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10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10. 22:36

로마서 강해 제104(15:29-3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14()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일정에 대하여 어째서 로마교회 성도들의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가?(15:29-33)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제20장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서유럽 선교를 소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그 출발점이 될 로마교회를 방문하지 못하고 지금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20여년 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와 같은 위험과 고난입니다(10:33-34, 11:18, 14:1-2, 20:22-23). 사도 바울이 그 올무에서 과연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사도행전 제20장에서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고별설교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바울은 자신이 현실적으로는 그 올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20:25, 38). 그렇지만 바울의 신앙의 위대성이 곧이어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바울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0:24, 32, 15:28-33).

본문 제29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서유럽까지 선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가 예루살렘에서 살아나올 수가 있다면 그 열매는 풍성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제20장과 로마서의 본문을 비교하면서 그 점에 대하여 먼저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서쪽의 항구도시 에베소에 들러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때는 제2차 선교여행의 마지막 무렵입니다. 짧은 기간의 방문이므로 그곳 회당의 유대인들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18:19-21). 그래서 제3차 선교여행을 떠난 사도 바울은 다시 에베소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3년이나 머물면서 성경공부반을 운영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양성하게 됩니다(19:1-10). 그 기간 동안에 에베소에서 크게 초대교회의 부흥이 일어나고 그 영향으로 현지에서 양성이 된 복음의 일꾼들이 에베소를 비롯하여 그 북쪽과 동쪽 지역에 7개의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19:11-20, 1:11).

(2)  둘째, 사도 바울로부터 3년간에 걸쳐서 하나님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된 성도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초대교회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역복음화에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이 됩니다. 그들을 일컬어서  의사 누가는 사도행전 제20장에서  교회 장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0:17). 그때가 주후 53-56년경입니다. 그때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나게 되면 사도 바울이 로마시에서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주후 70년에는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땅의 백성들이 처참하게 도륙을 당하게 됩니다. 살아 남은 유대인들이 이방 땅으로 흩어집니다. 그때 마지막 사도인 요한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피난을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20년 이상 그곳 에베소에서 여생을 지내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그곳의 7개 교회를 돌보면서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1:11).  

(3)  셋째, 에베소 지역에서 사도 바울의 성경학교와 제자훈련이 대 성공을 거두게 되자 그 반발이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19:23-39). 헬라의 신 제우스와 아데미를 섬기는 현지인들이 사도 바울의 전도활동을 반대하고 그를 쫓아내고자 난동을 부린 것입니다. 겨우 소요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바울은 유럽 땅 마케도니아로 떠나게 됩니다(20:1). 그때 이미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곧 그리스 반도의 교회들을 방문한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결심하고 있습니다(19:21). 로마에 들러서 제4차 선교여행을 준비하는 일이 급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긴급한 일이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는 지난 번 강해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4)  넷째, 그리스 반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잠시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50km정도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 밀레도에 들르고 있습니다(20:15). 그곳으로 에베소 등지의 교회지도자들을 불러 들이고 있습니다(20:17). 그들은 에베소 등 7개 교회의 목회자들과 원로들입니다. 그가 직접 에베소를 방문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불러 들이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①첫째, 그가 에베소를 방문하는 경우 소요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②둘째, 빨리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신의 혐의에 대하여 해명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20:16).

(5)  에베소를 비롯한 7개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도 바울이 고별설교를 하고 있습니다(20:17-38). 마치 20여년 전에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그 심정과 닮아 있기에 바울의 고별설교는 다음과 같이 비장합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뜻으로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고는 있지만 그곳에서 당할 일이 보통 걱정이 아닙니다(20:22).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20:23-25).

2)    둘째,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깨끗하고도 투명하게 이방인 사도로서의 직분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20:26-27, 31-35). 특히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20:27).

3)    셋째,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고 목양을 함에 있어서 교회지도자들에게는 지금 사도 바울 자신이 당하고 있는 환난과 결박이 늘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나운 이리와 같은 자들의 책동을 이길 수 있도록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20:28-31). 생사를 알 수가 없는 험지로 떠나고 있는 사도 바울이 오히려 교회의 장로들을 위하여 간절하게 주님의 보호하심과 말씀의 역사가 풍성하시기를 기도해주고 있습니다(20:32).

4)    넷째, 바울의 고별설교 후에 급기야 통성기도와 중보기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비록 바울의 앞길에 대하여 근심이 크지만 주님 안에서는 벌써 영적으로 부활의 역사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기록이 구체적으로 오늘 로마서의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15:29);

(1)  사도행전 제20장의 기록과 비교해보면 본문은 그 의미가 상당히 다릅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에서는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20:25)고 사도 바울이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비해서 로마서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15:29)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와 같은 놀라운 변화가 어떻게 바울의 심령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한 마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여 절망에 휩싸여 있던 사도 바울의 마음을 평안으로 인도하고 주님의 부활의 신앙으로 그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입니다(14:16-17).

(3)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바울의 이방인 선교의 일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19:21, 15:23-24, 28). 그를 살려서 로마시로 보내어주고 그곳에서부터 서유럽 선교에 나설 수 있도록 조치해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사도 바울이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어떤 모양이든지 로마시로 보냄을 받게 된다고 하면 서바나까지 가게 되는 제4차 선교의 문이 열린다고 하는 기대감이 충만해지고 있습니다(15:29).

(4)  실제로는 사도 바울이 죄인의 몸이 되어 배편으로 유대 땅에서 로마로 가게 됩니다(27:1-6). 도중에 난파를 당하고 고생을 하지만 결국에는 로마시에서 가택연금의 상태에서도 2년 동안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으로 사도행전 제28장의 기록이 끝나고 있습니다(28:16, 30-31).

(5)  본문의 기록처럼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 연금상태에서도 선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28:31, 15:29).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바울이 본문에서 소망하고 있는 제4차 선교여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학자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 후 로마시에서 네로에 의하여 주후 60년대 중반에 순교를 당하게 된다고 하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둘째로,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15:30-31);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15:30); 사도 바울이 초면인 로마시의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생면부지의 성도에게 어떻게 그러한 기도의 요청을 대담하게 할 수가 있을까요? 그렇게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세가지로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그리스도의 사랑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의 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아 성도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 신앙공동체의 지체들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처럼 성도들은 서로 형제들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15:30a).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며 하나님 안에서 형제들이기 때문에 서로 복음사역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중보의 기도를 해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2)    둘째, 성령님의 사랑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칭의의 은혜를 입게 된 성도들은 또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의 임재를 얻게 됩니다(14:16-17). 성령님께서는 개별적으로 성도들의 속사람속에 내주하여 역사하시며 또한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신앙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에 그 가운데에서도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에 자신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바울의 중보기도가 먼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요청은 받기만 하겠다고 하는 이기적인 요청이 아닙니다. 바울 자신이 먼저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말씀충만과 성령충만, 그리고 능력충만을 간구하고 있습니다(15:30b).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나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줄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강력하게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2)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15:31a); 첫번째의 중보기도의 내용이 적시(摘示, 지적하여 보여줌)가 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앞길을 모르는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유대인들 가운데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믿음의 의에 대하여 순종하지 아니하는 반대파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유대인 성도들이 율법의 의를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구원도 믿지만 성도들이 실제의 삶에 있어서 유대인들처럼 할례와 율법을 온전히 지켜야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의 효과를 절반만 인정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다시 유대교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는 책동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일컬어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5:31aa). 그들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해주시기를 중보기도해달라는 요청입니다(15:31ab).

(3)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15:31b);

1)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반도에 살고 있는 유럽의 성도들로부터 연보돈을 거두어서 그것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15:25-26).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하였으며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복음이 발생하여 이방인들에게 전파가 되었으므로 그 은혜를 갚는 것이 옳다고 사도 바울이 이방인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였습니다(15:27).

2)    그리고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황제숭배사상을 반대하고 있으므로 로마제국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여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하여 모금이 된 돈입니다. 그 성금을 받으면서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방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선교를 하는 것이 선민 유대인 출신 성도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하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 주기를 사도 바울이 소망하고 있습니다(15:31b). 그러므로 그러한 이슈를 가지고 부디 중보의 기도를 해 달라고 하는 바울의 요청입니다.  

셋째로,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15:32-33);

(1)  지금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비장한 각오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고는 있지만 꼭 도살장에 끌려가고 있는 소와 같습니다(53:7).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생을 마치기 전에 부디 예루살렘의 위험에서 벗어 나서 로마시로 갈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고 다시 힘을 회복하여 함께 서유럽 선교에 나설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간절한 사도 바울의 기도가 영적으로 응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입니다; 어느 사이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평강을 회복하고 있습니다(15:33). 제국의 수도에 입성하여 그곳 성도들을 만나 기뻐하고 있는 자신의 미래상을 보고 있습니다(15:32). 그곳의 성도들이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중보기도하기만 하면 그에게 주어지고 있는 그 영적인 기쁨과 평강이 이제는 그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사도 바울이 제15장의 기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중보기도의 힘이 대단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여러분들도 자신의 예루살렘 방문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15:30). 그 내용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 예루살렘에서(20:23) 부디 자신을 반대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로부터 건짐을 받을 수 있도록 중보해달라는 기도를 말하고 있습니다(15:31). 그 결과 기도의 응답을 즉시 받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시 기쁨이라는 말과 평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5:32-33).

그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기도와 중보기도의 요청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으로 성도들 서로를 만나게 하고 세계선교에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은혜를 체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사진은 에베소와 밀레도 지도임)

 

(사진은 에베소를 비롯한 7 교회의 위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