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102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10. 05:43

로마서 강해 제102(15:20-2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12()

 

사도 바울은 로마시를 선교의 목적지가 아니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가?(15:20-24)

 

초대교회 시대 사도들과 성도들의 종말론의 특징은 주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하는 단기적인 시관(時觀, view of time, 시간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2천년의 세월이 지난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후 1세기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곧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여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 임박한 것이며 절실한 것이기에 주후 60년대 중반 네로 황제의 엄청난 박해도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면서 순교의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본문에서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여기고 있는 지중해의 서단인 서바나의 다시스 항까지 마지막 선교여행을 떠나려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15:23). 그 일을 위하여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서 자생적인 교회를 세우고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의 재정적인 지원과 인적인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15:24).

 바울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사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 마태는 예수님께서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고 말씀하셨다고 초대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벧후3:8-9).

 그에 따라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내의 이방인 선교를 빨리 자신의 세대에 마무리를 하기 위하여 일종의 건너뛰기 형식의 선교전략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대 도시를 연결하는 다음과 같은 선교 전략입니다;

(1)  첫째, 사도 바울은 새로운 대 도시에 들어가면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서 히브리정경을 가지고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찾아서 읽고 설명을 합니다.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2)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다고 증거합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요? 그 증거로서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3)  셋째, 성령님의 역사로 그 지역에 가정교회가 설립이 됩니다. 그 교회를 후진에게 맡기고 바울은 그 다음 대도시로 이동을 합니다. 그렇게 로마제국의 대도시 위주로 소아시아에서 유럽의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사도 바울의 교회가 설립이 되고 있습니다(15:19).

(4)  넷째, 이제 로마교회 성도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태리에서 서바나까지 그러한 방법으로 선교를 하고 나면(15:23)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였으므로 부활 승천하여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나라의 소망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는 바울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서 새삼 알 수 있는 사실은 로마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최종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크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과 같이 이미 복음을 받아 들인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지역이므로 사도 바울이 이중적으로 선교활동을 그곳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15:20-21).

다만 로마교회에 사도 바울이 바라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올바른 지식을 체계적으로 가지고 십자가 구원의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무장한 제자의 길을 가고자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계선교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여의치 아니하다고 한다면 재정적으로라도 선교팀을 도와야 합니다”(15:2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15:20-21);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15:20a);

1)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15:20aa)이라고 말하고 있는 곳은 초대교회가 세워져 있는 대도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도나 제자들 또는 자생적인 성도들에 의하여 초대교회가 건설이 되어 있으면 그러한 지역은 사도 바울의 선교대상 도시에서 제외가 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15:20ab).

2)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의 수 많은 대도시에 건너뛰기 방식으로 선교를 한다고 하더라도 가야만 하는 도시가 많아서 그 걸음이 너무나 바쁩니다. 그러므로 구태여 초대교회가 다른 성도들에 의하여 개척이 되어 있는 도시에 들어갈 필요도 시간적 여유도 없는 것입니다.

(2)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15:20b);

1)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논쟁과 다툼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단 다른 사도나 제자 그리고 성도가 개척한 초대교회가 있는 지역에는 들어가지 아니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2)    이중 삼중으로 같은 지역에 전도하고 선교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회내에서 성도들이 무슨 파, 무슨 파로 갈라져서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파벌의 발생을 예방하자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는 원칙”(15:20b)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원칙이 벌써 히브리정경에 나타나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싶어합니다.

(3)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15:21);

1)    그런데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이사야 선지서의 구절은 사실 약간 다른 의미를 말하고 있는 예언입니다.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52:15).

2)    세상임금들이 메시아의 소식을 듣고서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상천외한 것이며 전대미문의 방법으로 만민구원의 방법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미의 원문을 원용하여 사도 바울은 약간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번 세번 듣게 되면 그것은 이미 전대미문의 복음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에는 전도나 선교를 하기 위하여 다시 들어가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15:21의역).

3)    주후 1세기 초대교회가 대도시마다 세워지고 있는 시점이므로 이미 교회가 건설이 된 지역을 건너 뛰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로마제국에 도시는 많고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는 태부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물망처럼 교회가 포진하고 서로 이중 삼중으로 전도에 임하고 있는 현실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로,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15:22-23);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15:22);

1)    사도 바울이 로마제국의 수도에 있는 로마교회를 방문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그때마다 그 길이 막혔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과 관련이 되고 있는 글을 사도행전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처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19:21).

2)    이는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 중에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자신의 계획을 밝히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제2차 선교여행 때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방문했는데(16:11-18:17) 이제 두번째로 방문을 하려고 합니다(19:21). 그리고 로마에 대해서는 장차 예루살렘을 먼저 방문한 다음에 가려고 합니다.

3)    그러한 계획에 비추어 보게 되면 이 대목은 로마서 제15장에 나오고 있는 다음의 구절과 직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15:25-26). 그러므로 사도 바울 자신의 계획대로 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대목은 로마로 가는 길이 막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4)    그렇다면 제2차 선교기간 중에 사도 바울이 그리스 반도에서 이태리 반도로 넘어가서 선교를 하기 위하여 기도를 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과연 그는 아가야 지방에 머물고 있을 때에 그러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을까요? 사도행전에서 찾아보면 그 단서가 다음과 같이 발견이 됩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18:1-2), “1 6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18:11), “바울이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18:18).

5)    첫째, 사도 바울이 그리스 반도 남단에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도시인 아테네를 거쳐서 항구도시 고린도까지 방문합니다. 이제는 배만 타면 이태리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로마에서 쫓겨난 부부를 만납니다. 그들에게서 로마교회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6)    둘째, 고린도에서 그들과 함께 1 6개월을 생활하면서 사도 바울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에서 선교하였으므로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로마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주후 50-52년경입니다.

7)    셋째, 그 일을 위해서는 로마시에서 유대인 추방령이 무효화 되어야만 합니다. 언제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가 서거를 하고 그 추방령이 실효를 하게 될까요? 주후 54년입니다.

8)    넷째,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면서 그때를 기다렸지만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왜냐하면, 52년경 그가 고린도에서 쫓겨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서쪽 이태리가 아니라 동쪽 수리아로 떠나가는 바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9)    다섯째, 그들은 서로 약속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방령이 풀리게 되면 로마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약속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로 보내어 주시면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유럽의 끝인 서바나까지 가서 선교를 하겠다는 결심입니다(15:23). 그 대목이 겐그레아에서 이발을 하고 있는 바울의 결연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8:18).

(2)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15:23a); 사실 사도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은 유럽선교가 이루어진 제2차 선교여행과 닮아 있습니다. 한번 간 곳을 재차 방문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그렇게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그리스 반도 남단으로 들어가면서 이제는 배를 타고 이태리로 넘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주후 55-57년경이므로 유대인 추방령이 끝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등이 벌써 로마시로 되돌아가 있는 시점입니다. 하지만 그 계획이 성사가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행적과 관련하여 급한 일이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빨리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반도를 방문하고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부터 찾아가고자 합니다. 가는 걸음에 유럽성도들로부터 성금을 거두어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하여 예루살렘교회에 전해주고자 합니다(15:25-26).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을 반드시 방문하여 해명을 해야만 하는 신상문제는 다음과 같이 심각한 것입니다;

1)    첫째, 예루살렘의 반대자들을 충분하게 설득하지 못하게 되면 종교재판을 받아서 처형이 될지도 모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2-24).

2)    둘째,  초대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분파문제에 사도 바울이 연계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난 줄을 내가 아노라”(20:30).

3)    셋째, 사도 바울이 금전적인 이득을 취했다고 말들이 많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20:33-35).

4)    넷째, 사도 바울이 모세의 할례와 율법을 전부 부인하는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그를 처단해야 한다고 유대주의자들이 예루살렘총회에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21:1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21:21-22).

(3)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15:23b); 사도 바울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는 로마시의 성도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지중해의 끝에 있는 서바나까지 가서 교회를 세우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제4차 세계선교가 될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면서 자신을 그 일에 사용해 달라고 벌써 제2차 선교여행 때부터 강력하게 서원하고 있는 바울입니다(18:18, 3차 여행때에는, 19:21참조 바람).

셋째로,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15:24); 사도 바울의 로마교회 방문의 목적이 간략하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1)  첫째, 자생적으로 제국의 수도에 초대교회를 건설한 그 훌륭한 성도들과 사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사귐을 통하여 사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체계적인 설명을 해주고 자신의 간증과 세계선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사도 바울의 이방인 선교에 동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2) 둘째, 로마교회의 성도들의 도움을 받아서 사도 바울은 유럽의 서쪽 끝인 서바나까지 이르는 제4차 선교여행에 나서고 싶어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제2차 선교여행 때부터 그리스 반도에서 구체적으로 서원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로마시에서 유대인 추방령이 끝나고 많은 유대인 성도들이 로마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로마서 서신을 받아 보게 되는 로마교회의 로마인 성도들은 로마시로 되돌아 온 유대인 성도들에게서 바울의 세계선교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훗날 로마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그들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바울이 제16장에 많은 자신의 동역자들의 이름과 함께 로마교회로 되돌아간 유대인 성도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혼신의 정열을 바쳐서 세계선교의 화신이 되고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의 헌신과 희생의 흔적이 생생한 본문입니다. 그 내용을 깊고도 넓게 음미하시면서 땅끝까지 복음 들고 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