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사도 베드로의 체험과 영적 깨달음에 대하여(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26. 14:45

제목; “사도 베드로의 체험과 영적 깨달음에 대하여”(벧전2:9-10)

설교일; 주후 202153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526일 작성)

 

주후 50년대 중반에 사도 베드로는 세계선교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담임 및 교계 총회장의 자리를 예수님의 친동생인 장로 야고보에게 물려주고 났기에 베드로가 홀가분한 심정으로 이제는 세계선교에 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15:7, 13).

그 일을 두사람의 젊은 장로가 돕고 있습니다; 한사람이 베드로의 영적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는 마가이고 또 한사람이 교포 출신인 실루아노입니다(벧전5:12-13). 두사람과 함께 소아시아 지방으로 선교여행을 떠나고자 할 때에 사도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아시아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는 후속사도인 바울이 열심히 선교하고 있어요. 그러니 나는 험한 산이 있는 그 북부지역으로 가서 선교활동을 했으면 합니다”(벧전1:1-3);

마가와 실루아노는 환갑이 된 노인 베드로가 그 험한 산악지대로 선교여행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한번 마음을 정하면 굽히지 아니하는 강직한 성품의 스승인지라 그대로 순종하고 맙니다. 그 결과 수년간에 걸쳐서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대한 선교가 사도 베드로 일행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벧전1:1).

선교활동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도 베드로가 이제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실루아노에게 한가지 부탁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구술할 것이니 그 내용을 헬라어로 작성하여 달라는 것입니다(벧전5:12).

그리고 베드로가 영적인 아들인 마가에게는 다른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벧전5:13). 그것은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가서 자신도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으니 그 준비를 단단히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가가 그 준비에 바쁘기에 베드로가 구술하고 있는 내용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일은 실루아노가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벧전5:12);

실루아노가 사도 베드로의 구술내용을 들어보니 두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의 영적인 깨달음이 그의 특이한 체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귀중한 깨달음을 온전히 이 세상에 남기고서 그는 홀가분하게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들어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그곳에서 삶을 마칠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인 베드로전서 제2장 제9-10절의 말씀에 대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체험과 그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되면 본문의 메시지를 보다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친구로 만난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30세에 시작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3:23). 그렇지만 예수님은 수년전에 고향 나사렛에서의 목수일을 동생 야고보에게 맡기고(13:55) 갈릴리의 대도시 가버나움으로 나와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공생애를 준비하기 위하여 그 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졸지에 가장의 책임을 떠맡게 된 아우들은 그 일로 말미암아 계속 형 예수를 원망하고 있습니다(7:3-5);

예수님의 거처는 갈릴리의 유지인 이모부 세베대의 집입니다. 자신의 모친이 예수님의 이모라고 하는 사실을 세베대의 아들인 사도 요한이 조심스럽게 그의 복음서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19:25). 갈릴리의 부자인 세베대는 어선을 여러 척 소유하고 있습니다(18:15). 그래서 어부인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선주 세베대의 어로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부잣집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도 부친을 도와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는 세베대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와 친합니다. 특히 시몬 베드로는 나이가 비슷하기에 예수님과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당시 시몬은 결혼하여 집에 부인과 장모가 있습니다(1:29-30). 하지만 예수님은 노총각의 신세입니다.

시몬은 틈틈이 친구가 된 예수로부터 히브리경전과 천국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어부이므로 생활비를 벌기에 바빠서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오래 듣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르자 시몬의 동생인 안드레가 먼저 고향을 떠나고 그 다음에는 나사렛 예수가 갈릴리를 떠나고 맙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만나게 되는 베드로입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예루살렘에 온 안드레는 우연히 세례 요한을 요단 강가에서 만나 그의 제자가 됩니다(1:28). 안드레는 갈릴리의 어부 출신 답게 성실하여 선지자 요한의 생도로 열심입니다. 그래서 수행제자가 되고 있습니다(1:35, 40). 그런데 어느 날 안드레가 나사렛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세례 요한이 갑자기 예수님을 보고서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라고 큰소리로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안드레가 마음속으로 갈등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생도가 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메시아의 제자가 되는 것이 더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인 메시아는 장차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고 유대인의 왕이 될 자이니 그의 제자가 되어야 더 출세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1:34).

생도인 안드레의 마음속 갈등을 모르는지 세례 요한이 그 다음날에도 나사렛 예수를 멀리서 보고서 백성들에게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메시아를 백성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므로 세례 요한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1:36). 그날 안드레는 예수님을 찾아가서 인사합니다. 역시 형 시몬의 친구인 나사렛 예수가 틀림없습니다. 그가 메시아라고 하니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이제는 그의 제자가 되고자 자신의 결심을 밝히고 있습니다(1:38-40).  

안드레가 인간적으로 무척 미안해 하면서 스승인 세례 요한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혔을 때에 의외로 요한이 쾌히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세례 요한 자신이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29-30).

동향인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이며 자신이 그의 처음 제자가 되었기에 안드레는 신이 납니다. 그래서 고향 갈릴리에 들리게 되자 자신의 형인 시몬에게 그 놀라운 사실을 전하게 됩니다(1:41). 아우의 이야기를 들은 시몬은 크게 놀랍니다. 그러나 그 역시 청운의 꿈을 품고서 그때부터 친구인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모시고 따르고자 자신의 집을 떠나게 됩니다(1:41-42). 그것은 일종의 출가인 것입니다;

친구 시몬을 자신의 제자로 맞아들인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게바라고 불러주고 있습니다(1:42). 그 뜻이 반석인데 그것이 헬라어로는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시몬 형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6-17).

예수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의 제자가 되고자 몰려들 것입니다. 그들을 12명의 사도들이 자신들의 조에 각각 나누어 받아들여서 함께 복음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조직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는 자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인 12사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변화산에서 확인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36개월 동안 친구인 나사렛 예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공생애를 지내게 됩니다. 그 사이에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이 죽은 자를 세차례나 살려내고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7:14-17, 5:38-43, 11:39-44).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14:19-21, 15:34-38). 그렇지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북쪽 헬몬 산지의 작은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갑자기 변모한 것입니다. 돌연 그 용모가 변하고 흰옷을 입은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광채를 발산하고 있습니다(17:2). 그 옆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17:3);

그 순간 베드로는 천국이 그곳에 임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급히 초막 셋을 짓고 그곳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17:4). 다음 순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17:5). 그것은 사도들에게 그만 하산하여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실 때까지 복음사역을 감당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넷째로, 칼을 버리고 예수님을 떠난 베드로입니다. 헬몬 산지에서 천국의 영광을 잠시 맛본 베드로입니다. 그렇지만 공생애 마지막 해에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한 시몬은 열광하는 백성들을 보게 되자 그만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게 됩니다(20:24, 21:8-11). 죽은 자를 세차례나 살려 내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라고 하면 신위적으로 로마의 총독부와 헤롯왕가를 가나안 땅에서 축출하는 일은 쉬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3일후 무덤 속 부활에 대하여 3차례나 예언하고 있습니다(8:31, 9:31, 10:33-34). 그러한 구체적인 예언의 말씀을 베드로를 위시한 12사도들은 한 귀로 흘려 듣고 맙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성취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결심과는 달리 사도들은 한결같이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시는 메시아의 모습만을 꿈꾸며 메시아의 나라에서 크게 출세할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20:20-28).

과연 누구의 뜻이 이 세상에서 성취가 되는 것일까요? 베드로의 생각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승리를 얻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밤중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병사들과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의 하인들에게 순순히 오라를 받고 마시기 때문입니다(26:53-56).

마지막 순간에 베드로가 칼을 빼어 저항을 했지만 도리어 스승 예수님의 꾸중만 듣고 맙니다(26:51-52);

 크게 실망한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피신합니다(26:56). 그리고 스승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서 어부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26:74, 21:2-3). 이제 그의 젊은 시절의 꿈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더불어 사라지고 맙니다. 

다섯째로,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난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3분의 2가 갈릴리 출신입니다. 그들이 어로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21:4a). 그 모습이 영생의 몸을 입고 있기에 다소 변모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단숨에 제자들이 알아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21:4b).

그렇지만 하늘의 기적을 선보이고 계시는 그 능력은 어김없이 주님의 것입니다(21:6). 예수님이 부활하여 명실상부하게 하나님의 아들인 주님이 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베드로가 너무나 놀라서 빨리 주님을 만나고자 그만 바다에 뛰어들고 있습니다(21:7-8);

친구 베드로의 그 격정의 모습을 보시고서 예수님께서는 함께 조반을 드신 후에 베드로를 목자로 임명하십니다(21:15-19). 그 뜻은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하고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주님의 명령은 모든 사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21:22).

여섯째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증거하는 베드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40일간 머무시면서 사도와 제자들에게 재교육을 실시하십니다(24:44-47, 1:3). 그리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와 제자들에게 모두들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모여서 기도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십니다(24:48-53, 1:4-9).

그 지상명령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시행한 자가 수제자인 베드로입니다. 그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주님께서 맡기신 그 지상명령을 끝까지 실천하게 되면 베드로 자신도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22:28-30).

그 믿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간 사도 베드로가 다음과 같은 그의 영적인 깨달음을 베드로전서 제2장 본문에 담고 있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간략하게 분설(分說, 나누어서 설명함)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2:9a);

(1)  본래 여호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족속은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19:5). 세상나라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왕국이 주전 586년에 완전히 지상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제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데리고 들어가고자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십니다(3:16, 6:39). 사도 베드로도 처음에는 선민만의 구원사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줄 것을 소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시자 그것을 보고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만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의 새로운 소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택하신 족속은 선민 이방인 상관없이 주님을 구원의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모든 성도들인 것입니다(1:12-13).

(2)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 산 아래 집합시키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19:6). 여기서 제사장나라는 이방 족속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민들이 모두 제사장의 직분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선민들은 자신들만의 죄사함을 위하여 제사를 드립니다. 결코 이방인들의 죄사함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을 포함하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같이 만민의 죄사함을 위하여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직분을 행하는 성도들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게 됩니다(22:28-30). 그것이 바로 왕의 면류관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알기 쉽게 성도들에게 왕 같은 제사장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거룩한 백성은 심판의 위기에 빠져 있는 성읍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하게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그 본보기가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입니다(18:22-32). 그 뒤를 모세가 따르고 있습니다(32:11-14, 31-34). 이제 죄악을 범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가 모든 성도들에게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중보의 기도를 드리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주님의 백성이며 거룩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b); 사도 베드로는 변화 산상에서 이미 주님에게 임한 그 기이한 빛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빛을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다시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생의 빛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이 주님의 제자로 한평생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그와 같은 맥락에서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바로 주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벧전2:9ba);

사도 베드로는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소망을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공유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천국입성의 소망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세상에 전파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혼자만 천국에 들어가지 말고 널리 영생의 복음을 전파하여 모두 함께 천국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아름답고도 넓은 뜻입니”(벧전2:9bb).

셋째,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10); 사도 베드로가 과감하게 호세아 선지자의 글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의 맏딸의 이름이 로루하마이고 차남의 이름이 로암미입니다(1:6-9). 그와 같은 독특한 이름자는 그들이 태어났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 뜻은 로루하마가 긍휼함이 없다는 것이고, 로암미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호세아의 시대의 글이므로 그것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왕과 백성들의 장래에 대한 여호와의 질책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나라가 전부 멸망을 당한 후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십니다. 그 결과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는 만민구원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는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새로운 이스르엘)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루하마)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암미) 하리니, 그들이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시니라”(2:23). 그와 동일한 말씀을 사도 베드로가 본문에서 구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10).

결론적으로, 시몬은 본래 갈릴리 호수에서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어부생활을 하던 젊은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됨으로써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고 복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고 선민의 영광을 사해에 다시 떨치는 전통적인 메시아 사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몬에게 있어서 스승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사건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상실과 절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 3일만에 영생의 몸을 입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여 시몬 베드로를 찾아오십니다. 그때 비로서 베드로는 영생의 나라를 꿈꾸며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한평생 복음전파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와 같은 자신의 체험적인 영적 깨달음을 베드로가 구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루아노가 헬라어로 적고 있는 베드로전서입니다. 아무쪼록 본문말씀을 자주 읽으시면서 영생의 확신을 확고히 하시고 복음의 용사로 끝까지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