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9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5. 12:53

로마서 강해 제93(14:18-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3()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말에 대하여(14:18-20);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초대교회내에서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 심각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복음은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그 속죄의 희생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고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은 그것만으로는 구원을 얻는데 부족하며 누구나 율법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식단과 관련하여 유대주의자들은 초대교회내에서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구원을 얻자면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율법도 온전히 지켜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규정되어 있는 부정한 음식물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믿음의 의에 대하여 전통적인 유대교의 율법의 의를 추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 진리일까요? 사도 바울은 그들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제사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복음의 진리를 크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밝히고 있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에서의 주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이 기독교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성도들을 선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라고 하는 유대교의 울타리 안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들조차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율법의 의를 다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주의자들의 강한 율법주의적인 주장에 대하여 상당히 당황하며 그들의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의율법의 의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설명해줌으로써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어주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이 심각합니다. 예를 들면, 특히 율법에서 부정하며 속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음식물을 일체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1).

그러한 주장에 대하여 특히 이방인 성도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대속자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인들처럼 율법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유대인 출신 성도들 가운데 일부 유대주의자들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니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요컨대,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 이방인 출신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믿음의 의에 대하여 회의를 일으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믿음의 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를 얻고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성도들의 믿음의 의에 대하여 그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민 유대인들도 율법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면서 다시 그것을 올무로 만들어 이방인 출신 성도들을 옭아매면서 함정에 빠뜨리고 있는 잘못된 처사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목회의 현장에서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어떻게 맞서고 있는 것일까요? 바울의 대처법이 로마서 제14장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먹는 것과 마시는 것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그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14:17).

(2)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행적에 비추어보면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습니다(14:14). 다만 속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속된 것이 될 뿐입니다. 그 점은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인 로마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을 방문하게 되는 이유에서도 그대로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10:14-15).

(3)  셋째, 이웃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형제의 믿음을 하나님의 복음 위에 견고하게 세워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도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으면서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구원을 얻으라고 이방인 출신 성도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믿음을 해치고 구원을 망치고자 하는 위험한 행동입니다(14:15).

(4)  넷째,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복음의 일꾼이 스스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자제하지 못하여 믿음의 본이 되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웃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선한 복음사역이 성도들의 무절제로 말미암아 주위의 비난을 초래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형제를 거리끼게 만들지 아니하도록 성도들이 먹는 일에나 마시는 일에 있어서 자기절제를 해야 합니다(14:20-2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4:18);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14:18a); 여기서 이로써는 앞 대목을 도구로써 받아 주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자에게는 이하에서 말하고 있는 좋은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앞 대목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1)    첫째, 성도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그 생명을 살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그리스도처럼 이루어 드려야만 하는 복음의 일꾼들입니다. 따라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웃의 비방이 되지 않도록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도 절제가 필요합니다(14:16).

2)    둘째, 성도들은 영적인 삶에 더욱 힘써야만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공의와 마음속 평강 및 기쁨을 이웃에게 보여주어야 하며 그것이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시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어주어야 합니다(14:17).

3)    그 두가지를 실천하는 성도는 그리스도를 올바로 섬기고 있는 자입니다(14:18a). 그러므로 이하와 같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14:18b).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4:18b);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성도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 자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먼저 자신과 이웃을 만드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2)    그 다음에는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웃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랑합니다. 따라서 이웃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자 합니다.

3)     그리고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맛보며 의와 평강과 희락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이웃이 싫어하는 식생활과 생활습관을 모두 고치고자 합니다.

4)    그렇게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이웃들도 그러한 성도를 칭찬하는 것입니다(14:18b).  

둘째로,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14:19-20);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14:19);

1)    화평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미움과 원한을 버리고 서로 평화를 누리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삶과 죽음이 필요합니다(5:1, 11).

2)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회개한 성도들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으며 이웃에게도 평화의 사도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성도의 삶에 있어서도 그 화평의 일에 더욱 힘써야만 합니다.

3)    ’(, 널리 베품)이라고 하는 것은 신앙공동체에 유익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신앙공동체에 도움이 되도록 행동을 해야 하며 그 반대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4)    그런데 성도들이 식단의 문제를 가지고 의견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금이 가고 신앙공동체가 훼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지적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14:20).

(2)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14:20a); 식사에 관련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음식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지상명령의 실천을 망쳐서는 안됩니다. 만약 생명을 돌보고 구원하는 것보다 율법에 의한 식사규정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거나 가르치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구령’(救靈, soul salvation)사업을 방해하고 있는 자입니다.

(3)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14:20b);

1)    사도 바울의 결론이 명쾌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는 다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이치를 예수님께서 더 쉽게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제15장과 마가복음 제7장에서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율법에 따른 정결한 식사가 중요하지 아니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문제에 걸려서 만민구원의 하나님 뜻을 실천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가 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7:18-23).

사족을 덧붙이자면, 율법선생인 랍비들을 비롯한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규정한 정결한 식사와 결례를 가지고 만민의 생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을 예수님께서 사후에 제자들에게 풀어서 위와 같이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이 강경합니다.

그러므로 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오늘날 계승하고 있는 성도와 교회에 대하여 그 옛날 바리새인들처럼 일부 율법규정을 가지고 시비를 걸거나 훼방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깊은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