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19. 18:22

이사야 강해 제15(3: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622()

 

말세임을 보여주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이사야의 간단한 언급(3:1-9)

 

첫째로, 이사야는 터무니없는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을 가지고 예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 말세적인 것들이라 그것을 먼저 진술하고 있습니다. 말세적인 것들은 다윗 왕조와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 것들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현상들입니다. 이사야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제거해버리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1).

둘째로, 그런데 그의 예언서 제3장 제1절에서부터 제3절까지에 적혀있는 것 세 가지는 백성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아니 되는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구체적으로, 양식과 물(3:1), 군대와 종교적 지도자들(3:2), 그리고 행정관료와 상공인들입니다(3:3).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제거해버리신다면 그것은 곧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일이 주전 701년에 앗수르 제국의 황제 산헤립의 군대에 의하여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국은 왕도인 예루살렘 성이 포위를 당하고 지방이 모두 적군에게 점령을 당한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왕하18:17, 19:8-10).

셋째로,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한번의 기회를 더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전쟁의 임박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해주고 히스기야 왕과 고관들이 모두 회개하도록 역사를 섭리해주시기 때문입니다(37:1-7, 14-20). 그러나 그 마지막 기회를 얻은 그들이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시 제멋대로 살게 되자(왕하20:12-21:13) 드디어 100년 남짓 지나자 주전 586년에 지상 마지막 제사장나라가 신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25:1-7).

넷째로, 그런데 그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은 이사야 생존 당시와 다음 세대 그리고 길어야 100년 후에 당장 발생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대 선지자 이사야가 기껏 자신의 조국과 동족의 임박한 미래지사, 아니면 길어야 100년 정도의 미래까지만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기에 모든 성도들과 인류는 제3장 제1절부터 제9절까지의 내용을 깊이 음미해보아야만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다윗 왕조의 예루살렘과 선민 유다 왕국의 백성들까지 역사적으로 정리를 하고 계시는데 이방나라와 그 백성들이야 말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25:29) 1절과 제9절 사이에서 예언되고 있는 동일한 말세적인 현상이 발생을 한다면 가차없이 멸망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간략하게 그 의미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3:1); 식량과 물만 있으면 사람이 살 수가 있을까요? 육신적인 삶이 가능할지 몰라도 영적인 삶은 아닙니다. 그것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를 떠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번의 기회를 더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의지하고 있는 식량과 물을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 첨단과학의 힘으로써도 세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빨리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지구온난화 현상과 지진 그리고 환경문제 등으로 식량과 물이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창조주 앞에 손을 들고 다시 돌아오라는 일종의 사인이라고 하겠습니다.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3:2-3);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군대와 병참조직 그리고 행정과 사법기관 및 종교적 지도자들이 모두 상징적으로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와 종교적인 지도자만 있으면 백성들이 안전을 보장 받으며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국가라고 하는 것도 국제관계에 영향을 받고 있는 하나의 조직체에 불과합니다. 그 국제정세를 역사로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손과 뜻을 주시해야만 합니다. 놓쳐버리게 되면 국가의 역사가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3)  그가 또 소년들을 그들의 고관으로 삼으시며 아이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3:4-5); 소위 (, 대나무, bamboo)의 장막이라고 불리고 있던 중국이 1970년대 말에 개방을 한 지 벌써 35년 이상이 지나고 있습니다. 완전히 한 세대가 바뀐 것입니다. 지금의 중국 가정의 세대는 작은 황제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구팽창을 억제하고 억지로 국민소득을 끌어올리려고 국가가 한 자녀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한 결과 각 가정에는 귀하디 귀한 한 아들이나 딸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급속한 경제성장의 효과가 그 귀한 자녀에게 고스란히 주어지고 있습니다. 떠받들어 키워진 그 자녀들이 돈을 지배하게 되었으니 세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노인이 어른 대접을 받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키워진 아들들이 세상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싸움이 어른싸움이 되고 있으며 자기 자녀 잘 키우기 위하여 무슨 짓이든지 하고 있습니다. 어디 중국만 그러하겠습니까? 급격한 경제개발을 실천하고 있는 나라들이 모두 그러합니다. 특히 20세기 말부터 전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탈 권위체계를 말하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과 더불어 일종의 아노미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21세기입니다.

(4)  혹시 사람이 자기 아버지 집에서 자기의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네게는 겉옷이 있으니 너는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이 폐허를 네 손아래에 두라 할 것이면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아니하겠
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를 백성의 통치자로 삼지 말라 하리라
”(3:6-7); 현대국가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만큼 국가의 권위체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국가와 사회를 누가 바로잡을 수가 있을까요? 돈으로 부정선거를 치르고 있는 이상 깨끗한 정치인, 정직한 통치자를 구할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비유로써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5)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려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3:8);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교묘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왜곡하여 다윗의 영광과 선민의 위상만을 높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제사와 종교적인 행사를 주시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무시했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눈에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종교적인 행위를 했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주어 섬기고 있는 말은 많지만 진짜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의식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의식하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사람들의 영광만 추구하고 있는 선민들의 나라를 하나님께서 계속 보호해주실 이유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을 멸망시키시고 이제는 제사장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입니다

(6)  그들의 안색이 불리하게 증거하며 그들의 죄를 말해주고 숨기지 못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自取, 스스로 얻게 되는 결과)하였도다!”(3:9);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아니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을 합니다. 창세기 제4장을 보면, 카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자 그 안색이 달라지며 분노합니다(4:5).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정성을 하나님이 무시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분노하고 안색이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 가게 되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고 맙니다. 자신이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우상을 만들어서 그 자리에 앉히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신 그 자리에 생명의 기운이 없는 우상과 그것에 매달려 있는 죽은 영혼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의 생기를 받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인류의 현주소입니다. 한 마디로, ‘자업자득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사야의 예언은 그의 동족이나 다윗 왕조의 멸망에 대한 내용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동일한 말세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는 모든 인류와 현대국가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그 예언에서 자유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거역하고 사람의 뜻을 앞세우는 한편 창조주의 눈을 의식하지 아니한 채 사람들의 눈만을 의식하는 신앙생활과 종교행위를 지속한다고 한다면 예루살렘의 멸망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