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86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22. 13:12

이사야 강해 제86(18: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95()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단 두 절의 본문에 대하여(18:1-2)

 

적어도 다음 세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앗수르 산헤립 군대를 막기 위하여 당시 애굽 제국을 통치하고 있던 구스의 왕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내고 있는 장면으로 보는 경우, (2) 반대로, 애굽의 통치자 구스의 왕이 히스기야 왕에게 앗수르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동맹을 제안하는 사절을 보내고 있다고 보는 경우, (3) 무력으로 애굽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구스의 왕이 동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의 군대를 끌어 모으고자 사절을 보내고 있는 경우 등입니다. 이제부터 본문을 자세히 검토하면서 세 가지의 경우를 따져보고자 합니다;

첫째로,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18:1);

(1)  먼저 구스’(18:1)의 의미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고대문명은 큰 강의 유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개의 큰 강이 만나고 있는 넓은 삼각주 지역은 비옥한 땅이며 그곳을 지배하는 민족이 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그러한 입지는 두 곳입니다;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강 유역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크리스 강이 만나고 있는 삼각주입니다. 그곳에서 고대 바벨론 제국이 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디오피아에서 발원하고 있는 청나일 강과 우간다 쪽 빅토리아 호수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백나일 강이 수단에서 만나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곳에 애굽 제국이 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2)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로 보고 있지만 고대의 개념은 약간 다릅니다. 대 애굽 제국을 여러 차례 지배하게 되는 나일 강 상류의 왕조를 통칭하여 구스라고 간편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애굽 제국을 주로 통치한 왕조는 나일 강 하류에 살고 있는 애굽 인들의 왕가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디오피아의 구스 인과 수단의 누비아 인들이 힘을 합쳐서 애굽 인들을 물리치고 전체 애굽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3)    본문과 같은 예언을 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는 구스 인과 누비아 인들이 애굽 제국을 통치하고 있었던 애굽 제25왕조(BC 740-656)의 시대입니다. 참고로, 역사학자들은 당시 누비아 인들이 지배세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경의 역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누비아가 아니라 구스라고 보고 있습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왕하19:9).

(2)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18:1b)은 어디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한국어성경 개역개정판처럼  건너편’(beyond)이라고 보고 있는 경우(KJV)가 있고 둘째, ‘강줄기’(along)라고 보고 있는 경우(NIV)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번역이 더 정확할까요? 그것은 날개를 치는 소리가 나는 땅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해결이 될 문제입니다;

1)    날개 치는 소리가 무엇일까요? 새들이 날개를 치는 소리일까요? 그러한 의미보다는 군사들의 병장기 소리가 요란하다는 뜻으로 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메뚜기 떼들의 날개소리가 요란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2)    그 두 가지의 경우를 합해본다면 그 지역은 풍요로운 곳으로서 메뚜기 떼들이 날아와서 먹을 것이 많은 곳입니다. 그리고 훈련이 잘된 군사의 수가 많은 지역입니다. 고대 애굽 제국에서 그러한 지역이 과연 어디일까요?

3)    언뜻 보면, 그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예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애굽 제국 삼각주 바로의 땅을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당시 메뚜기 떼 재앙이 있었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을 홍해가로 매섭게 추격해오던 위풍당당한 바로의 군대의 모습을 연상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10:12-15, 14:6-10).

4)    그러나 구스의 강이 먼저 언급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적습니다. 오히려 이디오피아 강 건너편에 있는 동아프리카 여러 민족을 지칭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큰 가능성은 누비아 인들의 땅입니다. 왜냐하면, 구스의 강을 따라서 내려가면 수단의 누비아 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5)    그렇다면 여기서 소 결론을 맺어보자면 이사야는 당시 애굽을 통치하고 있는 구스와 누비아 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전하고자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3)  이사야는 왜 슬프다”(18:1a)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일까요? 구스와 누비아 인들의 땅이 장차 멸망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점은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앗수르 제국 산헤립 황제의 군대가 거의 몰살을 당하고 물러가고 말기 때문입니다(왕하19:35-36). 그러므로 먼 훗날 페르시아 제국에 의하여 애굽 제국이 망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전 525년경의 일입니다.

둘째로,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18:2a); 누가 갈대 배를 띄워 사자를 어디로 보내고 있는 것일까요? 세 가지 경우를 들 수가 있습니다;

(1)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원군을 청하고자 애굽의 바로 구스 왕에게 사자를 보내고 있는 경우입니다.

(2)   반대로 애굽의 바로 구스 왕이 앗수르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고자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고 있는 경우입니다.

(3)   바로인 구스가 제국 내의 여러 왕들에게 사자를 보내고 있는 경우입니다. 과연 어느 경우가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해석일까요? 다음 구절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셋째로,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18:2b); 사자들이 전해야만 하는 황명이나 왕명이 매우 긴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첩한 사절들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향하고 있는 목적지를 이사야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 왕국과 애굽 제국 가운데 어느 쪽이 그러한 표현에 합당한 나라일까요?

(1)  당연히 애굽 제국입니다. 큰 강 청나일과 백나일이 합쳐서 수단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하류인 애굽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애굽 내에서도 나일 강의 여러 지류가 나누어서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 왕국에도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작은 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시내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2)  따라서 역시 가장 합당해 보이는 나라는 누비아 인들이 살고 있는 수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청나일과 백나일이 합쳐지고 있으므로 역으로 큰 강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말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유추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그 다음 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넷째로,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18:2c); 애굽 제국 내에서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이며 시초부터 이웃나라에 크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비아 인들이며 오늘 날 수단 사람들입니다. 피부는 검지만 매끈매끈합니다. 그들을 동원하여 전쟁터로 나가기 위하여 애굽의 바로인 구스의 왕이 급히 친서를 보내고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강을 따라 경쾌한 갈대 배를 띄우고 있습니다. 바로의 사자들은 민첩하여 빠르게 배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 결론을 맺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에게 친서를 보내어 왔습니다.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침입이 예상이 되므로 원군을 보내어 달라는 것입니다. 구스 왕은 사안의 급함을 인지합니다. 따라서 나일 강에 가벼운 갈대 배를 띄워 급히 사자를 누비아로 보내고 있습니다. 장대하고 준수하며 용맹이 뛰어난 그들 병사들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애굽의 바로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는 전제가 신앙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사야를 포함하여 선지자들은 일관되게 다음과 같이 달리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나라의 원군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웃 강대국의 힘을 빌려서 적을 물리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강대국의 그늘에서 제사장나라가 당당하게 제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강대국의 힘보다 약한 하나님을 누가 의지하고 믿겠습니까? 그리고 위기 때마다 이웃 강대국의 도움만을 구하고자 하는 백성은 자립형 신앙인의 모습이 결코 아닌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째로, 달리 해석을 하는 경우가 또 하나 있습니다. 신앙상 교훈을 더 확실하게 주고 있는 추론입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이 바닷길로 빠른 갈대 배를 띄워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급히 친서를 보내어 왔습니다. 그 내용은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황제가 아람 왕국과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한 후에 이제는 남조 유다와 블레셋 등을 치고 이어서 애굽 제국을 치고자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군사동맹을 맺어 그 야욕을 격퇴하자는 것입니다.

(2)  이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외치고 있는 내용이 본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바뀌게 됩니다; “애굽의 사자들은 빨리 너희들의 나라로 되돌아 가라. 여러 강들이 흘러 풍요로우며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들이 있어 강력한 군대를 가진 애굽 제국의 황제 바로에게 전하도록 하라.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 곧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실 것이니 세상적인 군사동맹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전하도록 하라”. 한 마디로,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이 선지자 이사야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가 꿈꾸고 있는 그와 같은 하나님신앙이 오래 지속되지를 못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구에 앗수르 군대의 재침이 있게 되면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잠시 적을 물리치는 신앙의 승리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자신들의 신앙심과 능력으로 강력한 적군을 물리친 줄 착각하고서 다시 교만하고 거만해져 버릴 것입니다(왕하20:12-19).

그리하면 본문 구스의 애굽 제국처럼 종내에는 슬픈 역사를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왕하21:11-16). 따라서 본문 이사야의 예언은 슬프다!로 시작하고 있으며 그 끝도 의미상으로 슬픈 역사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의 본이 필요합니다. 그 반석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이사야의 예언은 그 반석을 찾아서 메시아 예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