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74강(사14: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8월 24일(월)
만민구원사상과 선민우월사상의 중간에 서있는 이사야의 예언에서 새삼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 복음의 은혜(사14:1-4)
이사야가 기록한 대선지서는 장차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가장 많이 예언하고 있다고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를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에 이사야 예언이 지니고 있는 한계점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선지서 이사야는 총 66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신구약 성경이 도합 66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리고 39장까지는 구약적인 요소를, 제40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27장은 신약적인 요소를 많이 기록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메시아의 오심과 만민구원사상에 대하여 참으로 많이 기록하고 있는 예언서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언함에 있어서 이사야의 형편과 그의 인식이 지니고 있는 한계점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사14:1);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들이 출애굽 이후 선민으로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며 선민의 우월성만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제사장나라가 망하고 거룩한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흩어지고 맙니다.
1) 그렇지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훗날 이스라엘을 다시 선민으로 선택하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2)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방족속들이 구원을 얻자면 야곱 족속과 다시 연합하고 이스라엘에게 예속이 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우월사상을 다시 부르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3) 그러한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 훗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 가운데 유대주의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반드시 이스라엘 민족과 연합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연합의 방법이 할례를 받으며 율법을 준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4)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인위적인 차별을 폐지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서의 복음이 완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두 말하고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복음의 은혜는 이사야의 예언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이방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사14:2); 이방인을 선민과 구분하고 차별하던 유대교인들의 결점이 재현이 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선민들의 종이 되는 시대가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선민을 괴롭히던 나라와 백성들은 모두 선민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미래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을 복음으로 구원하고 선민 이방인이라는 차별을 철폐하고자 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3) “(3) 여호와께서 너(이스라엘)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사14:3-4);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게 되는 신바벨론 제국이 장차 당하게 되는 하나님의 보복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바벨론은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요컨대, 제사장나라를 괴롭히는 나라의 말로를 심히 통쾌하게 여기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둘째로, 이사야가 구약시대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 구약시대의 선지자로서 주전 8세기를 전후하여 다윗 왕조 유다 왕국에서 선지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7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선포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미래지사를 일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에게 알려주시지만 그것은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한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듣고 보게 되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에 비하면 엄청 그 정보가 부족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선지자가 하나님을 예방하게 되면 시공간을 뛰어넘는 예언과 계시의 말씀을 전달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전하게 되는 당사자가 아직도 구약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서 선지서의 기록을 음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이사야가 선민출신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사야는 선민인 동족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의 입장에서 선민들이 알아 듣기 쉽도록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구원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처지와 형편에 대해서 동정적이거나 긍휼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이사야가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며 모든 족속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미래가 전개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민의 회복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 신약시대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리스도가 전하고 있는 만민구원사상을 온전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이사야 예언은 선민의 회복과 영광을 노래하면서 이방인들을 장차 종으로 삼는다고 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곧 선민의 영광으로 국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선민우월사상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메시아의 오심과 신약적인 내용을 많이 예언하고 있다고 하는 이사야의 선지서가 그 정도의 내용에 머물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하지만 이사야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기 700년 전의 선지자이며 선민사회의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는 사실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선민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먼저 인식하고 그의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어쩔 수 없이 유대교사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제약을 생각하면서 그의 선지서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그것을 학문적으로는 ‘간주관성’(間主觀性, subjective objectivity)의 문제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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