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89강(사19:5-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9월 8일(화)
애굽 제국을 치시는 여호와의 두 번째 징계의 내용(사19:5-10)
이사야는 총 32개의 왕조를 이루며 수천 년간 계속이 된 ‘애굽 제국’(帝國, empire)을 이방나라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제14장에서 바벨론 제국에 대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의 하수인으로 간주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제19장에서 애굽 제국에 대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대표적인 이방인들의 제국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애굽 제국이야말로 제국이 분열이 된 시기 곧 ‘중간기’(中間期, interim period)가 몇 차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통일왕조들이 번갈아 가면서 넓은 영토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했던 가장 오래된 제국입니다. 애굽 제국은 오랜 세월 비옥한 나일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세 나라 애굽, 수단, 이디오피아를 주축으로 하여 동아프리카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의 주변국들, 그리고 북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등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거대한 제국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면서 국리민복(國利民福)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애굽 제국과 같은 세상의 제국이 망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크게 보아 세 가지의 방법으로 중 징계하실 것이라고 제19장 전반부에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1) 내부공작을 통하여 정치적 통합과 정신전력을 약화시켜버릴 것입니다(사19:1-4). 곧 제국 내에 내부분열을 일으키고 제국에 대한 자부심이 사라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바벨탑을 붕괴시킨 것과 같습니다(창11:1-9).
(2) 재앙을 내려서 경제력을 약화시켜버리는 것입니다(사19:5-10). 풍요의 상징인 나일 강이 마르도록 할 것이며 지중해와 홍해 등이 부의 통로로서 사라지는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사19:5-10).
(3) 왕과 신하들의 머리를 어둡게 하여 정책의 실패를 거듭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사19:11-15). 곧 정치지도자와 행정관료들이 어리석은 정책결정을 하도록 그 지혜를 어둡게 만들어버리시는 것입니다(사19:11-15).
본문은 그 가운데 두 번째 징계 곧 경제력의 약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제 다음과 같이 한 구절씩 검토하면서 그 깊은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사19:5); 이 구절과 제65장에 있는 일부 이사야의 예언은 사도 요한의 계시록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세상의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이사야는 세상의 종말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다고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사65:17-19). 그러므로 이사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창조의 신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시는 재창조의 신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 대목은 그 정도의 예언만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이 오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계속 오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나라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섭리가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본문의 내용은 그와 같은 역사적인 개입과 자연재해의 발생이 상징적으로 먼저 애굽 제국에 나타날 것임을 밝혀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한국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애국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는 한반도를 동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동해바다의 물이 모두 마를 때까지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 백두산의 흙이 모두 닳아 없어질 때까지 하늘에 계시는 창조주께서 부디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하는 간절한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애국가 가사대로만 신앙생활을 영위한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세상나라인 애굽 제국에는 그와 같이 창조주를 경외하는 신앙이 없습니다.
사실 바닷물이 없어지고 강이 자꾸만 말라가게 되면 물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죽고 맙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하늘과 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생물들을 어떻게 다시 살리시는 것일까요? 계시록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와 강을 이루게 됩니다(계22:1-2). 그 강물을 마시면서 생명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그 나무의 잎과 열매를 취함으로 만국이 치유함을 받으며 믿는 자들이 영생을 누리게 되는 천국의 모습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와 같은 종말심판이 있기 전에 자꾸만 바닷물과 강물에 재앙이 밀어 닥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재앙이 하나님의 역사심판의 일환임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는 당시와는 조금 다른 구체적인 설명이 다음 절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항목을 바꾸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둘째로,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사19:6); 나일 강에서 악취가 풍기는 재앙이(사19:6a) 발생한 사례가 이미 출애굽기에 있습니다.
(1) 그것이 이른 바 애굽 제국에 임한 첫 번째 재앙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7:20-22).
(2) 당시의 재앙의 특징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애굽의 나일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마실 수 있는 강물이 농도가 짙은 용액인 핏물로 변하게 되자 삼투압 현상이 거꾸로 발생하게 됩니다. 즉, 물고기가 강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강의 핏물이 물고기의 물기를 밖으로 뽑아 내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물고기가 말라서 떼죽음을 당하고 썩어감으로써 악취가 진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부패해가는 강물을 사람들이 도저히 마실 수가 없게 됩니다.
(3)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애굽의 요술사들도 요술로 그 같은 현상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그 말은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1) 고대의 요술사들은 오늘날의 과학자와 비슷합니다. 그들이 그 옛날 선사시대로부터 전해오는 비상한 능력으로 강물을 농도가 짙은 핏물로 바꾸는 기적을 연출한 것입니다.
2) 애굽 제국이 고대사회이기는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여 일부 공업이 발전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강물이 공장의 폐수로 말미암아 오염이 되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어떤 모양으로 해석을 하든지 간에 나일 강물이 오염이 되고 있다는 것은 재앙입니다. 특히 나일 강물을 이용하여 농업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있는 애굽 제국의 입장에서는 식량자급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4) 물고기가 죽고 식수와 공업용수가 부족해지는 것 외에도 그 재앙은 나일 강변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 곧 ‘갈대’와 ‘부들’(갈대와 비슷하지만 키가 더 작고 더 부들부들한 강가의 식물)이 시들어져 말라버리는 비극을 연출하고 있습니다(사19:6b). 먹을 식물이 시들어버리니 가축과 짐승들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입니다. 한 마디로 그 특징은 연쇄적인 먹이사슬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 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려가 없어질 것이며”(사19:7); 나일 강물에서 악취가 나고 강물이 줄어들어버리자 그 재앙은 즉시 강변의 곡식 밭과 초장에 미치고 있습니다. 물이 있어야 농사를 짓습니다. 강물을 사용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태반의 농사가 폐농이 되고 있습니다. 벼가 자라지를 못하고 말라서 종내에는 바람에 날려가 버리게 됩니다(사19:7b). 푸른 초장이 사라지고 마른 풀만이 바람에 풀풀 날리고 있을 따름입니다(사19:7a).
넷째로, “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 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마다 슬퍼하며 물 위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사19:8); 나일 강에서 악취가 풍기며 크게 가뭄이 들어 강물이 바닥을 보이게 되자 물고기 떼가 모두 죽어버리게 됩니다. 그 때문에 강가의 어부들은 생계가 막막해지고 있습니다. 기아에 시달리며 죽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베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사19:9); 고대 애굽 사회에서 옷감은 주로 식물인 삼나무에서 추출을 했습니다. 나일 강변은 물이 풍부하여 농사도 잘 되고 밭에서 삼나무도 잘 자라는 고장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출9:31-32).
나일 강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 밀과 보리 그리고 쌀보리 등 주곡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삼나무를 재배하여 옷감의 재료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일 강물에 재앙이 발생하자 옷감생산의 재료인 삼마저 재배가 불가능해지고 맙니다. 애굽 사람들은 베틀 앞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양질의 세마포와 삼베생산이 거덜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옛날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에는 나일 강변에 7년 연속 풍년이 들어 인근국가의 백성들까지 먹여 살렸던 자랑스러운 애굽 제국입니다(창41:53-57, 50:20).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로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곡’(主穀) 뿐만 아니라 ‘옷감’마저 외국에서 수입을 해야만 하는 수치스러운 형편에 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사19:9).
여섯째로, “그의 기둥이 부숴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사19:10); 고대사회는 한 마디로 농업사회입니다. 농업생산력이 그 나라의 국력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산업근대화 직전까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가 나라경제의 근간임)이라는 말까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제국인 애굽에 벌을 내려서 나일 강물을 부패하게 하고 말라버리게 하자 제국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가 되고 있습니다. 그 모양을 이사야는 “애굽 제국의 산업기반이 무너지고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 일꾼마저 다 굶어 죽을 것만 같아서 걱정이 태산이다”(사19:10 의역)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고대사회인 애굽 제국뿐만이 아닙니다. 이사야가 그와 같은 예언을 하고 있던 주전 8세기뿐만 아니라 2,700년이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주후 21세기에도 그러합니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달 세계의 정복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재해가 발생하고 농업생산이 충분하지가 못합니다. 따라서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인류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풍요로운 나일 강변의 나라 애굽 제국에 찾아 들고 있는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만 합니다. 당시의 애굽 제국은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적인 꾀와 무력으로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왕조들입니다. 요컨대, 한번도 창조주를 창조주답게 대접한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당시에 애굽 제국을 멸망시키지 아니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뜻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바로와 그 신하들은 완악합니다. 그대로 역사가 진행이 된다면 그들은 주전 5세기에 드디어 페르시아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애굽 제국에 강력하게 경고를 하시고 있습니다. 제국이 정치적으로 분열하고 경제적 기반이 송두리째 절단이 나기 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풍요의 상징인 나일 강에 악취가 나고 강물이 가뭄에 말라간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징계가 크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경고는 오늘날 세상적인 방법으로 일관되게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 모든 위정자들에게 주고 있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우외환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겸허하게 자기성찰을 해야만 합니다. 그 가운데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강한 손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그 결과 무엇을 개혁하고 창조주의 뜻을 실천해야만 하는지 합의를 이루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정책결정을 해나갈 때에 비로소 나라가 살고 민족이 다시 사는 새로운 역사가 전개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위로부터 임하기를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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