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4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7. 25. 17:39

이사야 강해 제144(32: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11(주일)

 

이사야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임하는 7가지의 은혜에 대하여 예언을 하다(32:1-4).

 

이사야의 궁극적인 관심은 동족들인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 동족들에게 줄기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부디 우상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31:1-5). 오로지 완전한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자 하는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은혜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31:6-9).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동족들의 귀에는 마이동풍(馬耳東風, 말의 귀에 그냥 스쳐 지나가는 동쪽 바람에 불과함)이며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읽기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함)이 될 따름입니다.

어째서 이사야가 노력한 결과가 그러한 것일까요? 한때는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185천 명의 앗수르 병사를 모조리 죽여버리고 그 성을 구원해내는 기적까지 보인 바가 있습니다(왕하19:34-35). 그런데 왜 선민들이 그 후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때의 기적의 연출이나 그것을 경험한 것만으로써는 완전한 깨달음과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 해답의 일단을 메시아의 사역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행적에서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가십니다(4:1).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기 위함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마귀가 제시하고 있는 방법 곧 세상적인 떡과 권력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4:2-4, 8-11, 6:15). 오로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마귀가 제시하고 있는 또 다른 방법, 곧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높은 성전꼭대기에서 안전하게 뛰어내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주는 것으로써도 온전한 구원을 성취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4:5-7). 그 옛날 출애굽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이나 홍해가 갈라지는 표적으로도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7-12, 14). 그 이유는 기이한 표적이나 능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과 만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18:20-33, 3:17-19, 왕상19:11-12, 4:10-11, 12:39-41, 16:4, 3:16-17).

(3)  공의의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세상을 살리시기 위해서 천하권세를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시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28:18-20, 10:20, 1:20-23).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아 실천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전심으로 경배할 때에 구원과 영생의 은혜가 하늘로부터 풍성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나라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방법입니다.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위와 같은 깨달음을 복음으로 온 세상에 전할 때까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의 눈이 감겨져 있으며 그 귀가 막혀 있습니다(3:9-18). 일찍이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위탁하시면서 해주신 말씀과 동일합니다(6:9-12).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 이사야의 예언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면 메시아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7가지의 은혜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제부터 본문을 한 구절씩 검토하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보라, 장차 한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정의로 다스릴 것이며”(32:1); 이사야는 메시아가 훗날 이 세상에 오시게 되면 세 가지의 은혜가 먼저 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메시아가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가 성립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임금이 쫓겨나게 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12:31). 세상사람들은 전쟁을 치르고 백성들에게 먹을 복을 나누어줄 수 있는 왕을 선호하고 있습니다(삼상8:20, 6:14-15). 그렇지만 전쟁은 또 전쟁을 낳고 세상적인 먹거리는 늘 부족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탐욕이 식량의 분배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권력이 있는 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반면에 권력이 없는 자는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강자의 지배권에 굴종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세상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새로운 왕 메시아입니다(9:7, 11:6-9).

(2)  둘째, 그 나라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들만의 구원과 축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집단이기적인 탐욕입니다. 다른 나라와 백성들 곧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시아는 다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뜻이 바로 창조주의 눈으로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의 대상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을 똑같이 사랑하고 그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11:4-5).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26:39, 3:13-17, 6:38-40, 12:32).

(3)  셋째, 성도들이 하나님의 방백으로 임명을 받아 각각 자신의 지역에서 정의를 실천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사도 베드로가 훗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들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하는 자들이 성도들입니다. 그 일을 행하는 성도들에게 왕과 같은 제사장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영적인 권위를 누린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훗날 다른 성도들에게도 그와 같은 권세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이사야가 700년 전에 이미 예언하고 있는 대목이 위의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4)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각자 위임 받은 곳에서 정의롭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정의는 집단이기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성도가 사역하고 있는 지역과 서로 마찰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어떻게 조정이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공의로 각자의 정의를 조정해주는 기능이 필요합니다. 그 일을 행하시는 존재가 바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시라고 일찍이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16:6-8).

둘째로,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32:2); 이사야는 메시아가 백성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피난성이 되실 것이며 이른 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피난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유월절의 의미입니다(12:13, 23, 29-30). 둘째, 율법에 따라 약속의 땅에 설치하는 도피성입니다(21:13, 35:6-15).

1)    어린양의 피가 문인방과 좌우 문 기둥에 없으면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12:29-30). 반대로, 어린 양의 피가 있는 그 집안의 사람은 모두 죽임을 면하고 있습니다(12:13, 23). 그 대상이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그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바로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이 세상에 멸망의 광풍과 폭우로 몰아칠 때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믿는 자는 구원함을 얻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2)    고의가 아니라 사고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친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함이 예비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도피성제도입니다(21:13, 35:11-15).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고의가 아니라 과실로 처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이 정범이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에 이끌리어 그만 사탄의 말을 따르고 있는 종범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죄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요?

3)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무덤에서 사탄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쳐부수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가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구원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성도들에게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도피성이 되시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  이른 비에 대해서는 이사야가 마른 땅에 냇물이 흐르게 되는 것”(32:2)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른 땅에 비가 내리게 되면 공기가 통하고 햇빛이 들어가며 물기를 머금고 있는 부슬부슬한 top soil’로 변합니다. 그 표토(表土, top soil)가 싹을 발아하게 합니다. 생명이 그곳에서 자라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모세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11:14). 적당한 때에 내리는 이른 비의 개념이 히브리어로 의의 교사로 새겨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른 비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개념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은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가 바로 생명의 빛’(1:4)이 되고 있다는 사도 요한의 증거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32:3); 메시아와 그 제자들의 복음사역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되고 드디어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나면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시게 됩니다(24:49, 2:1-4). 그때부터 12사도들이 유대인들에게 정확하게 하나님말씀의 뜻을 복음으로 깨달아 전하게 됩니다(1:8, 2:11-36). 많은 유대인들이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6:10-13, 2:37-42) . 그것은 계시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메시아의 시대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11:1-2),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9).

넷째로,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32:4); 세상적인 구원만을 생각하는 자는 그 마음이 조급하기 그지 없습니다. 당장 불치병, 부도, 죽음의 그림자 등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으니 구출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출해준다고 하더라도 그 남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면 영생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영생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구원에 조급해하며 그것으로 만족하는 삶의 방식을 벗어나야만 합니다.

한 마디로, 느긋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는 공부와 묵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깨달은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해야만 합니다(고전14:19). 그와 같은 작업은 사람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4:10-12, 14:16-17, 26, 16:13-14).

그래서 제자들의 열매 맺는 사도생활을 위해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17-21).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간절하게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병정 185천명을 도륙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주시지만(왕하19:35) 동족인 선민들이 여전히 하나님보다는 우상 섬기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왕하21:2-16).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의 하나님신앙이 그 정도에 머물고 있는데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하나님신앙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사야가 미래를 전망해볼 때에 하나님의 비상조치가 없으면 모두가 멸망의 대상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구원의 시대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소원을 가지고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을 앙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본문에서는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 세상에 끼치고 있는 7가지의 은혜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1) 메시아가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되심, (2) 공의의 정신이 메시아의 나라를 지배할 것임, (3)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함께 다스릴 것임, (4) 그리스도에게 피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임, (5) 생명수를 주실 것임, (6)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계시의 영을 주실 것임, (7)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성령님의 임재가 있을 것임 등입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 안에서 위의 7가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