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3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7. 22. 20:57

이사야 강해 제138(30:23-2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026()

 

이사야의 씨 뿌리는 비유와 하나님의 은혜(30:23-26)

 

본문 이사야의 예언은 언뜻 보면 그저 농사에 관한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농부가 밭에 종자를 뿌리고 그 결실을 얻어 함께 나누어먹는다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야기 가운데 농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식물을 잘 자라게 하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셔야 그것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이 모두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는 말씀이 들어 있어 본문은 일종의 신앙적인 가르침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사야가 하나님의 세상심판과 백성에 대한 회복의 내용까지 예언하고 있기 때문에 본문은 영적인 교훈이 풍성한 기록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제부터 각 구절을 차례대로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이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가 땅에 뿌린 종자께서 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30:23); 이 말씀은 세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종자를 땅에 뿌리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이야기입니다. 셋째는 그 열매를 나누어먹는 이야기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1)  농사꾼이 밭에 종자를 뿌리듯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뿌립니다(30:23a). 예를 들어보자면,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그러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19:6-8, 24:3).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6:8-9, 2:1-4). 신약시대가 되면 메시아와 그 제자들이 그러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의 복음으로 백성들에게 선포하게 됩니다(24:44-49, 1:8).

(2)  그렇게 하나님말씀의 씨를 땅에 뿌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그 씨앗이 식물로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0:23b). 농사꾼이 자신이 열심히 거름을 주고 물꼬를 자주 터주어서 식물이 발아를 하고 잘 자라나 열매를 많이 맺는 것으로 자랑할지 몰라도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이 땅에 적기에 내려주지 아니하시면 농사가 결실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는 그 말씀이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지 아니하시면 단단한 땅에 부드러운 표토층’(表土層, top soil)이 생성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씨앗이 발아(發芽, 싹트기)가 될 수가 없습니다. 자연히 성장과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먼저 하나님께서 직접 먹이시는 가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30:23c). 창세기 제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의 동물들에게 먹거리로 풀을 주시고 있습니다(1:30). 그 풀은 농부가 씨앗을 일부러 땅에 뿌리지 아니하더라도 들판에서 잘 자라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씨앗이 자연적으로 잘 날리도록 조치를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비록 가축들이 사람들의 소유로 되어 있더라도 목장에서 하나님께서 키워주신 풀을 먹이로 삼아 잘 자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방목(放牧)입니다.

(4)  이사야가 그 말씀을 먼저 꺼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말씀을 우선적으로 머리와 마음속에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다음 말씀이 이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훗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동일한 취지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6:26).

둘째로,밭 가는 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30:24);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가축이 있습니다. 소와 나귀 등입니다(30:24a). 소는 밭을 가는데 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나귀는 무거운 농작물과 도구를 실어 나르는데 크게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농부가 농사를 짓고 나면 그 소출을 혼자서 다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수고한 소와 나귀에게도 곡식을 나누어서 먹여야만 합니다.

물론 소나 말 등의 가축들은 들판의 풀을 뜯어 먹어도 살 수가 있습니다(30:23c). 그러나 농사를 짓느라고 많은 힘을 사용했기에 더 잘 먹어야 앞으로도 농사일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추수를 한 곡식을 소와 어린 나귀에게도 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0:24b). 그것은 가장 맛있는 사료입니다. 물론 곡물이기 때문에 사람이 우선적으로 먹는 식량입니다(1:29). 그런데 그것을 소와 어린 나귀에게 나누어 먹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농사를 지어 사람만 먹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가축과 동물들의 생명까지 살리고 돌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의 일환입니다. 참고로, 모세오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율법으로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희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234:10-11).

셋째로,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30:25);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함께 살리고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 정신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것이 청지기 된 인간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기심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자신들의 뱃속을 이롭게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날에 대하여 이사야는 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30:25a)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목축사회에서 망대’(望臺, watch tower)는 많은 가축을 살피기 위하여 언덕 위에 높이 세워놓은 전망대와 같은 것입니다(30:25a).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잠시도 정신을 팔지 않고 망대에서 자신의 가축을 살펴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축에 정신이 팔려서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무엇인지 이사야가 조금 전에 설명을 한 바가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릴지라도 곡식을 자라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30:23). 그러므로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농사에만 매어 달리고 있는 자는 종말심판을 당하여 망대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30:25a).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일이라고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차제에 장인 라반을 위하여 불철주야 양치기로 헌신한 야곱의 솔직한 이야기와 그리스도가 아기 예수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고 하는 복음을 듣게 되는 양치기의 이야기를 비교하여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 20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31:38-40),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2:8-12).  

요약을 해보자면, 매우 이기적인 인물 라반의 머슴으로 20년간 살았던 야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망대에서 그토록 수고했지만 여전히 먹고 사는 일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베들레헴의 양치기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메시아의 탄생이야기를 복음으로 듣고 달려감으로써 그들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그들의 이야기가 의사 누가에 의하여 실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불철주야 수고하고 있던 장소 망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30:25a). 그 대신에 인생의 목적이 되고 있는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무너진 망대의 뒤쪽에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감격스럽게 예언하고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고산(高山, 높은 산)마다 준령(峻嶺, 험한 고개)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30:25b).

넷째로,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7가 되어 7날의 빛과 같으리라”(30:26);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구원의 역사는 심판의 날에 망대가 무너지자 높은 곳에서부터 시냇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30:25). 그리고 그 시냇물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30:26a). 또한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그날에는 이 세상에서 백성들이 얻어맞은 상처를 고치시기 위하여 생명의 빛이 엄청나게 밝게 비추어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0:26c). 좀더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이사야의 예언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사도가 요한입니다. 그의 계시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22:1-5).

(2)  심판의 날에 사람들이 생업을 위하여 사용하던 망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30:25a). 그리하면 그 뒤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내리게 됩니다. 사도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이 땅으로 흘러내리는 강물입니다(22:1-2a).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가 고산마다 준령마다’(30:25b) 높은 곳에서부터 시냇물이 흘러내릴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3)  이사야는 구원의 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0:26a). 그것은 사도 요한의 설명에 따르면, 생명나무 잎사귀로 만국을 치료하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22:2b). 그리고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당한 고통을 치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빛입니다(30:26b, 1:4). 그 빛은 하나님의 얼굴에서 피조물에게 비치고 있는 영광의 광채입니다(22:4-5). 그 빛의 밝기는 피조물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영적인 존재가 아니면 감히 마주 쳐다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게 된 성도들이 훗날 천국에서 그 빛을 쪼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엄청난 생명의 빛 앞에 피조물인 태양과 달이 무색해지고 있습니다(30:26c, 22:5).

(4)  마지막으로 이사야가 일곱 날의 빛과 같다”(30:26d)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심판의 날에 성도들은 오히려 구원의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30:25-26). 이 땅에서의 환난과 고난이 끝나고 천국의 시민으로 부활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생명수의 강을 만나고 생명나무의 잎사귀로 상처를 치료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어린양을 경배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생명의 빛으로 비추어져 와서 모든 것을 고치고 온전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완전한 구원과 치유가 임하는 날을 이사야는 일곱째 날의 의미와 같다고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증언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치유를 받게 되는 그날이 바로 안식의 날’(2:2-3)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본문에서 종말심판을 당하는 자의 사고방식과 그날에 오히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종자를 땅에 뿌리면 자연히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시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 자신이 노력하여 씨를 뿌리고 땅에서 얻은 곡식이므로 이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열매를 얻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뿐만 아니라 수고한 가축들에게도 먹거리로 제공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전자(前者, 앞의 것)와 같이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들에게 심판이 임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양을 치기 위하여 높은 언덕에 설치한 그들의 망대부터가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반면에 후자(後者, 뒤의 것)와 같이 먹고 살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모든 생물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고자 한 성도들은 구원의 강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강물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로 상처가 치유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창조주의 생명의 광채를 쪼이게 될 것입니다. 태양보다 강한 그 빛으로 온전한 치유를 얻게 되면 천국에서 영원한 제7일 안식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그와 같은 많은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사야의 씨 뿌리는 비유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