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3진영 시대의 대두와 한국의 선택”
작성일; 주후 2021년 6월 1일(화)
작성자; 손진길 박사(정치학)
1945년 8월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아니하자 지구촌에는 두개의 진영이 서로 경쟁하는 소위 ‘양(兩)진영시대’가 대두하게 된다; 하나는, 미국을 리더로 삼고 있는 자유 자본주의 진영이고 또 하나는, 소련을 맹주로 삼고 있는 공산주의 진영이다.
미국은 19세기말에 그 생산능력이 영국을 앞서는 놀라운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유럽의 정세 변화에 개입하지 아니하는 소극적인 ‘고립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고립주의가 미국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에 들어와서 유럽에서는 두차례의 대전이 발생하였는데 그때마다 아메리카의 미국은 전쟁물자를 유럽에 수출하면서 번영을 누렸던 것이다.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국가들은 게르만 민족의 통일을 이룩하고 1910년대에 크게 팽창하기 시작하는 신흥 강대국 독일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하여 세계 제1차 대전을 치루게 된다.
그리고 1930년대 말에는 군사력을 재정비한 독일의 히틀러가 유럽의 정복에 나서자 그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또 한번의 유럽전쟁에 나서게 된다. 현대사에서 일명 전쟁의 천재로 불리게 되는 히틀러는 나치군대를 동원하여 전격적으로 유럽의 대륙을 거의 점령하고 1940년대에 들어서자 외떨어진 섬나라 영국에 폭탄을 투하하면서 해상공격에 나서는 한편 동쪽으로는 러시아까지 점령하고자 원정군을 보내고 있다.
영국은 대영제국에 속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의 국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인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속국들은 독립의 약속을 받는 대신에 군사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렇지만 두차례 유럽전쟁을 통하여 전쟁상인 곧 ‘군상’(軍商)으로서의 이익만을 크게 누리고 있던 아메리카의 독립국가인 신흥 강대국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미국은 모국인 대영제국으로부터 세계의 패권을 이양 받는다는 조건으로 유럽전쟁에 군사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1945년에 먼저 독일의 나치군대를 쳐부수고 그 다음에는 아시아의 강대국 일본제국의 항복을 받아내게 된다. 그렇지만 전후의 세계의 정세가 꼭 미국의 의도대로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히틀러의 원정군을 모스크바 가까이까지 내륙으로 길게 끌어들인 소련이 인민의 희생을 무릅쓴 고육지책 곧 청야(淸野)작전과 살을 에이는 강추위 동(冬)장군의 위력으로 나치의 침략군을 마침내 격파한 것이다. 20세기의 전쟁천재 히틀러 역시 19세기초 전쟁의 귀재인 나폴레옹의 뒤를 이어 러시아의 점령에 실패하고 만다.
공산주의 소련의 그 다음 전략이 대담하고도 노련하다. 그들은 세계 제2차 대전을 조기에 끝내고 싶어하는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고서 가장 효율적으로 전쟁 막바지에 전광석화와 같이 서진(西進)하여 동부 유럽을 차지하는 한편 일시에 남진(南進)하여 당시 일본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 곧 만주와 북한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다.
깜짝 놀란 미국이 급히 두가지 방법으로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나선다; 하나는, 전범국가인 독일을 동서로 양분하는 선에서 군사행동을 멈추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반도를 38도선에서 양분하여 소련군은 이북에서, 미군은 이남에서 각각 일제의 관동군의 무장을 해제하는 한편 군정(軍政)을 실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일본제국의 중심인 일본 열도는 미국의 군정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
전후에 소련이 전격적으로 동구와 만주 그리고 북한 땅을 집어삼켰지만 그 군사력이 미국에는 크게 밀린다. 그렇지만 소련이 러시아 땅으로 피신한 유대인 과학자들의 두뇌를 빌려서 핵폭탄을 조기에 완성하고 뒤이어 1949년에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이 중국본토에서 장제스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내게 되자 공산주의 세력이 강해지고 있다.
그때부터 영국의 뒤를 이어 세계의 패권국이 된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는 대규모 ‘봉쇄작전’에 나서게 된다. 세계 제3차 대전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한편 경제전쟁을 통하여 공산주의 진영의 맹주인 소련을 붕괴시키고자 시도한다. 그 결과 20세기 말에 소련이 재정파탄으로 공중분해가 되고 러시아 연방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때부터 20년간 미국은 유일한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그 특권을 향유하고 있다. 하지만 뒤늦게 실용주의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한 중국 공산당의 놀라운 성공으로 2020년대에 미국의 패권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그 사이에 서구중심의 유럽공동체가 동유럽의 국가들을 상당히 흡수하여 독자적인 하나의 진영으로 발전하고 만다.
유럽이라고 하는 새로운 진영의 성립을 억제하기 위하여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이 영국을 유럽공동체에서 분리하는 등의 수단을 강구하여 보지만 그것이 별로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국내총생산인 GDP를 가지고 평가해보면 미국의 20조불(兆弗)과 비교할 때 중공의 경제력이 벌써 15조불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중공과 경제전쟁을 벌이기에 여념이 없어서 더 이상 유럽진영의 약진에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와 같은 처지에서 중공은 미국의 견제를 벗어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두가지 정책을 성공시키려고 가히 필사적이다; 하나는, 중국본토의 역량만으로는 미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가 없으므로 외연을 확장하여 그 몸체를 키우고자 한다.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되살려서 대만, 북한, 한국 등을 속국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이나 유럽공동체처럼 자국시장을 무기화하고 있다. 중화의 진영에 들어오지 아니하는 국가들의 상품을 유통시키지 아니하겠다는 전략이다.
그에 따라 오늘날은 세계가 자국시장을 무기화하고 있는 3개의 진영으로 쪼개어지고 있다; 첫째가 유럽시장이다. 둘째가 중국시장이다. 셋째가 미국을 비롯한 기타의 시장이다. 지금의 한국은 경제적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제3의 시장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공이 자신들의 진영의 힘을 강화하기 위하여 공통적으로 하나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진영 내에서 공장을 짓고 상품을 생산하는 경우에는 자국시장에서 유통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정책이다. 그러한 정책을 가장 먼저 사용한 진영이 사실은 유럽공동체이다. 그때문에 1970년에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하자 한때 호주와 뉴질랜드가 농산물과 천연자원을 영국에 더 이상 수출하지 못하여 경제적인 위기를 맞게 되기도 한다.
이제는 동일한 정책을 미국이 국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벌써 다국적기업으로 변신한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앞다투어 미국으로 진출하여 현지공장을 짓고 있다. 그들이 해외에 가지고 있는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경우에는 한국의 국내총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하지만 한국내에 가지고 있는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경우에는 그만큼 경제적인 손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제3세계에 두고 있는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중국의 시장규모가 미국시장만큼 크지 않으며 더구나 경제적인 자유가 제약 받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이 익숙한 자유 자본주의 시장과 중공이 유지하고 있는 공산주의 체제하의 시장은 역시 체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제는 전술(前述)한 3진영 시대에 한국이 어떠한 국가전략을 수립하여야 하는지 그 핵심사항을 생각해볼 때이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다음 4가지 사실을 말하고 싶다;
첫째로, 미중간의 경제전쟁이 첨예화되고 있는 지금은 그 전(前) 시대와는 상당히 다르다. 왜냐하면, 그 전 시대에 있어서는 미국이 중국에 한국기업이 진출하여 있는 것을 용인하였지만 지금은 그러한 여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이제 미국이냐? 아니면 중공이냐? 하는 선택을 강요 받고 있다. 양 진영을 대조하여 실익이 더 큰 미국의 진영에 잔류하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둘째로, 한국의 선택은 언제나 한민족의 통일문제를 염두에 두고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한국이 해양국가로만 발전하는 것은 곧 한계를 맞이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륙으로 진출하는 길을 뚫어야만 한다. 남한과 북한이 손을 맞잡고 대륙으로 함께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을 이념적인 문제 때문에 아예 포기하거나 게을리한다고 하면 그것은 긴 안목으로 바라볼 때 한민족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 어느 민족이 끝까지 국토의 허리가 잘리어 있는 불구자로 그리고 불구대천의 원수로 계속 살아가고자 할 것인가? 만약 그러한 처지를 강요하고 있는 정치체제나 단체가 있다고 한다면 훗날 역사적인 심판대에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장차 한국이 북한당국을 설득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시킬 수가 있을 것인가?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핵무장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북한이 한국을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가 있을 것인가? 그것도 어렵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고 하면 평양 역시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핵폭탄 여러 발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진보한 재래식 미사일 수백 발 수천 발도 그만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은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고 제3의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러한 평화와 번영의 대안이 과연 무엇인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하지만 민족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면 가장 현명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러한 자질이 없다고 하면 아예 한국이나 북한의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시도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넷째로, 한국의 미래가 제2의 일본이 되어서는 안된다. 일본은 지난 30년간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인들과 경제전문가들은 이상한 논리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거품이 아직 완전히 빠지지 아니하고 있다… “. 세상에 한 세대가 다 가도록 거품이 계속 빠지고 있는 그러한 경제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할 수가 있다; “과거 일본혼(야마토 다마시이, やまとだましい)에 충실했던 일본의 기업과 부자들이 더 이상 일본 열도에 살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전후 백인 쇼군을 섬긴 그들이 이제는 아예 보따리를 사서 백인 쇼군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면, 일본은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일본은 없는 것이 맞다. 한국의 미래가 그와 같은 해골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차제에 깊은 성찰을 바란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지 상관없이 벌써 세계는 3진영의 시대로 바뀌어 있다. 지난 세기에 익숙한 자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고 하는 양진영 사고방식을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미국이라는 패권국과 중공이라고 하는 패권도전국의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선택은 둘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두가지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는, 두 나라 가운데 하나를 파트너로 선택해야 하는 일을 더 이상 지연할 수가 없다. 또 하나는, 유럽의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처럼 고슴도치가 되어 살아갈 수가 없다.
한국은 도저히 유럽공동체에 속하고 있는 스위스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미국이나 중공이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편에 소속이 되지 아니하는 한국을 결코 용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면 한국은 북한과 대화하여 빨리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북한과 협의하여 제3의 노선을 선택할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몸체를 불리기가 쉽지 아니할 것이며 동시에 그 미래의 위험성은 상당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지도자라고 하면 장차 어떠한 선택을 하여 민족의 성장과 번영을 계속할 것인지 밤잠을 설쳐가면서 고심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한 표를 행사하고 있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적인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지도자들을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도들은 물론이고 한민족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욱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그 선택은 어려운 것이다.
'한국정치를 보는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미래를 다시 생각한다(작성자; 손진길 정치학박사) (0) | 2023.01.24 |
---|---|
전환기의 세계와 한국(작성자; 손진길 박사) (0) | 2021.02.19 |
쇠퇴하는 권력과 떠오르는 권력(작성자; 손진길 박사) (0) | 2021.01.09 |
한국은 힘있는 게임어가 될 수 있는가?(작성자; 손진길 박사) (0) | 2020.10.19 |
코로나19 이후의 재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작성자; 손진길 박사) (0) | 2020.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