1)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밖 서남방에 위치하고 있는 ‘힌놈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짓고 몰렉에게 아이들을 희생제물로 바쳤습니다(렘7:31, 왕하21:6). 그러한 악습과 인신제사는 요시야 왕에 의하여 금지가 되고 있습니다(왕하23:10).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있는 앗수르 군대를 그 골짜기에서 대거 희생시키려고 하십니다. 그 수가 무척 많습니다. 무려 18만 5천명이나 됩니다(왕하19:35). 그들을 모두 죽이고 파묻어버리기에는 힌놈 골짜기가 안성맞춤입니다. 골짜기는 깊고도 넓으며 시신을 태워버릴 땔감으로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사30:33cd). 그와 같은 정밀한 예언이 이사야에 의하여 발해지고 있습니다.
(3) 이사야의 계시는 그 내용이 당면한 예루살렘 성 구원만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인 앗수르처럼 선민 유대인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하나님을 창조주로 제대로 섬기지 아니하게 되면 똑같이 멸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다음의 므낫세 왕이 힌놈 골짜기 도벳 사당에서 자신의 아들을 몰렉에서 인신제사로 바치고 있습니다(왕하21:6). 비록 그와 같은 우상숭배를 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이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있지만(왕하23:10)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4) 요시야의 막내 아들 시드기야가 왕으로 있는 동안에 그만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25:2-7). 그때의 참혹상을 이사야가 본문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사30:33).
(5) 훗날 힌놈 골짜기는 공동묘지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있는 언덕이 골고다 언덕입니다(마27:33). 메시아가 그곳에서 십자가 처형이 되고 공동묘지 위에 있는 바위 굴에 안장이 됩니다(마27:60).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시게 됩니다(마28:1-10). 그 사건을 통하여 대속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과 구원이 성도들에게 임하게 됩니다(롬6:4).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문을 다시 음미하고자 합니다; “(a)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b)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c) 깊고 넓게 하였고, (d)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e)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사30:33);
(6) 하나님께서 마지막 인신제사를 바칠 수 있도록 사당인 도벳을 세우고 있습니다(사30:33a). ‘힌놈 골짜기’ 위에 있는 ‘골고다 언덕’입니다. 인류의 대속을 위한 완전한 제물은 이 세상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사용하는 완전한 속죄의 제사입니다(히7:27-28). 그리고 영원한 대속의 제물이므로 앞으로는 인신제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7) 유다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사30:33b, 마27:37). 과연 선민 유다의 왕으로 오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모든 세상임금을 물리치시고(요12:31-32) 메시아나라의 영원한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이사야가 진작에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8)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의 현장이 ‘힌놈 골짜기’의 근방인 그 위쪽이라고 볼 경우에는 나머지 예언의 내용 곧 “(c) 깊고 넓게 하였고, (d)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e)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사30:33)의 뜻이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될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적용은 선민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 이방인 구분이 없습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희생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은혜가 참으로 깊고도 넓습니다(사30:33c).
2) 칭의를 받고 의인이 되었다고 하여 금방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합니다(행1:8). 성령님께서 기도와 간구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제자가 된 삶이 무엇인지 그 앞길을 인도해주셔야만 합니다. 한 마디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도들은 영적인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즉 성화의 과정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잘못된 버릇과 행실이 성도들에게 마치 가시나무처럼 많이 도사리고 있습니다(사30:33d, 고후12:7).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성령의 불로 태워버려야만 합니다.
3) 이사야는 은혜롭게도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사30:33e)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호흡이기 때문에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그 혀의 맹렬한 불로써(사30:27) 성도의 잘못된 버릇과 행실을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영적인 호흡을 불어넣어서 성도의 영을 소생시켜주시는 것입니다(창2:7, 행1:8). 꿀같이 단 생명의 말씀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와서 성도들에게 생명력을 북돋우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와 능력이 속에서부터 생수와 같이 터져 나오고 있기에 성도들이 세상을 이길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요4:14, 6:55, 16:32-33).
결론적으로, 선민들이 우상을 가장 극심하게 섬겼던 ‘힌놈 골짜기’, 그 불신앙의 장소 위에 ‘골고다 언덕’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훗날 메시아가 그곳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공격하고 있던 앗수르의 대군이 힌놈 골짜기에서 하룻밤 사이에 시체가 되고 말 것이라는 예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이 어느 사이엔가 그 골짜기 위에서 발생하게 되는 메시아의 대속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선민인 유다의 백성은 물론 이방인인 앗수르의 백성들도 모두 구원으로 나아가게 되는 영생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사19:23-25). 이사야는 그와 같은 메시아의 시대를 내다보면서 깊고도 넓게 자신들의 허물과 잘못을 여호와의 불로써 살라버리는 은혜를 간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사30:33). 그것이 본문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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