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5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7. 15:29

이사야 강해 제54(9: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84()

 

북조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완전히 패망을 당하기 전에 아직도 남아 있는 구국(救國)의 방법 하나(9:11-14)

 

본문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예언입니다; 첫째, 하나님신앙을 떠난 백성에 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하시며 끝내 멸망시켜버리시는 두려운 여호와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는 예언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신앙을 떠난 백성에 대하여 분노하시며 징계를 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팔을 벌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예언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9:12d)는 구절에 대한 풀이가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손이 징계를 계속하시고자 펴져 있는 것이냐? 아니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을 맞이하기 위하여 펴져 있는 것이냐?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좀더 알아보기 위하여 먼저 히브리어의 뜻을 가장 잘 살리고 있다는 킹 제임스 번역본’(KJV)과 구미의 교회에서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이 되고 있는 뉴 인터내셔날 번역본’(NIV)의 표현을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킹 제임스 번역본에서는 본문 제12절 끝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For all this his anger is not turned away, but his hand is stretched out still). 그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신앙을 버린 이스라엘 왕국에 대하여 여호와가 진노를 거두지 아니하시지만 그러나 여전히 손을 펴시고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풀이가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접속사 but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이사야 제65장 제2절에서 다음과 같은 유사한 표현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I have spread out my hands all the day unto a rebellious people). 한 마디로,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같습니다(15:20, 10:21).

둘째로,뉴 인터내셔날 번역본에서는 똑 같은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Yet for all this, his anger is not turned away, his hand is still upraised). 그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신앙을 버린 이스라엘 왕국에 대하여 여호와가 진노를 거두지 아니하시며 징계의 손을 계속 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선지서의 3단계 구성 가운데 마지막 단계가 사라지고 맙니다; (1) 하나님신앙을 떠나서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는 선민들의 타락상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이 첫 번째 요소입니다. (2) 계속 그렇게 살다가는 하나님의 분노와 징계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 두 번째 요소입니다. (3)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되면 항상 손을 벌리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다시 맞아 주실 것이라는 메시지가 세 번째 요소입니다.

셋째로, 복음적인 입장에서 본문을 이해하자면 킹 제임스 번역본의 해석이 더욱 호소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대하여 징계를 하시지만 속으로는 그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멸망을 당하기 전에 여전히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본문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에브라임 출신 초대 왕 여로보암1세 때부터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기기를 시작합니다. 도중에 잇사갈 왕조로 바뀌고 사마리아에 천도를 하고 나서는 더욱 타락을 합니다. 바알 신을 주신으로 섬기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우상의 하나로 취급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람과 블레셋 등 이웃나라를 동원하여(9:11b-12a)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징계합니다(9:12b). 하지만 그 징계 가운데에는 백성들이 하나님신앙을 회복하고 돌아오기를 지극히 원하시는 여호와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이사야가 그 사실을 여전히 손을 벌리고 계시는 하나님”(9:12d)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앗수르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당하기 전에 여전히 하나님께 돌아와서 구원을 얻을 기회가 개방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러나 교만하고 완악한 북조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은 그 마음을 돌이키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더욱 진노하십니다(9:12c). 그 결과 드디어 르신의 대적 곧 앗수르 제국으로 하여금 아람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을 침략하게 합니다(9:11a). 마침내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모두 상실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비극을 맞이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는 본문의 내용입니다(9:13-14).

(3)  그러므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완전히 말살이 되고 마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 마음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보다는 국가를 보전하고 권력을 유지하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금송아지 우상으로 여호와를 대신했으며 부귀와 장수를 위하여 이방 신을 섬겼습니다. 둘째, 끝까지 자식과 같은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편 팔과 손을 바라보지를 아니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라도 남조 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처럼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어 달렸더라면 북조 이스라엘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마지막 회심의 기회마저 헌신짝같이 버려버린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입니다. 따라서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주전 722년에 패망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윗처럼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눈을 들어 하나님의 편 팔과 손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의심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차제에 선지자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부르짖음을 미리 음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65: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