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6강(사3:10-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6월 23일(화)
다윗 왕조의 제사장나라가 왜 쪼개어지고 북쪽의 형제국가가 어째서 망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이사야의 예언(사3:10-12)
선지자 이사야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백성입니다(사1:1). 그는 다윗의 후손이 다스리고 있는 제사장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선민입니다. 그러나 그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선민들에게 전할 말을 위탁 받은 후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습니다(사6:1-13); 첫째, 선민의 사회가 하나님을 떠나자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사6:9-10). 둘째, 그 때문에 제사장나라가 망하게 되고 백성들이 유민이 되고 맙니다(사6:11-12). 셋째, 훗날 유민들 가운데 10분의 1이 돌아오게 되지만 그것도 나중에 전란으로 베임을 당하게 됩니다(사6:11-13a). 넷째, 결국에는 선민의 사회가 말씀의 뿌리와 하나님신앙의 그루터기만을 세상에 남기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사6:13b).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알게 된 선지자 이사야이기에 스스로 선민이라는 의식을 벗어 던져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구별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이 행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동일한 기준으로 보응하신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3:10-11).
하나님께서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이 똑 같은 기준으로 보응하시고 처벌을 하신다는 근거를 이사야는 역사적인 선례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다스리는 자는 여자들이라. 내 백성이여 네 인도자들이 너를 유혹하여 네가 다닐 길을 어지럽히느니라”(사3:12). 이 대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베냐민 출신 사울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그만 백성들의 칭송과 인기에 눈이 멀어버립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대 사사이며 선지자인 사무엘의 권고마저 무시합니다(삼상15:3, 9, 11).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새로운 왕재(王才, 왕의 재목)를 선택합니다.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고서 다윗을 차기 왕으로 선택한 것입니다(삼상16:7, 12-13). 그러나 당장 왕으로 세우지를 아니하고 제사장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 오랜 세월 고난 가운데 시험합니다.
(2) 다윗은 사울 왕의 시기로 10년 이상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도망자 다윗 앞에 사울 왕을 암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줍니다(삼상24:3-4). 가신(家臣, 집안의 개인적인 신하)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단호하게 그 기회를 물리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종을 사람이 해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삼상24:5-6). 또다시 다윗의 마음중심을 확인하는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암살의 기회마저 다윗은 거절합니다(삼상26:7-9). 그때 다윗의 영안(靈眼, 영적인 믿음의 눈)이 열리고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사울 왕에게 명예롭게 전사하는 운명을 주실 것이므로 자신이 손을 댈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삼상26:10-12).
(3)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든 다윗 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이 다스리는 왕국을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주십니다. 연전연승을 계속하게 하여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토를 모두 다윗에게 줍니다. 그 영토의 크기가 바로 유프라테스 강 서쪽에서 나일 강 동쪽까지입니다(창15:18). 이른 바 ‘다윗 제국의 성립’입니다.
(4) 다윗 왕 역시 권력에 취하여 충신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 밧세바를 후궁으로 취하게 되는 엄청난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삼하11:4, 14-17). 그러나 그는 선지자 나단의 지적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자 평생 그를 징치하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처벌을 겸손하게 받아들입니다(삼하12:7-15). 그리고 다시는 똑 같은 죄를 범하지 아니합니다(왕상1:2-4). 그 결과 사도 바울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다윗 왕의 신앙이 다음과 같았다고 오늘 날까지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13:22).
(5)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든 다윗의 왕가라고 하더라도 그 후계자가 크게 잘못을 범하자 제국이 쪼개어지고 맙니다. 다윗을 생각하여 그의 아들 솔로몬의 통치기간에는 제국을 보전해줍니다(왕상11:11-13).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그 다음 해에 북쪽의 10지파가 에브라임 출신 여로보암을 왕으로 모시고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맙니다(왕상12:20). 그렇게 제사장나라가 둘로 쪼개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사3:12a). 르호보암 왕이 원로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경험이 일천한 어린아이와 같은 젊은 신하들의 의견을 따른 결과 나라가 쪼개어지고 만 것입니다;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되”(왕상12:14).
(6) 북조(北朝, 북쪽의 왕조)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앙의 암흑기는 아합 왕 시절입니다(왕상16:30-33). 그때 바알 신을 섬기도록 아합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 이세벨 왕비입니다(왕상16:31, 19:1-3, 21:25). 마찬가지로 남조 유다 왕국에 있어서도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그러합니다. 그녀는 유다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아합 사이의 결혼동맹으로 말미암아(대하18:1) 여호사밧 왕의 뒤를 잇게 되는 유다 왕 여호람의 아내가 된 여인입니다(대하21:6). 그녀는 마치 어머니 이세벨처럼 남편인 유다의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우상을 섬기게 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게 합니다(대하21:6, 13).
(7) 이에 그치지 아니하고 여자인 아달랴는 자신의 아들인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죽자 왕의 자손을 멸절시키고 스스로 여왕이 되어 남조 유다 왕국을 직접 다스립니다(왕하11:1-4). 그때가 다윗 왕조의 암흑기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다윗의 신앙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대하21:7) 왕자 가운데 하나 요아스가 살아남게 됩니다(왕하11:2). 그를 제사장 여호야다가 잘 보호하여 7년 후에 정권을 되찾게 됩니다(왕하11:4-16). 이상 두 가지의 역사적 선례는 이사야의 다음 말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여자들이라. 내 백성이여, 네 인도자들이 너를 유혹하여 네가 다닐 길을 어지럽히느니라”(사3:12b).
(8) 작은 결론을 맺어보자면,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은 백성들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 한 템포를 늦추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륜이 적은 아이들과 권력욕에 취한 여자들이 정치를 잘못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신앙에서 떠난 사실을 감안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은 더 살려주시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그 일은 앗수르의 말발굽에서 예루살렘 성을 한번 구원해주는 역사로 임하게 됩니다. 그때의 사건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저 내가 나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사37:35).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긴 다윗 왕의 신앙을 그의 왕조와 백성들이 본 받도록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거듭 말씀하신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다윗의 왕조가 완전히 망하는 것도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는 것도 구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을 앞세워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는 아이와 같은 사고방식 그리고 기복적이고 감각적인 우상문화를 선호하고 있는 여인들의 영향력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끝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신앙을 떠나게 되면 나라가 쪼개어지고 결국은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내다보면서 동족들을 향한 이사야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은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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