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7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21. 06:33

이사야 강해 제17(3:12-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624()

 

어떠한 자가 하나님의 백성을 학대하는 철없는 아이와 같은 자인가?(3:12-15)

 

첫째로, 하나님신앙이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가장 쉬운 질문이지만 답변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문제일수록 그 정답을 성경말씀에서 직접 얻는 것이 좋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다음과 같이 명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무엇을 믿어야만 할까요? 첫째,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1:1). 둘째,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뜻을 묻고서 그대로 실천하는 자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17:1).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만민을 만드시고 지금도 그 의중대로 섭리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하나님신앙의 출발점입니다. 그것이 유신론적인 신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내심으로는 창조주가 살아계신다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동의를 하지 아니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묘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다고는 하지만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결코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유신론이 아니고 유물론에 입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창조주가 세상의 주인으로 계시기 때문에 피조물인 사람은 그 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애초부터 하나님신앙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마치 무주물(無主物, 주인이 없는 물건)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입니다. 혹은 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힘으로 그것을 다시 빼앗으면 됩니다. 따라서 일종의 약육강식’(弱肉强食,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짐승의 논리)의 사회가 형성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하나님신앙의 첫 단추부터 전혀 잘못 끼우고 있는 경우입니다.

(3)  하나님신앙을 가진 자는 모든 의사결정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이 된 사항을 집행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대목에 있어서는 수시로 하나님의 의중을 묻고서 그 뜻을 따라서 시행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행할 때에 완전한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동의하신 일이므로 창조주의 능력으로 도움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벌써 아브라함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둘째로, 그런데 그와 같은 믿음의 특징을 전혀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숙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미성숙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비록 나이가 들고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믿음의 기본이 아니 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한 자를 일컬어서 선지자 이사야는 (어린)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12a). 과연 그러한 해석이 가능한지 지금부터 본문의 내용을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3:13-14a). 구약에서 포도원은 선민 이스라엘 사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백성의 장로들과 높은 관리들이 그 포도원에는 주인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것을 그 소유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만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꿀꺽해버린 것입니다. 이사야의 이 비유는 예수님에 의하여 소위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더욱 정교하게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상세는 21:33-41’ 절의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을 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3:14b-15).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들의 삶을 돌보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백성들을 수탈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처사를 비난하고 있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아예 반항을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짓밟고 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지고 맙니다.

(3)  부왕 다윗으로부터 이스라엘 제국을 물려받고 솔로몬은 약관의 나이에 제국의 황제가 됩니다. 그가 40년간 통치하는 동안에 전국을 요새화하고 병참기지로 만듭니다. 강력한 군대의 힘으로 이스라엘 제국을 오래 유지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가가 혹독합니다. 처음 20년 동안에는 지중해 무역과 인도양 무역에서 얻은 엄청난 수익으로 부국강병책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20년 동안에는 국고가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방법이 없어서 대권을 쥐고 있는 유다 지파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파들이 월별로 돌아가면서 국고를 채우고 부역을 담당하도록 제도화했습니다. 20년 세월을 과중한 세금과 노역에 시달린 지파들이 다윗 왕조를 등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국이 둘로 쪼개어질 판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여 솔로몬 당대에 그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주셨습니다.

(4)  솔로몬의 뒤를 이어 르호보암 시대가 되자 일년을 지켜보던 지파들이 마침내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감세와 부역의 경감을 요구한 것입니다. 왕이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하자 우선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그렇게 하자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은 그 말을 따르지 아니했습니다. 젊은 신진세력의 말을 들었습니다. 힘으로 반대자들을 짓누르고자 한 것입니다. 맷돌에 깔리게 된 백성들이 살기 위하여 단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의 수탈과 가혹한 탄압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라고 하여 계속 착취와 탄압의 대상으로 여겼던 다윗 왕조가 10지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5)  결론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군대의 힘으로 백성을 다스리고자 했던 젊은 관리들과 르호보암 왕은 나라가 쪼개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적인 힘을 의존하여 통치를 하고 정치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철부지들의 행태입니다. 하나님신앙을 가진 자는 그러한 유치한 세상적인 논리와 방법론을 버려야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의중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백성들을 다스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부인하고 약육강식의 논리로 백성을 다스리고 수탈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미성숙한 신앙인이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가 함부로 칼을 휘두르듯이 국가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탄압과 수탈에 지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그 땅에 임하게 된다는 예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