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9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6. 09:47

로마서 강해 제95(15: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5()

 

절대적인 기쁨과 상대적인 기쁨에 대하여(15:1-3);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기쁨상대적인 기쁨에 대하여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절대적인 기쁨이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의로운 종을 통해서 얻고자 하시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실현이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할 때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상대적인 기쁨이란 이기적인 인간이 자신만 이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얻고 누리고자 하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에 기초하여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입니다. 그 결과 산업근대화가 이루어지고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개인주의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함께 첨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따라서 21세기 인류의 모습은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에 푹 빠져서 살고 있는 이기적이고도 고독한 존재입니다.

기계화되고 전자화되어 버린 환경속에서 자신의 폐쇄적인 삶만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들이기에 그 옛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함께 복음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던 공생애에서 너무나 격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 모두를 자식같이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할 때에 주어지고 있는 진정한 기쁨을 얻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 인류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기적인 상대적 기쁨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절대적인 기쁨을 회복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주후 1세기에 사도 바울이 본문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글을 깊이 묵상해보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인류가 참 기쁨을 회복하며 서로 생명을 돌보고 살려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로마서 제15장에서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성경전체의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기쁨과 상대적인 기쁨이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성경말씀을 폭넓게 묵상해보게 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기록이 바로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에 대하여 정확하게 진단하고 또한 어떻게 하면 육신적인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영적인 생명과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육신을 입고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류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영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님의 강림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통하여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이 세상에서도 구현이 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영육 간의 구원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땅에 임하는 천국입니다”.

조금 풀이를 덧붙여 봅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인 인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제사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살아간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2)  이제는 거듭난 삶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의 임재로 상대적인 기쁨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기쁨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3)  그리고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또한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게 되면 절대적인 기쁨은 더 이상 영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차원에서도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4)  그렇게 영육 간에 생명살림과 공생의 기쁨이 주어지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시고자 사실은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4:6-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5:1);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읽게 되는 성도들에게 자신과 함께 믿음이 강한 자가 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믿음이 강한 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주는 자입니다;

1)    믿음이 약한 자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그 속죄의 제사를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고 구원에 참여할 수가 있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자입니다.

2)    그러므로 유대주의자들이 교회내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아니고 율법까지 온전히 지켜야 비로소 구원을 완성할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에 그 믿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냥 두게 되면 믿음에서 실족할 것만 같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그 믿음을 바로 잡아 주라고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1)    믿음이 강하다고 자랑하면서 믿음이 약한 자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본체만체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만 구원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이기적인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이기적인 신앙인은 자신만 기쁘게 하는 자이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2)    믿음이 약한 자와 비교하여 자신이 상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 확실하게 믿고 있다고 하여 그것을 자랑하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실천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행동으로 증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웃의 생명을 살리고 믿음이 흔들리는 자를 사도 바울처럼 정확한 복음에 대한 설명으로 바로 잡아 주는 것입니다. 그 일에 성도들이 믿음이 강한 자가 되어 동참해주기를 사도 바울이 여기서 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을 이루고 을 세우도록 할지니라”(15:2);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12:30-31). 그와 같은 의미를 사도 바울은 여기서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을 이루고 을 세우도록 할지니라”(15:2)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라고 하는 것은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말하고 은 좋은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의 말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풀이해 봅니다;

(1)  첫째,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이 결국은 진심으로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실 때에 성도가 자신의 형제와 이웃에 대하여 어떻게 대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물으시기 때문입니다;

1)    창세기를 살펴보면, 여호와께서는 카인에게 동생 아벨에 대하여 묻고 계십니다(4:9). 완전범죄를 꿈꾸었던 카인의 범행이 여지없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에게는 이복 동생인 요셉에 대하여 묻고 계십니다(42:13). 아우를 미워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린 그들의 범죄가 하나님의 역사로 22년만에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옵니다(42:21). 그 죄악을 회개하는 심정으로 그들이 도둑으로 몰린 막내 동생 베냐민을 살리고자 하나같이 애굽 총리의 집에 종이 되겠다고 나설 때에 비로소 형제 간의 화해와 흉년으로부터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집안에 찾아오고 있습니다(44:12-13, 16, 45:3-11).

2)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12:30-31).

(2)  둘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할 때에 성도가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은 창세기 제1장에서 벌써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생명을 나누며 함께 공생하는 모습을 보시니 여호와의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태초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회복하고자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제물로 이 세상에 오십니다(1:29).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라고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셋째로,그리스도께서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15:3);

(1)  모든 제자들의 스승이신 그리스도, 모든 성도들의 거듭난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3:16-17).

(2)  성도들은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남은 인생 가운데 따라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뻐하시는 삶이 되겠지만 그 반면에 세상으로부터 엄청난 핍박과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되면 될수록,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 갈수록 그 박해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지고 가는 그 십자가는 스승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면 승리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3)  그런데 두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①첫째, 그리스도처럼 육신적으로 자기를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생활이어야 합니다. ②둘째,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반면에 이기적인 물질세상의 이치에는 어긋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현세적인 이익을 탐하고 있는 이기적인 세상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겠다고 육신적이고도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다운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기쁨이 먼저이며 궁극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기쁨과 행복이란 영적인 차원에서 생성이 되어 육적인 차원으로 흘러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성도들은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을 세워주고 함께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복음사역의 일꾼이 되라고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제자다운 모습이며 참된 기쁨을 누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아무쪼록 본문의 말씀을 음미하시면서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 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