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세상의 종으로 계속 살아가지 아니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20. 11:58

제목; “세상의 종으로 계속 살아가지 아니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6:1-5)

설교일; 주후 2021523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520일 작성)

 

히브리정경에 수록되어 있는 격언의 글인 잠언은 일명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미쉘레 쉘로모’(מִ֭שְׁלֵי שְׁלֹמֹ֣ה)라고 발음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이름하고 있는 이유는 그 글의 첫머리에서 저자를 명백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1:1);

솔로몬 대왕의 치세는 주전 970년에서 931년까지 40년간입니다(왕상11:42). 그는 약관의 나이인 20세에 부왕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제국의 황제인 대왕의 자리를 차지한 인물입니다(왕상1:33-35). 다윗이 여러 왕자들 가운데 솔로몬을 후계자로 선택한 까닭은 솔로몬이 인물이 빼어나고 지혜가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다윗의 이스라엘제국은 중동지역에서 패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동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들과 유프라테스 강을 사이에 두고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로는 나일강유역의 오래된 제국 애굽의 동진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제국의 힘에 눌린 애굽의 바로는 다윗과 솔로몬의 눈치를 보면서 그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형편입니다(왕상3:1, 대하9:28).

그러한 시대이므로 이스라엘제국의 새로운 대왕이 된 솔로몬은 거칠 것이 없습니다. 부왕을 잘 만났기에 지역패권국의 황제가 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솔로몬입니다. 더구나 그는 지혜가 출중했으며 통치 전반기에는 무척 겸손했습니다. 작은 이스라엘왕국을 대제국으로 건설한 부왕 다윗의 유훈을 명심하여 여호와신앙에 충실했던 것입니다(왕상3:8-15).

그렇게 20년간을 통치하면서 북쪽으로 영토를 일부 확장하고 동시에 해상무역을 통하여 국부를 늘렸습니다(대하8:3, 17-18). 그러자 주변국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대왕을 흠모한다고 하면서 멀리 아라비아 반도 남쪽에서 많은 예물을 가지고 스바 여왕이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왕상10:1-3, 대하9:1-9);

기분이 좋아진 솔로몬대왕은 국가의 재정을 탕진하게 됩니다. 그 요인이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첫째, 전국을 요새화 하고자 엄청난 재정을 사용하고 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인부로 활용한 것입니다. 둘째, 7년간 예루살렘성전을 화려하게 지었으며 또한 자신의 궁궐을 13년간 더욱 웅장하게 건립한 것입니다(왕상6:38, 7:1, 대하8:1).   

국고가 바닥이 났으면 그러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다시는 추진하지 아니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교만해진 솔로몬대왕은 그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지파인 유다와 왜소한 베냐민 지파 그리고 성직을 수행하고 있는 레위인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10지파로 하여금 매년 돌아가면서 국고를 부담하고 부역을 감당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왕상12:4).  

그와 같은 무지막지한 정책이 20년간 시행이 되자 저항세력이 등장하게 됩니다(왕상11:14, 26). 그 뿐만이 아닙니다. 주변국에서 바친 공주와 미인들을 자신의 처첩으로 삼고 있으며 그녀들에게 친정의 우상을 도입하여 마음대로 섬겨도 좋다고 허락한 것입니다(왕상11:4-8).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버리고자 하십니다(왕상11:11-13). 그러나 다윗을 생각하여 제국을 쪼개는 일만은 솔로몬이 죽고 난 다음 후계자 르호보암 왕 2년 곧 주전 930년에 시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잠언의 기록을 읽어보면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대왕이 말년에 자신의 잘못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이 된 솔로몬이 백성들을 자신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면서 부디 한평생 여호와를 경외하고 종신토록 그 신앙을 유지하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1:8, 10, 15, 2:1, 3:1, 11, 6:20-24).

그 가운데 솔로몬대왕은 특히 사람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 처지를 벗어날 수가 있는지 그 방법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잠언 제61-5절에 실려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대목을 풀이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아들,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2.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6:1-2);

(1)  먼저 제1절을 살펴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제국의 황제에 해당하는 대왕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비록 젊은 나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신민(臣民, 신하와 백성)들에게 내 아들아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6:1a). 그렇지만 그것은 권력관계로 본 호칭입니다.

1)    그와 달리 자연인의 입장에서 잠언의 글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왕이 이스라엘제국의 황제로서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려본 후에 여호와 앞에서 크게 뉘우치면서 이 글을 기록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앞에 서게 되면 제국의 황제나 일반 백성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솔로몬의 나이가 거의 60세에 이르고 있는 때 곧 그의 통치 말년에 그가 잠언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년의 솔로몬이 잠언의 첫머리에서 내 아들아라고 자신의 신민들을 부르고 있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2)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고 타인을 위하여 보증을 한다고 하는 말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신민이 어리석게도 이웃과 타인 사이에 성립되고 있는 채권채무관계에 개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경우 전주(錢主)가 되는 이웃은 남에게 돈을 꾸어 주기 위하여 그만한 담보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6:1b). 그런데 돈을 빌리려고 하는 타인이 그만한 담보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친지로 보이는 어리석은 백성이 타인을 위하여 함부로 보증을 서고 있는 것입니다(6:1c).

(2)  이제는 제2절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솔로몬은 무엇보다도 구두약속을 가볍게 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대사회에 있어서도 중요한 계약은 물론 문서로 하고 있습니다. 주전 6세기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을 보면 분명히 그러합니다(32:11-12). 그러나 간편하게 구두로 계약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효과가 매일반입니다. 그러므로 구두로 보증을 서는 경우 보증인의 의무가 역시 엄중합니다.

1)    그런데 어떤 백성이 이웃과 타인과의 채권채무관계에 개입하여 자신의 입으로 보증을 서고 있습니다. 그것이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6:2a)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연대보증 행위입니다. 다행히 채무자가 제 때에 변제를 하게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하지 아니한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2)    한마디로,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6:2b)고 솔로몬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채무자가 변제능력이 없으므로 연대보증인이 대신 갚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변제의 의무를 지게 되었는데 만약에 변제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고대사회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대신 노동력으로 갚아야 합니다. 즉 채권자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종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21:31, 22:3, 왕하4:1, 18:25);

둘째로, “3. 아들,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6:3); 솔로몬왕은 신민들에게 이웃과 타인 사이의 채권채무관계에 함부로 개입하여 보증인이 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6:1-2). 그렇지만 그가 지난 40년 가까이 백성들의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살펴보면, 억울하게도 빚 보증 때문에 남의 종으로 살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3. 아들,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6:3a).

그들이 대왕인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게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러한 기도를 긍정적으로 들어주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솔로몬왕 자신도 그들을 구제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사인간(私人間, 개인과 개인 사이 또는 민간인 사이)의 채권채무관계에 함부로 개입하지 아니하는 것이 공권력 행사에 있어서 옳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빚 보증으로 말미암아 재산을 탕진하고 나아가서 남의 종이 된 경우에는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솔로몬이 명쾌하게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6:3b). 그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종의 신세를 벗어날 수 있는 첫번째의 비결은 주인을 섬기는 종으로서 무엇보다 겸손한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겸손히라고 하는 말을 원문에서는 히브리어로 히테라파스’(הִ֝תְרַפֵּ֗ס)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의미는 짓밟힌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남의 종이 되었으면 버릇이 나쁜 황소처럼 사람을 해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을 먼저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인의 신임을 받을 수가 있고 훗날 종살이에서 풀려날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간구하여라는 말을 히브리어로는 라하브’(רְהַ֥ב)라고 발음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의미는 힘써서 추구한다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그러한 경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행중에 찾아온 벗을 위하여 3덩어리를 밤중에 구하고 있는 자의 간청입니다(11:5-8). 과연 정도의 만을 내포하고 있는 말일까요? 솔로몬왕은 이상의 구체적인 권면을 다음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4.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5. 노루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6:4-5);

(1)  4절의 말은 20세기 중반에 한국에서 유행한 용어 사당오락’(四當五落, 하루에 4시간 자고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5시간 자고 공부하면 떨어진다)을 새삼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남의 종 신세가 되어 있는 백성이 그렇게 잠을 줄여가면서 무엇을 모으고 있는 것일까요?

1)    그것은 자신의 속전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지(親知, 친척과 지인)가 자신을 속량해줄 수가 없기에 자력으로 종살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2)    과연 노비신세가 되어 있는 자가 어떻게 돈을 모을 수가 있을까요? 이스라엘 고대사회의 경우에 있어서는 어떠한지 몰라도 20세기 전반기 한국사회의 농촌에 있어서는 그러한 사례가 있습니다.

3)    부지런한 농촌부부는 농한기에도 쉬지 아니하며 낮이고 밤이고 일을 하여 돈을 벌고 있습니다. 남편은 밤새 자지 아니하고 짚으로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어 삼거나 가마니와 멍석을 짜고 있습니다 그 옆에서는 부인이 밤새 길쌈을 하고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고 있습니다;

4)    겨울철 내내 그렇게 노동하여 번 돈으로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을 받게 합니다. 그 결과 개천에서 용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당시에는 나라임금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는 농촌의 가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똑같은 경우를 지혜의 대왕이라고 불리고 있는 솔로몬왕이 백성들에게 권면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입니다.

(2)  마지막으로 제5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체득한 경험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재발을 막는 것입니다. 사냥꾼이 노루를 노리듯이 그렇게 전주는 돈을 빌려주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빌려준 돈의 몇배에 상당하는 채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무자의 담보 뿐만 아니라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냥꾼의 노림수에 넘어가서 억울하게 종살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면 다시는 그와 같은 수단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 점을 솔로몬왕이 본문에서 노루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라고 알기 쉽게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6:5a).

(3)  5절 후반부에 있어서는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을 벗어나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허공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새가 어떻게 하면 그물망을 피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은 새가 마음대로 날 수 있는 하늘이 있고 그러하지 못한 구역의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의 분별력입니다. 언제나 태만하지 말고 그 밝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해야 합니다. 그물이 쳐져 있는 구간을 확실하게 파악한 후에 비상을 시도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주의력을 기울이지 아니한다고 하면 다시금 자유를 구속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

(4)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하여서는 백성들이 하나같이 하늘을 나는 새처럼 이 세상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 그대로 길가에서는 우는 사자가 숨어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벧전5:8).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그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가 있을까요?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신중하게 행동을 자제하고 분별력을 갖춘다고 하면 불필요한 담보와 보증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늙은 솔로몬왕이 신민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있으므로 흔히 사인간의 채권채무관계의 변제마저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해결하여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왕의 말처럼 채무의 이행이란 잠을 줄이고 주인의 신임을 얻으면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상당히 청산할 수가 있습니다. 그 비결이 단순하게도 겸손하게 그리고 부지런하게 주인의 눈에 들도록 종살이를 충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해방을 위한 속전을 열심히 잠을 줄여가면서 일을 하여 스스로 모아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일련의 생활태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함을 얻고 이제는 성도의 거듭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을 돕기 위하여서는 자신의 생활을 근면 성실하게 하지 아니하면 물질적인 토대가 마련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12:8). 아무쪼록 본문을 음미하시면서 깊은 깨달음과 실천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