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9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6. 04:34

로마서 강해 제94(14:21-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4()

 

율법과 믿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최종적인 입장에 대하여(14:21-23);

 

사도 바울이 쓴 글 중에서 본문의 세 구절은 압권입니다. 그 이유는 그 표현이 절묘하며 그 상징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사람이 먹고 있는 육류 가운데 어떤 것은 깨끗하고 어떤 것은 깨끗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부정한 고기를 먹거나 그 죽은 것을 만져서도 되지 않는다고 레위기 제11장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 유대인들의 식단에 관한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고 말하면서 아예 고기 곧 육류를 먹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14:21);

1)    사람은 창세기 제1장의 규정에 따라 곡식과 과일 그리고 채소류만 섭취해도 충분히 살 수가 있는 존재입니다(1:29). 구태여 식생활을 풍성하게 하고자 육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육식이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허용이 된 식단입니다. 홍수심판 후에 식물성 먹거리의 부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육식을 일부 허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9:3-4).

2)    성도가 고기를 먹지 아니하게 되면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①첫째, 식사에 있어서 그렇게 자기절제를 하게 되면 율법주의자들의 시비에서 아예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②둘째, 당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지만 여전히 율법적인 식단을 고집하고 있는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면 훗날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확신하게 되는 믿음의 성숙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소망과 사랑으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식생활에 있어서 육류섭취를 하지 아니하는 자기절제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율법에서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14:21)라고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목에 대해서는 두가지로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1)    첫번째의 접근방법은 창세기입니다; 노아가 홍수 후에 포도농사를 지어서 포도주를 만들어 마십니다(9:20-21a). 그는 친구가 없는 외로운 세상에서 그만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잠이 들고 맙니다(9:21b). 그래서 아들들에게 만취한 모습 그것도 벌거벗고 잠이든 모습을 보여주고 맙니다(9:22-24). 하나님신앙을 지닌 유일한 선지자 노아의 영적인 권위가 그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게 되면 영적인 타락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두번째의 접근방법은 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의 포도주 이야기가 복음서에 풍성합니다. 그 가운데 누가복음 제5장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5:37-39). 여기서 새 포도주는 복음을, ‘묵은 포도주는 율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복음은 교회생활에 사용이 되고 율법은 회당생활에 사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교회생활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 성도들에게는 묵은 율법이 익숙하고 더 좋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즉, 그의 율법과 믿음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이 무엇인지 표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①첫째,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듯이 교회에서 성도들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러나 성도들이 구태여 육류섭취를 고집하여 유대인 성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유대주의자들도 장차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설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고기를 먹지 아니하는 자기절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권면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14:21); 언뜻 보면 고기를 먹지 아니하는 것과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는 것이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두가지의 자기 절제는 각각 다른 종류의 형제들을 위하여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은 율법적인 식단을 고집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을 거리끼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유대주의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선민 유대인들 가운데 여전히 율법의 의를 주장하고 있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속죄의 제사를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아니하며 율법도 모두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입니다.

(2)  둘째,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율법생활을 버리고 새 부대인 교회에서는 새 포도주가 상징하고 있는 복음으로 믿음생활을 영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유대주의자가 아닌 성도들에게 먼저 주고 있는 권면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에 따른 믿음생활에 확신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의 권면은 유대주의자들에게도 유효한 것입니다.

둘째로,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4:2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14:22a);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하나님 복음에 대한 믿음을 잘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그 속죄의 제사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인간들이 의인으로 여겨지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재삼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2)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4:22b);

1)    만약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는데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율법의 의에 기대게 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도들이 복음을 생활화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게 되었기에 이제는 성령님의 능력을 얻어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믿음의 승리에 대한 자부심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2)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제7장 후반에서 그 이유를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아무리 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온전히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대한 착각입니다. 성령께서 도와 주시는 성도의 삶 그 자체도 율법에 비추어 보게 되면 여전히 죄인입니다. 다만 성령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옷 입혀주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의 가리움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성도가 믿고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의 회개에 기초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주시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 사면령을 받아서 겨우 천국의 영주권을 얻은 성도가 그만 자만해서 이제는 자신이 넉넉히 율법을 다 지키고 천국의 시민이 된다고 하는 착각에 빠져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7:18-8:4 의역).

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4:22b); 성도들이 옳다고 믿고 있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죄인이 의인으로 여김을 받게 되고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그 믿음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유대주의자들의 율법적인 주장에 그만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믿음에 더하여 율법까지 온전히 지켜서 완전한 구원을 얻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율법의 정죄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는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4)    반면에,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고 죄의 가리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14:22b). 따라서 믿음에 의하여 비로소 의인으로 여김을 받은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겸손해야 합니다. 자력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결코 아니며 여전히 온전히 율법을 모두 지켜 행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세상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명자입니다. 물론 그 일을 마치고 육신을 벗고 영생의 부활의 몸을 입게 되면 그때에는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온전히 회복할 것입니다.

셋째로,의심하고 먹는 자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14:23); 사도 바울이 한번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재삼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만약 율법까지 온전히 지켜야 거룩한 성도이며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에 그 믿음이 흔들리게 되면 정죄와 죄 가운데 다시 빠져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는 육신적인 것을 규제하고 있는 율법으로 자신의 영적인 구원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구원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신앙이며 율법의 정죄에 다시 빠져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의 결론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믿음의 의를 굳게 잡고 율법의 요구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굳게 믿고 있으면 율법의 요구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8:1-4).

그런데 그러한 겸손한 믿음에서 떠나 자신의 거룩함과 능력을 과신하고서 율법의 요구까지 자신의 힘으로 이루고자 나서게 되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서 멀어져 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뿐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조심하라고 사도 바울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14:23)고 본문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시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