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욥의 놀라운 4가지 진술(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7. 7. 09:14

제목; “욥의 놀라운 4가지 진술”(7:6-21)

설교일; 주후 202171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77일 작성)

 

욥기 제7장 본문을 음미해보면 그 옛날 족장시대 동방의 우스 땅에서 여호와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욥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아니하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심경을 알기 쉽게 4단계로 나누어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가 두려움입니다(6-10). 2단계가 원망입니다(11-16). 3단계가 놀라운 인식의 전환입니다(17-20). 4단계가 하나님과의 화해의 모색입니다(21). 조금 설명을 해봅니다;

첫째로, 자칭 의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욥은 갑자기 비참한 지경에 처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징벌을 받는다고 하는 이른바 권선징악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인과응보의 철칙이 지배하고 있는 족장사회에서 의인인 자신이 악인에게나 어울리는 고난에 처하고 있다는 사실이 욥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부자로 살던 자신의 엄청난 재물이 갑자기 밀어 닥친 약탈자들과 하늘에서 떨어진 불에 의하여 전부 사라지고 맙니다(1:14-17). 게다가 건물이 무너져서 10명의 자녀들이 한꺼번에 비명횡사를 당하게 됩니다(1:18-19). 인생살이 가운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사건 사고가 연발하고 있습니다.

욥이 처음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입니다. 피조물인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서는 결코 감당할 수가 없는 일들이 영문도 모르게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의 내용을 본문에서 문학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7:6-10).

그러한 두려움의 와중에서도 욥은 인생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1:20). 욥이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자신의 여호와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주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한꺼번에 거두어 가시는 것도 그 분의 뜻이 아니겠는가? 한갓 피조물에 불과한 내가 어찌 그것을 막을 수가 있겠는가?”(1:21의역).  

둘째로, 그 다음에 욥은 전신에 발생한 종기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2:7). 그 참상이 눈뜨고는 볼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따라서 그의 아내는 남편이 편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조언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원망하세요. 그리하시면 순식간에 목숨을 거두어 가실 것이니 이 엄청난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2:9의역);

 

그렇지만 욥은 아내의 말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2:10). 그 이유는 의인인 자신에게 어째서 그와 같은 환난과 고통이 밀어 닥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받드시 알아야 편한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적인 암중모색을 하고 있는 욥에게 절친 3사람이 멀리서 찾아오고 있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입니다(2:11). 그리고 부스 사람 젊은 현자 엘리후가 나중에 합류하고 있습니다(32:2).

욥은 절친 3명의 위로의 말을 들어보지만 도무지 위안을 얻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과응보사상에 투철하기 때문입니다. 욥이 무엇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을 했는데 그것을 자신들에게 숨겨놓고 있다는 질책입니다. 욥은 그들의 근거 없는 비난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말로 표현하자 서로의 논쟁이 자꾸만 길어지고 있습니다;

욥은 의인인 자신이 마치 악인처럼 취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마침내 불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본문 가운데 영혼의 아픔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의로 아로새겨지고 있습니다(7:11-16).

셋째로, 욥이 갑자기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7:17-18).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욥과 같은 인간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감찰하시며 눈 여겨 보고 계신다고 하는 깨달음입니다(7:19-20).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불평과 원망 가운데에서도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욥의 태도의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그 결과 그의 간구의 내용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을 나중에 본문의 풀이과정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넷째로, 욥이 마침내 죽기 전에 필히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서 자신의 의문을 해소하고자 소원하고 있습니다(7:21). 그것이 이름하여 하나님과의 화해의 모색입니다.

욥의 소원이 과연 성취가 되는 것일까요? 욥기의 기록은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 앞에 나타나셔서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여 주시는 것으로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38-42). 그 결과 욥은 여호와의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새로이 깨닫게 됩니다(42:1-6).

그가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3친구를 위하여 화해와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중보의 기도를 하자 놀라운 신원의 회복이 찾아오고 있습니다(42:7-10);

 그와 같은 전체적인 욥기의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여기서는 본문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한 구절 씩 알기 쉽게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6.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없이 보내는구나. 7.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8.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 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10.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7:6-10); 인생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연약한 육신과 얄팍한 지식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는 커다란 어려움과 고난이 밀물처럼 몰려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난의 소용돌이 가운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벌거벗은 인간의 실상입니다;

욥은 한꺼번에 그 모든 환난과 고통을 당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진술이 다음과 같이 생생합니다;

(1)  6.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없이 보내는구나”; 인생이 속절없이 빠르게 마치 베틀의 북보다 더 잽싸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초년의 성취보다 노년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의 경우에는 그와 반대입니다. 노년의 나이에 그만 전 재산이 사라지고 10명의 자녀들마저 한꺼번에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희망이 없습니다.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닙니다.

(2)  7.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전신에 종기가 발생하여 고통 가운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욥입니다. 따라서 절망 가운데 이제는 소망이 없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욥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불행 가운데 저의 생을 마감하게 되었으니 먼지와 같이 하찮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부디 다시 한번 굽어살펴 주십시오. 나의 주인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7:7의역).

(3)  8.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 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욥은 의인인 자신이 악인처럼 취급되어 온갖 환난과 고통의 징벌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런데 원망 이전에 더 큰 두려움을 하나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명을 벗지 못하고 그만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고 하면 그것은 다시는 회복할 수가 없는 악인의 말로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내용상 부디 죽기 전에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하는 간절한 욥의 절규입니다;

(4)  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10.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본문에 깊숙이 담기어 있는 욥의 인식 하나가 인상적입니다. 그것은 의인에게는 하늘의 처소가 있지만 악인에게는 음부의 세계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7:9-10). 그러므로 의인인 욥 자신이 잘못 분류가 되어 음부의 세계 스올로 빠져들어가게 되면 다시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되돌아 올 수가 없으며 더구나 하늘의 처소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진술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욥의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부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제가 스올로 내려가기 전에 저에게 잘못 적용되고 있는 이 형벌을 거두어 주십시오”;

둘째로, “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3.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7:11-16);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욥의 절규가 비참하며 극도로 처절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해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전신에 종기가 발생하여 고통 가운데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욥이지만 그의 아내가 차라리 여호와를 욕하고 죽음의 징벌을 받아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을 때에 전혀 동의를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2:9-10). 그 이유는 숨을 거두기 전에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서 자신의 무죄함을 밝히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의 인내에 한계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드려도 여호와께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오지를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제는 영혼의 고통이 더 크므로 도저히 더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내가 세상의 악한 나라들과 같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괴물도 아닌데 어찌하여 나를 격리시키고 전혀 돌아보지 아니하십니까?”(7:11-12의역).

(2)  13.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전신의 종기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유일한 시간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마저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아니하고 계신다고 욥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꿈속에 나타나셔서 나를 잠 못 들게 하시며 악인과 죄인에게 내리시는 형벌을 환상 가운데 느끼게 만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두려운 형편을 욥이 절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본문입니다.

(3)  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는 욥의 진술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영혼의 고통이 극심하니 부디 자신에게 죽음을 허락하여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것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영원한 죽음을 달라고 하는 간청입니다. 이제는 여호와의 종이 아니라 헛된 세상의 종이 되어 죄악 가운데 눈을 감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 영육 간의 고통에서는 벗어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와 같은 극심한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욥에게 그 다음의 단계인 영적인 인식의 전환이 주님의 은혜로 찾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다음 절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셋째로,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7:17-20);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욥에게 어째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크게 관심을 두시고 그를 엄밀하게 감찰하고 계시는 것일까요?(17절과 19) 욥을 신앙 훈련시켜서 어디에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18) 하나님께서 욥을 목표로 하여 그의 모든 소유물과 자녀까지 사라지게 하시고 집중적으로 그 신앙의 흔들림을 관찰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7:20b) 마침내 욥의 생각이 깊은 영적인 경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놀라운 인식의 전환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욥은 하찮은 자신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뜻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7:20a). 하지만 차제에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것은 샘플링(sampling)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여 인류를 대표하는 족속으로 삼고서 그들의 여호와신앙의 흐름을 감찰하시는 것과 같습니다(19:3-6);

만약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언약에 충실하면 그들에게 배분하여 준 약속의 땅 가나안의 기업이 굳건하게 지켜집니다. 그 반대로 행동하게 되면 선민들은 자신들의 기업을 잃어버리고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방인 원주민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서 쫓겨난 것과 동일한 처벌입니다(15:16, 8:19-20, 왕하21:11-13).

그러므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그 잘못에 대한 징계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동방 우스 땅에 살고 있는 욥은 이방인 가운데 여호와신앙인으로 선택이 된 일종의 선민입니다. 그에게 밀어닥친 고난과 고통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만약 욥이 여호와신앙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게 되면 그에게 신원의 회복이 주어질 것이며 장차 욥의 선례를 따르게 되는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신원회복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신원회복의 비결이 욥기의 말미에서 기록되고 있습니다(42:9-10). 그것이 바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중보의 기도를 여호와께 올려드리게 되면 욥은 하나님과의 화해가 성립되어 그 신원이 회복됩니다(42:10). 그와 마찬가지로 장차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이게 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자녀의 권능이 주어질 것입니다(1:12-13, 1:8, 22:28-30).  

넷째로, “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7:21); 역설적으로 욥은 자신이 죽기 전에 부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속 시원하게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여 주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7:21b). 평생을 여호와신앙인으로 신실하게 살아온 욥의 공로를 인정하시고 죽기 전에 말끔히 누명을 벗겨 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7:21a).

그와 같은 욥의 간구가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내시고 음성으로 그와 대화를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38:1-2). 그런데 하나님의 자상한 설명을 듣는 도중에 욥이 영적으로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의인인 줄로만 알았던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에 비추어 보니 형편없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42:3). 그래서 죄인인 자신을 깨닫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있습니다(42:6);

 그와 같은 진정한 회개와 화해의 길이 본문에서부터 모색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7:21).  

결론적으로,  본문은 욥기 전체 내용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주 본문의 내용을 음미하시면서 욥기의 전체 주제와 관련하여 욥의 영적인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묵상이 오늘날 필요한 이유는 자칭 의인 욥이 진정한 의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비결이 저와 여러분에게 요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인생 가운데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밀어 닥치고 있는 환난의 두려움을 욥이 어떻게 벗어나고 있는지 거듭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진정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삶이 무엇인지를 욥기를 읽으면서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본문을 음미하시면서 그와 같은 많은 영적인 깨달음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