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5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7. 05:51

이사야 강해 제53(9: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83()

 

두 개의 제사장나라 가운데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 이유(9:8-11)

 

세상나라와 제사장나라는 무엇이 다를까요? 바꾸어 말하자면, 이방인과 선민은 무엇이 달라야만 할까요? 기본적으로, 세상나라는 인간이 만든 법률체계로 다스려져 나갑니다. 그러나 제사장나라는 하나님이 만들어 준 율법체계로 다스려져 나갑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만든 법률체계와 하나님이 준 율법체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질문은 율법의 취지가 무엇이냐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일반적인 세상의 법률이든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든지 간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입법의 취지를 먼저 선포하고서 구체적인 법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입법취지는 어디에 적혀져 있을까요? 구체적인 율법을 기록하기 직전에 적어두고 있습니다. 곧 출애굽기 제20장입니다. 그곳에는 크게 보아 10계명참된 제사의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죽기 전에 자신이 전해준 율법의 취지에 대하여 신명기 제10장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0:13).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가 바로 율법인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하고 있는 십계명참된 제사의 규정을 묵상해보면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1) 십계명의 뜻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그 마음으로 부모와 형제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면 인간사회가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2) 백 년 이상 세상제국 애굽에서 노예와 같은 억눌린 삶을 영위했던 이스라엘의 자손들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이 세상나라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율법을 주어 제사장나라로 살아가게 만들고 있습니다(19:4-6). 그 뜻은 압제와 착취를 당하면서 살아온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한 삶을 모범적으로 영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백성들은 압제를 당하고 있는 자를 해방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라도 착취를 해서는 안됩니다. 설혹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단을 쌓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조심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소위 참된 제사의 규정입니다.

(3) 구체적으로, ‘참된 제사의 규정에서 세 가지를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냥 흙으로 소박하게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20:24). 구태여 무거운 돌을 옮겨와서 제단을 쌓는 수고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둘째, 그래도 돌로 제단을 쌓고 싶은 경우에는 다듬은 돌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20:25). 그 이유는 애굽에서 제단과 신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마치 노예와 같이 큰 돌을 운반하고 다듬었던 그 억압과 착취의 시절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뜻입니다(1:11). 셋째, 흙으로 쌓더라도 토단을 높이 쌓지 말라는 것입니다(20:26a). 왜냐하면, 종교지도자가 높이 층계를 올라 다니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권력을 과시하면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것이 부끄럽고 추악한 권력의 속성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20:26b).

이상과 같은 율법의 취지를 깨닫고 본문을 들여다보게 되면 다음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9:8); 율법의 취지를 먼저 선포하시고 그러므로 율법을 준수하라고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씀을 따라 행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온 세상에 복을 전해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를 섭리하기를 원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사마리아 주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9:9);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그것을 준수하는 경우에 얻게 되는 축복에 대하여 모세오경을 통하여 잘 알고 있는 자들이 바로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축복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적인 제국의 논리와 권력의 지배가 훨씬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보다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본문의 내용에 대하여 설명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보다 자신들의 생각이 더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부터인가 세상살이에 있어서 하나님의 생각이 별로 효과가 없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사울 왕과 비슷합니다. 구체적으로, 전쟁은 급한데 정식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대제사장 사무엘을 기다리는 절차가 비효율적이며 시간낭비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사무엘 대신에 사울 왕이 나서서 빨리 제사를 드리고 전투에 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옳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삼상13:9).

(2)  완악하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두렵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존재나 죽은 다음의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평생 이름을 날리고 떵떵거리며 잘 살다 가면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적으로 굳어진 완악한 마음이 되고 나면, 모세의 오경과 선지자의 글을 읽어도 소위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읽기)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훗날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16:31).

(3)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선민들이 그 뜻을 바로 적용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만과 완악한 마음이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윗의 제국에서 분리하여 나간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그러합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출신인 초대 왕 여로보암1세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백성들에게 섬기라고 강요했습니다(왕상12:27-30). 레위 인 제사장들이 반대를 하자 아예 레위 지파가 아닌 자를 제사장으로 제멋대로 임명을 했습니다(왕상12:31-33). 그런데 여로보암1세의 뒤를 다음 세대 곧 잇사갈 왕조가 줄줄이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사마리아에 천도한 오므리와 아합의 왕가가 그러합니다(왕상16:23-33). 더구나 이방 신을 금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예후의 왕가마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문화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승하고 있습니다(왕하10:26-31).

셋째로,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 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들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의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9:10-11); 율법의 취지가 참된 제사의 규정에 잘 드러나 있다고 이미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힘과 품이 많이 드는 돌 제단보다는 쉽게 쌓을 수 있는 흙 제단을 쌓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기고 있습니다. 특히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왕가와 백성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벽돌로 쌓은 제단을 허물어버리시는 역사섭리를 하신다고 하면 자신들은 더 좋고 화려한 돌 제단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어기고 있으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 교만이며 완악한 마음입니다. 비싼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가장 화려한 단을 만들어서 대내외적으로 선민임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벗어나고 있는 그들에게 역사적인 심판이 임하고 있습니다; “이웃 (르신의) 아람 왕국을 비롯하여 작은 나라부터 큰 나라까지 모두 북조 이스라엘을 집어 삼키고자 군마를 동원하여 달려오는 전쟁의 역사가 발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9:11-12의 의미).

  결론적으로, 백성들의 행복을 증진하고 온 세상에 복을 전해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말씀과 율법을 선민들에게 위탁하시고 있습니다(9:8). 그 취지는 십계명참된 제사의 규정에 드러나 있는 그대로 압제와 착취를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는 그와 반대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 자신들의 생각이 더 현실적이며 옳다고 하는 교만이 싹트고 있습니다. 권력을 탐하고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고 이방의 문화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거듭 경고하시지만 그들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끊임없는 전란과 왕국의 멸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의 취지를 더욱 무시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패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9: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