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솔로몬이 노래하고 있는 사미인곡 한 대목(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2. 14:54

제목; “솔로몬이 노래하고 있는 사미인곡 한 대목”(4:1-5)

설교일; 주후 20216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62일 작성)

 

솔로몬 왕이 직접 지어서 부르고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인 아가는 과연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제국의 황제에 해당하는 솔로몬 대왕은 그의 통치 후반기에 무려 1,000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호화로운 황궁에서 온갖 향락을 누리고 있는 자입니다(왕상11:1-3);

그러한 향락을 누리고 있는 솔로몬 대왕이 한갓 지방의 미녀 술람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서 아가와 같은 절절한 사랑의 노래를 지어서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6:13). 그리고 만약 그와 같은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글이라고 한다면 율법학자들이 결코 히브리정경에 아가를 수록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솔로몬 왕은 아가에서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가 혹시 주후 16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선비인 송강 정철과 같이 자신이 섬기고 싶은 국왕을 그리워하면서 애절한 충성과 사랑의 마음을 그렇게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후 1585년에 정철은 당파싸움으로 인하여 고향인 전남 담양으로 낙향한 후 1588년에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지어서 한양에 있는 조선의 왕 선조에게 헌사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듬해 우의정에 제수가 되고 일약 서인의 영수로 엄청난 출세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경우에는 조선의 대신인 정철과는 그 입장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주전 10세기 중동지역의 패권국인 이스라엘제국의 황제이므로 그 당시 자신보다 더 높은 권력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연모와 사랑의 대상은 세상의 임금보다 더 아름답고 능력이 많은 창조주 여호와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어째서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사랑의 노래로 지어서 헌정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추정됩니다;

하나는, 40년 가까이 선민의 나라 이스라엘제국을 통치하고 보니 회한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지혜의 대왕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자신이 세상의 지혜와 향락만을 추구하였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만 노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어서 정철처럼 사랑의 노래를 지어서 여호와께 헌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선민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싶어하십니다. 그 점을 깨달은 솔로몬이 아가의 노래를 지어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사랑의 마음을 대신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솔로몬의 아가는 훗날 이 세상에 구원주로 오시는 그리스도와 성도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 것인지 이제부터 본문을 한 구절 씩 살펴보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머리털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4:1); 아가(雅歌)라는 사랑의 노래를 지어서 부르고 있는 자가 솔로몬 대왕입니다(1:1). 솔로몬의 아가는 겉으로 보면, 남녀 간의 애정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노년의 솔로몬이 지극한 애정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4:1a)라고 찬양하면서 그 사랑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자신의 백성들에게 아무쪼록 아가의 노래를 부르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여 그 속에 살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언제나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31).  

그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 제1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처녀가 혼인할 때에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을 너울 속에 감추게 됩니다(4:1b). 그러면 결혼식이 끝난 다음 신랑이 신방에서 신부의 너울을 벗겨줍니다. 그러한 사례를 리브가가 신랑감인 이삭을 들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에 자신의 얼굴을 너울로 가리는 장면에서 정확하게 엿볼 수가 있습니다(24:65);

1)    너울을 히브리어로는 차마’(צַמָּתֵ֑ךְ)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면박, 베일, 수건 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일을 벗기는 것이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영적인 의미로도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에 대하여 몹시 궁금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고전15:44)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주의 영(창조주의 부활의 영, 8:11)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5-18).

2)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게 되면 자연히 진리의 베일이 벗겨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말하자면 솔로몬 왕의 노래는 주님과 성도 사이의 만남과 진리 안에서의 구원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아름다운 영적인 교제를 말하며 동시에 성도들을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체계를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중동지역에서 미인은 눈이 곱고 아름답습니다. 눈이 아름답지 못하면 미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눈이 별빛과 같이 아름다운 라헬이 미인이고 그러하지 못한 레아가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29:17-18). 그 점은 오늘날도 중동지역을 여행해보면 분명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유전인자가 섞이게 되면 검은 머리결과 크고도 아름다운 눈을 가진 미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그 옛날 사라센의 지배 아래 수백 년을 지낸 이태리 남부와 스페인 지역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솔로몬이 신부의 눈을 비둘기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둘기와 같이 온순하다는 것입니다. 그 눈이 아무리 곱고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신부의 성격이 비둘기가 아니고 매와 같이 사납다고 하면 신랑의 마음에 들지 아니할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순종적이고 온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패역한 자는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대해석으로 넉넉하게 알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길르앗이라고 하는 지명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 두가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헬몬 산 아래 남녘은 물론 요단 강 동편을 전부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옛날 야곱이 하란에서 야반도주를 한 후 길르앗에서 잡히게 되었을 때가 그러합니다(31:23). 그와 달리 좁은 의미의 길르앗은 북쪽의 아르묵 강과 남쪽의 아르논 강 사이의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단 강 동편의 땅입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시리아 염소 떼의 특징을 가지고 솔로몬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1:1c);

1)    첫번째의 특징은 그 색깔이 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염소 떼를 키우던 이스마엘의 후손인 게달 족속이 그 옛날 검은 털로 천막을 짜서 주로 검은색 장막을 사용했습니다(25:13). 그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요르단 그리고 아라비아의 베드윈 족속이 검은 천막을 치고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2)    두번째의 특징은 그 지역의 검은 염소가 힘이 세고 무리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이 함부로 그들을 침략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강인한 성품이 그들의 검은 비단과 같은 머리 결에 숨겨져 있습니다. 요컨대, 은연중에 솔로몬 왕이 백성들에게 여호와께 충성하는 그러한 강인한 군사들이 되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2. (齒牙)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4:2); 솔로몬 왕이 미인의 치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칭송하고 있습니다. 첫째, 목욕을 한 깨끗한 하얀 양을 닮은 것 같이 그녀의 치아가 깨끗하고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입니다(4:2a). 둘째, 치아가 아름다운 양은 풀을 잘 뜯어 먹으며 새끼를 많이 낳아서 주인을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4:2b).

매번 한 마리 씩 새끼를 낳아도 좋은데 치아가 튼튼한 양은 두 마리 씩 쌍둥이를 계속 생산하고 있으니 주인의 기쁨이 두배입니다. 여기서 양이 풀을 뜯어 먹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소화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의미에서 솔로몬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을 수 있는 좋은 치아를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3.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석류 한 쪽 같구나”(4:3);

(1)  솔로몬 왕은 여인의 입술의 색깔이 홍색 실 같이 아름다워야 미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4:3a).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홍색 실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왕의 옷을 지을 때에 홍색 실을 사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막을 지을 때나 대제사장의 예복을 만들 때에 삼색실을 사용하는데 그때에 빠짐없이 홍색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26:1, 28:6);

 더구나 해산을 할 때에도 홍색실을 준비합니다. 그 이유는 쌍둥이를 출산할 경우 먼저 나온 손에 홍색실을 매어 형과 아우를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38:28-30). 그와 같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홍색 실과 같이 여인의 입술이 붉은 빛을 띠며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입술을 가진 입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을 선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한 미인을 남편이 되시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참고로, 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미데바르’(מִדְבָּרֵ֖יךְ)는 문자적으로 을 뜻하기도 합니다.  

(2)  가나안 땅에서 아름답다고 칭송을 받고 있는 식물이 둘 있습니다; 하나가,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석류입니다(4:3b). 또 하나가 하닷사로 불리고 있는 도금양입니다(2:7). 둘 사이의 공통점은 그 열매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석류의 경우에는 그 색깔이 붉고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미인 술람미의 뺨이 석류와 같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름다운 뺨이 너울 속에 감추어 있으니 그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4:3b). 그와 같은 맥락에서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4. 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5. 두 유방백합화 가운데서 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4:4-5);

(1)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의 목에 대하여 다윗의 망대와 같으며 그 목걸이는 용사의 방패와 같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4:4). 다윗은 수많은 적들을 상대하면서 망대를 높이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망대와 같이 술람미 여인의 목이 길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용맹한 장수들의 혁혁한 전공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따라서 다윗의 용사들의 방패는 승리한 자의 위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미인 술람미는 전투에서 승리를 얻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그녀의 긴 목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라고 본문에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4:4).

(2)  신부의 가슴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칭송이 될까요? 그 정답을 지혜의 대왕 솔로몬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5. 두 유방백합화 가운데서 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4:5). 한마디로, 백합화로 둘러싸인 어린 사슴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방에서는 어린 사슴을 먹일 수 있는 생명의 젖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도들에게 말씀의 꼴을 먹이시고 생수를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노래하고 있는 대목입니다(23:1-2, 10:10). 그것이 지혜의 대왕 솔로몬이 창조주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일종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지어서 백성들에게 널리 반포하는 이유이며 목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겉으로 보면 변방의 미인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솔로몬 왕이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지어서 헌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의 내용을 깊이 묵상해보면 이미 말씀드린 그대로 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의 아름다운 은혜를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에 보답하는 아름답고도 열매가 풍성한 영적인 삶을 이제는 성도들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술람미의 여인처럼 영적인 지혜를 갈망하는 눈, 갑절의 헌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입, 영적 전쟁에서 물러서지 아니하는 투지 등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솔로몬 왕이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아가를 자주 묵상하시면서 더 많은 영적인 지혜와 은혜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