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9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25. 22:33

이사야 강해 제91(19:16-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910()

 

이사야가 이방나라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 애굽 제국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유(19:16-22)

 

선민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유대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방나라의 대표격인 애굽 제국은 멸망의 대상입니다. 그 옛날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처럼 부려먹었으니 애굽 제국의 앞날이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징계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분노로 결국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본문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애굽 제국이 회개를 하고 먼 훗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성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그 동안 전개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그것은 사람의 능력과 심성으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도 어려운데 어떻게 전혀 새로운 모습의 세상을 만들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일은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여호와로부터 시작이 되고 진행이 되며 그 결과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하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1:36). 그렇다면 그 일을 실시하고자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비책’(秘策, know-how)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사야가 이미 제11장에서 선을 보인 바 있는 두 개의 하나님의 깃발’(11:10, 12)과 관련된 일일 것입니다.

이사야의 선지서는 다가오는 메시아의 시대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관하여 많은 예언을 싣고 있습니다. 우선 본문에서는 애굽 제국과 같은 이방의 세계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지 그 점부터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본문의 각 구절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자 합니다;

첫째로,그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19:16);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바 그날은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때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애굽의 행동과 전혀 반대가 되는 일이 다음과 같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을 대하는 기존의 애굽 제국의 태도는 출애굽기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지만 바로와 그 신하들은 끄떡도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요구사항인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이 바로에 의하여 받아들여질 때까지 불가피하게 열 가지의 재앙이 애굽 땅에 임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존 애굽 제국의 태도는 완강하고 완악한 바로와 그 신하들의 모습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7:22, 9:34).

(2)  그런데 이사야는 전혀 다른 상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와 그 신하들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연약한 부녀자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녀자로 상징이 되고 있는 애굽 제국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엄청 두려워서 떨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와 같은 변화가 도래하고 있는 것일까요?

둘째로,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19:17); 애굽 제국이 부녀자처럼 하나님의 징계 앞에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것은 선민 유다 왕국 때문입니다.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은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고 있다고 소문이 난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앗수르의 침략으로 절단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신바벨론의 침략으로 아예 멸망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이 그 일이 이방세계의 멸망의 신호탄이 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29). 하나님께서 자기 자식부터 잘못을 범했다고 강력하게 처벌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방인들을 똑 같은 방법으로 사정없이 징계하실 것입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로 회초리를 드신 창조주 앞에 이제는 모두 죽었다고 복창을 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셋째로,그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19:18); 모세에 의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한 이후 고센 땅에는 동방족속의 침입을 저지하는 도시가 세 개 재정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라암셋(1:11), 소안(19:11), 놉인 멤피스(19:13) 등입니다.

그런데 미구(未久, 오래지 아니하여)에 앗수르의 침입이 있게 되면 유다 왕국은 예루살렘 성만 제외하고 전국이 적의 말발굽아래 짓밟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유다의 피난민들이 애굽의 동북면 국경지역인 고센 땅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일종의 난민촌이 그곳에 형성이 됩니다. 그 다음 신바벨론에 의하여 유다 왕국이 망하게 되면 더 많은 난민들이 애굽의 고센 땅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 결과 이사야는 하나의 성읍이 더 추가가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멸망의 성 또는 태양을 섬기는 멸망의 성으로서 일명 태양성’(Heliopolis)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다섯 개의 성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훗날 큰 성읍 하나가 더 등장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입니다. 그 도시는 훗날 히브리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구약말씀이 70인의 유대인 히브리정경 학자들에 의하여 세계의 학문적 공용어인 헬라어로 번역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지니고서 헬라철학과 히브리사상의 연구센타가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중에는 복음연구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그 다섯 성읍이 모두 장망성’(將亡城), 곧 장차 망하게 되는 운명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의미를 은근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사람이 만든 도시 역시 장차 멸망의 대상에 불과합니다. 그 사실을 진작에 창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mortal body)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26).

그 의미를 풀이해보자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철저하게 깨닫는 자가 비로소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부디 구원과 영생을 달라고 간절하게 매달리게 됩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그 옛날 셋의 가계 에노스의 집안에서 있었듯이 이제는 장망성을 바라보는 히브리 사람과 애굽 사람들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그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19:19); 멸망의 대상인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구원의 대상이 될 수가 있을까요? 율법에 의하면 번제단을 만들고 창조주 하나님께 죄 사함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1:4).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그 속죄의 제사가 애굽 제국의 수도에서 장차 있게 될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수도뿐만이 아닙니다. 제국의 전역에서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그 옛날 야곱처럼 서원의 제단을 마련할 것입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28:17-22).

풀이를 해보자면, ‘루스와 같은 멸망의 도시가 영생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구원의 장소 벧엘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은혜가 이방나라 애굽 제국에 있게 될 것이라고 힘있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19:20); 매일같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을 바쳐 속죄와 화목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선민들의 유다 왕국조차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야곱의 제사나 율법에 의한 제사를 드려보아야 헛것이며 결국은 멸망에 이르고 말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가 이상하게도 훗날 애굽의 땅에 있게 되는 제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애굽의 제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유다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 유대교인들의 전통과는 다른 형식의 새로운 제사의 방법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방나라인 애굽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제단이나 율법에 의한 제사의 방법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 영생의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다짜고짜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살려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애굽 땅에 보내어주십니다. 훗날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이사야가 그와 같이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좀 이상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당시 애굽 땅을 밟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이사야는 애굽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활동은 가나안 일대에 국한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죽음과 부활의 역사는 주님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으로 확장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생의 하나님께서 만민구원의 시대를 여시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그 일에 대하여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피조물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섯째로,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19:2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며 복음입니다(17:3). 하나님께서 장차 전개하시는 그 구원의 방도는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만민구원의 뜻과 방법이 장차 애굽 인들에게도 전파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애굽과 만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애굽 사람들이 알게 되면 새로운 역사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장차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구원의 은혜를 갚아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훗날의 역사를 보면, 그것이 애굽 곱틱 교회의 탄생이며 애굽인 성도들의 복음전파입니다. 참고로 일설에 따르면, 복음서의 저자인 마가가 훗날 곱틱 교회의 수장으로서 그 일에 크게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일곱째로,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시리라”(19:22);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애굽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노예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는 선민을 구원하시고 애굽과 같은 이방인을 심판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이 대목에서 이사야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마디로, “고치시기 위하여 치신다는 것입니다”(19:22).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누구나 징계 가운데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듭난 인생으로 고쳐주심으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의인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그것이 참으로 크나큰 은혜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애굽 제국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애굽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점을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19:20)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에 이사야는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19:22).

그 은혜로 오늘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과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방인 출신인 저와 여러분들이 속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 은혜가 온 세상에 충만하도록 앞장을 서야만 할 것입니다. 요컨대, 그와 같은 의미를 폭넓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애굽 제국에 대한 본문 이사야의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나없이 마땅히 복음을 생활화하고 그리스도를 널리 전하는 인생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